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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박물관

국민체조의 추억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한 것은 국민학교였다. 할머니께서는 국민학교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지 못하시고, 소학교라는 이름을 언급하셨다. 소학교는 일제강점기 초급 교육기관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할머니 연배 분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내가 계속 소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라고 말해도 할머니는 소학교라고 말씀하셨다.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처음 해야 했던 일은 앞으로 나란히 나란히 하며 오와 열을 맞추어 조회 대형으로 서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나와 비슷한 또래 40여 명을 처음 봤는데 그들과 함께 한 동작이 바로 국민체조였다. 당연히 국민체조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고, 그냥 국민학교이기 때문에 체조 이름도 그런 줄 알았다.

체조 동작은 배운 적이 없었기에 우리 앞에 서 있던 어른 한 분이 자신을 따라서 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분이 담임 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을 그냥 따라 하면 될 듯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동작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했다. 제멋대로 발과 다리가 따로 놀았다. 힘찬 구령과 음악 소리에 맞춰서 열심히 하려 했지만, 마음만 열심이었다. 국민체조의 배경 음악은 새마을운동 노래 중 ‘잘 살아보세’와 비슷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민체조’와 ‘잘 살아보세’를 작곡한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사람이 작곡해서 그런지 비슷하게 들렸다.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는 마을 회관에서 자주 흘러나왔고, 그때마다 마을 어른들은 공동 작업을 하러 가고는 했다. 동네에서 어른들이 함께 일할 때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국민체조 음악을 들으니 내가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왠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막상 어른이 되면 더 책임감만 느는데 말이다. 어쨌든 국민체조를 하며 학교는 어른이 되어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이후 학교생활을 하며 조회 시간마다 국민체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체육 시간에는 국민체조의 12가지 동작을 외워야 했다. 체육 시간에 줄을 서는 방식은 키가 작은 사람이 제일 앞에 서는 순이었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컸던 편이라 뒷줄에 섰기 때문에 잘 안 보일 것으로 생각해 안심했다. 선생님이 바로 앞에 있으면 더 부담되기 때문에 뒷줄에 있는 편이 상대적으로 편안했다. 그래서인지 체조 실력은 더 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뒷줄에 있어도 다 보였다.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앞보다 뒤가 눈에 잘 띄는 법이다.

그림_정을순(어반스케치 회원)

전교생이 모인 조회 시간이면 신입생들은 국민체조를 더 잘해야 했다. 전교생이 모여서 했기에 체조 실력이 바로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하루라도 빨리 코흘리개 신입생들의 국민체조 실력을 올려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교사로서 실력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 쓸 방법은 시험을 보는 것이었고, 아이들은 체육 점수에 국민체조가 반영된다고 하니 더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본다니 더 긴장되고 떨렸다. 하지만 선생님이 실제 점수에 반영했는지 기억에는 없다. 시험을 핑계로 괜히 겁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하라고 하면 안 하니 말이다.

국민체조 시간이면 남자아이들이 대체로 개구쟁이 기질이 더 있어서인지 제대로 따라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국민체조가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딱딱 끊어지는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어 다칠 염려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아이들이 체조 동작을 따라가지 못했나 싶기도 했다. 사실 그 시대는 어린아이만을 위한 체조를 따로 만들 만큼의 배려를 기대할 수 없는 시대였다.

당시, 이 체조는 말 그대로 국민체조였기 때문에 어린 초등학교 1학년생도 국민의 범주에 넣은 것만으로도 달가운 일이었지만, 자칫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점에서 반갑지 않은 일일 수 있었다. 나중에 군에 입대하고서야 군에서 하는 ‘국군도수체조’를 대중적으로 만든 게 국민체조라는 것을 알았고, 대중화 과정에서 그나마 안전한 동작들로 국민체조를 만들었구나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왜 이 체조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억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데다 시험을 봐야 할 과제가 되니 더욱 하기가 싫었다. 그런 와중에 신나는 동작이 있었다. 바로 온몸운동이었다. 온몸운동은 노 젓는 모습이었다. 이 동작을 할 때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고 신났다. 앞 동작에서 경직되어 있기만 했던 친구들도 이 동작에서는 신나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뒤 알게 된 사실인데 체조를 만든 분의 말에 따르면 다른 동작들이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서 온몸운동을 넣었다고 한다. 이런 동작이 더 많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가벼운 동작이 많다면 그 가치는 반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림_박서영(어반스케치 회원)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국민체조에 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국민체조는 1977년에 보급되어 동작이 딱딱하고 음악도 군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다른 체조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덩더꿍 체조, 청소년 체조, 건강생활체조, 늘품 체조와 같은 다양한 체조가 국민체조를 대체할 체조로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체조들은 국민체조를 넘지 못했고 오히려 사라졌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국민체조는 빠른 가속 버전까지 선보이며 다양한 콘텐츠로 SNS에서 여전히 공유되고 있다. 국민체조가 이렇게 신세대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보며,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오래된 것은 다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국민체조는 나름 경쾌하게 따라 하기 쉽고 절도가 있으며 본인이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많은 국민이 학교나 직장, 단체에서 같이 했던 추억이 있기에 쉽게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갈수록 우리 사회는 개인화되고 있다. 같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공통 분모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는 특히 이러한 점이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세계적으로 K팝 댄스 붐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민체조에는 여전히 같이 모여서 하나가 될 수 있는 무엇인가 끈끈한 것이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김헌식_문화평론가, 중원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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