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문화

털신과 양모 부츠

글 최은수(서울여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겨울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따뜻한 옷과 신발일 것이다.
요즘은 어그부츠나 오리털 패딩이 익숙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뎌냈을까?
아마도 짐승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털신을 신지 않았을까?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신발의 시작
고대 유목민들은 얼어붙은 땅 위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의 가죽과 털을 이용해 신발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 사람들도 매서운 겨울에는 가죽과 털을 사용해 신발을 지어 신었을 것이다. 옷의 기본 재료인 실은 가락바퀴의 발굴을 통해 시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예로부터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직물을 짜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털신 역시 생활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을 활용했을 것이다.
모피의 역사를 살펴보면, 통일신라 시대에는 ‘모전毛氈’이라는 관청에서 계, 구유, 탑등, 전이라는 여러 종류의 모직물을 생산했다. 고려 시대에는 전문 장인을 두어 계와 계금이라는 모직물을 짜고, 중국에 특산품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는 금나라에서 들여온 2,000마리의 양 덕분에 가능했다. 조선 시대에도 모직물과 모피는 계속 사용됐다.
모의장毛衣匠은 구의, 갖저고리, 털배자 같은 모피 옷을 만들었고, 모관장毛冠匠은 이엄이나 풍차와 같은 방한용 모자를, 전장氈匠은 펠트 모직물인 전을 생산했다. 전은 갑옷이나 투구는 물론 일반인의 구의, 모자와 신발에도 쓰였다.
현전하는 털옷 중 우암尤庵 송시열1607~1689의 초구貂裘(담비 털 저고리)1가 있는데, 조선 시대의 패션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명품 모피 재킷이다. 이는 효종이 자기가 입던 옷을 북벌 때 추위를 견디라며 우암 선생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포전靑布廛에서 3승포와 전으로 만든 모자를 팔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갖옷이나 털로 만든 방한구를 판매하던 모의전毛衣廛도 있었다. 「미암일기」에도 담, 전, 그리고 모피류로 만든 방한용 옷이 자주 등장한다. 흑담黑毯이라는 흑색 모직물로 만든 단령團領을 입었고, 서피나 초피貂皮를 넣어 만든 사모紗帽이엄을 썼으며, 사슴·물고기·노루 가죽 등을 복식용으로 사용하였다.
이렇듯 모피는 우리 선조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여성들의 겨울 필수품은 갖저고리와 털배자, 양과 토끼털 등 동물의 털을 댄 두루마기였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옛 화신백화점 앞 거리는 한때 각종 털을 취급하는 모물점毛物店이 즐비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1906년 제작된 갖저고리 안쪽 가죽 조각에 찍힌 피화 취급상의 상호 도장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1950년대에 제작된 갖두루마기(경운박물관 소장)의 사례에 따르면, 당시에는 털옷을 짓기 위해 전문 장인을 집으로 불러 여러 날에 걸쳐 바느질을 맡기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죽옷과 털옷은 광복 이후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 우암 송시열 초구 일령,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유산, 현재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갖옷’ 특별전(2025.9.25.~12.27.)에 복제품(윤지원 제작)이 전시되고 있다.

우암 송시열 초구, 송정훈 소장,
국립청주박물관 보관

좌측 뒷길에 천화덕 도장이 찍혀 있는 갖저고리,
1900년 초, 경운박물관 소장

발을 보호하며, 신분을 표시하는 신발
신은 발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기능과 더불어 신체의 장식이나 신분 표시의 의미도 지녔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장화처럼 신의 목이 있는 것은 ‘화’라 하고, 목이 없는 것은 ‘혜’ 또는 ‘리’라 한다. 화는 말을 타거나 활을 쏠 때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쓰였고, 혜는 지금의 고무신처럼 일상에서 신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문헌에는 화와 리의 사용 기록이 남아 있으며, 백제에서는 왕이 검은 가죽신烏革履을 신었다는 기록도 있다. 무령왕릉에서는 왕과 왕비의 금동으로 만든 화려한 신발이 출토됐다. 조선 시대 왕과 왕비는 예식용 비단신 ‘석’을 신었고, 관리들은 관복에 목화木靴를 갖추어 신었다. 평상복에는 가죽 신발 ‘태사혜太史鞋’를 신었는데, 비 오는 날에는 방수 처리를 한 ‘진신’이나 나막신을 대신 신었다. 사대부 여성들은 평상용 신으로 비단이나 수를 놓아서 만든 운혜雲鞋·당혜唐鞋·수혜繡鞋 등을 즐겨 신었지만, 일반 서민은 평생 혼례 때나 한 번 신어볼 수 있었고 평소에는 짚신과 미투리를 신고 생활했다.
개화기 이후 양복이 도입되면서 서양식 구두가 들어왔고, 1921년 한국형 고무신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농한기에 짚신을 만들어 팔던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불매운동도 있었으나, 수요가 늘고 공장이 생겨 고무신이 대중화되면서 마침내 짚신은 상례용으로만 쓰이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창덕궁에 유배되어 있던 순종 임금으로, 하얀 고무신을 즐겨 신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산업화와 함께 양복이 일상복으로 자리 잡고 한복은 예복화 됨에 따라 신발도 고무신에서 구두와 운동화로 바