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장식(길문화연구소장)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열두 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흔히 ‘동대문놀이’라 불리는 놀이의 노랫말이다. 누구나 들어봄직한 노랫말인데, ‘문놀이’를 할 때 불리는 여러 노래 중에 가장 널리 애창되는 가사이다. 하지만 노래의 제목은 정식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그저 «동대문을 열어라»라고 하거나 «동대문 남대문»이라 부른다. 동대문과 남대문 등 사대문을 중심으로 한 가사가 작동한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고, 노래의 이름이면서 놀이의 이름으로 쓰인다. 이 노래를 일러 구전동요라 하지만 멜로디는 정작 독일의 19세기 크리스마스 노래에서 빌려왔다.
«우리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하자Lasst uns froh und munter sein»의 멜로디를 차용한 것인데, 누가, 언제부터, 왜 독일의 멜로디를 빌려왔는지 모른다. 다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 노래를 부르며 ‘문놀이’를 즐겼다!

‘문’을 중심으로 지키고, 빠져 나가고, 여는 ‘문놀이’
경계를 드나들 때 발생하는 상황
문놀이는 사전적인 의미로 “아이들 놀이의 하나”이고, 두 아이가 손을 맞잡고 ‘문’을 만들면 다른 아이들이 그 문을 드나들면서 노래를 하며 노는 놀이이다. 노랫말의 끝 구절을 부를 때 손을 내려 문을 닫는 행위로 놀이하는 사람을 강제한다.
놀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만든 ‘문門’의 상징이 놀이를 규정하기에 ‘문놀이’라 이름하였지만 현장에서는 행위 주체와 행위 양상을 강조하여 ‘문지기놀이, 문뚫기놀이, 문열기놀이’ 등으로 불린다. 이들 이름은 문을 지키고, 문을 열고 통과하는, 이른바 자유와 억압의 행위 방식을 지시한다.
우리나라의 문놀이에 대한 문헌적 근거는 오래지 않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1941)의 기록이 처음이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부터 식민지 정책 수립을 위한 각종 풍속을 조사하고 13도道 226개 지방의 놀이를 수록했다.. 이 중에 문놀이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사례는 전남 무안의 ‘문지기놀이闕守遊び’, 충남 서천과 강원도 원주의 ‘문 빠져 나가기門くゞり’, 강원도 삼척의 ‘동대문열기東大門開き’, 충북 충주의 ‘남대문놀이南大門遊び’ 등 다섯 지방의 문놀이이다. 이름이야 제각각이지만 놀이의 모티프인 ‘문’을 중심으로 “지키고, 빠져 나가고, 여는” 놀이 행위를 강조하는 뜻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아마도 통칭이 없던 시절에 보고자의 주관과 현장의 명칭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조선의 향토오락』에 수록된 놀이로만 판단한다면 문놀이는 개별놀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문놀이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지정2009년된 전라남도 진도ㆍ해남 지역의 <강강술래>나 경상북도 안동ㆍ의성 등지에서 전승되는 <놋다리밟기>, 충청북도 영동ㆍ옥천ㆍ보은과 전라북도 무주 등지에서 전승되었던 <너리기펀지기>, 경상북도 영덕의 <월월이청청月月而淸淸>에서는 대동놀이를 구성하는 연행과정의 하나로 연희된다. 이른바 여흥놀이이고, 열무형列舞形 놀이이다.
여성의 집단가무놀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연행과정의 세부 종목이 각각이지만 공통의 한 종목으로 ‘문놀이’가 삽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한다. <강강술래>에서는 ‘문 열어라’를 하는데, 맨 앞사람 둘이 마주보며 손을 맞잡고 만든 문을 놀이꾼들이 허리를 잡은 채 꿰어가면서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주소.”와 “열쇠 없어 못 열겄네.” 라는 노래를 메기고 받으며 놀이를 진행한다. <월월이청청>에는 이 외에 T자형ㆍ담장형ㆍ사대문형 등 다채로운 형태의 문열기가 등장한다.* 결국 문놀이는 개별놀이로서 유희되기도 하지만, 집단가무놀이의 부속놀이로도 연행한다는 것인데, 지역을 관통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문열어라’를 비롯한 <강강술래>의 여흥놀이남생아 놀아라. 지와밟기, 도굿대 당기기 등는 원무놀이에서 맞이한 지신ㆍ농신에 대한 생산과 풍요의 굿놀이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문화인류학적 관점 중 하나다.
문은 물리적 의미로 특정 공간방, 집 등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유비喩比한다면 어떤 단계나 과정을 넘어서거나 어떤 상황이나 환경을 벗어나는 심리적ㆍ문화적 의미이다.
심지어 문은 통과의례rite of passage를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이자 경계의 연결과 차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론적 장치이다.
문놀이는 이런 다양한 층위의 상징성을 단순한 방식의 놀이를 통해 구현한다. 놀이함으로써 놀이를 표현하되, 보이지 않은 의미를 구현하는 깊은 놀이deep play이다. 그러므로 문놀이는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특유의 자유와 상상력과 창조성을 표현하는 행위예술Play as Performance로서의 서사물”인 것 같다.

대문놀이
여러 나라에서 전승하는 유사한 문놀이들
문놀이는 놀이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행위에 의해 완성된다. 그러나 놀이하는 사람이 전적으로 몰두할 때만 놀이는 목적을 실현하는 놀이 일반의 규칙을 그대로 반영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인식과 행위양식을 반영하는 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문놀이는 상호 영향 관계를 따질 수 없는데도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런던 브리지 이즈 폴링 다운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다. 영국의 구전동요인 이 노래는 «런던 브리지» 또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로 불리는데, 174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니 퍽 오래된 노래요 놀이이다. 놀이의 진행방식은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다리를 만들고, 아이들이 다리 밑을 지나가다가 노래가 끝나면 다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손을 내려 잡히는 사람이 탈락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문’이 ‘다리’로 바뀐 것인데, 템스강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가 무너졌던 역사적 사건을 반영한다고 한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런던 다리가 무너지네, 무너지네, 무너지네. 런던 다리가 무너지네, 내 아름다운 여인”
우리의 서북에 위치한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문놀이를 한다. 노래 이름은 «성문은 얼마나 높을까?城門城門几丈高»이다. 놀이 방식은 우리처럼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
‘성문城門’을 만들고 나머지 놀이하는 사람은 성문 사이를 지나면서 노래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손을 내려 성문을 닫는데 이때 잡힌 사람은 다음 차례의 성문 역할을 한다. 충칭重慶ㆍ쿤밍昆明ㆍ난징南京 등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 노래는 다양한 버전을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의 동남에 위치한 섬나라 일본 역시 문놀이를 한다. 노래의 이름은 «도랸세通りゃんせ»인데, 에도江戸 시대 말기에 노랫말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엿볼 수 있다. 이 놀이의 발상지는 사이타마埼玉현 가와고에川越시의 미요시노三芳野 신사이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성 안에 있는 미요시노 신사 참배가 허락되었는데, 참배하러 간 사람들이 귀경길에 성의 기밀 정보를 가지고 나가지 않는가를 관소에서는 엄중하게 점검했다고 한다. 이때의 검문 상황을 반영한 두려움을 노래한 것이라 한다(東京雜學硏究會, 『雜學大全』, 東京書籍, 2004). 놀이 방식은 우리와 같지만 노랫말은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여기는 어디 샛길인가요? …(중략)… 가는 것은 좋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섭지요.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일본 놀이에서는 ‘문’은 신사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도리이鳥居 또는 성의 관문을 가리킨다. 문화 방식이 다른 데서 비롯된 차이일 뿐 우리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까지 다양하게 연행되고 있는 문놀이
랜덤randomness의 선별과 차별
문놀이는 무작위성과 임의성任意性의 놀이이되 놀이노래의 끝이라는 문을 닫는 시점이 존재하기에 예측이 가능한 놀이이다. 사실 무작위성은 어떤 사건이 특정 패턴이나 규칙 없이 발생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놀이는 한정적이지만 랜덤을 반영한 놀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문놀이의 무작위성은 단순한 마구잡이가 아니라 실행되는 사건의 불확실성에 기반한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문’이나 ‘다리’를 만들고 있던 술래 두 명은 맞잡은 양손을 내려 ‘문’을 닫음으로써 지나가고 있던 한 명을 차별화시키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경쟁을 뜻하는 ‘아곤agon’을 문화적 기능상 놀이-축제-의례의 복합덩어리로 보고 이를 놀이의 핵심요소로 간주한다. 하지만 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 Georg Gadamer는 놀이의 미학을 놀이에 내재한 자발성, 규칙성, 축제성 등에서 찾았다. 둘의 견해는 다르지만 문놀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놀이의 주체와 주체들의 경쟁도 필요하지만 놀이하는 사람의 자발성과 규칙성이 지속될 때 놀이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놀이함으로써 놀이를 표현하고, 놀이하는 사람이 놀이하는 데 전적으로 몰두할 때만 놀이는 목적을 실현한다는 가다머의 견해를 적극 소환한다. 아울러 놀이하는 주체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는데, 어쩌면 현대인은 각자의 문을 만들고 드나들면서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격리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대문놀이
민속소식 제311호 (2025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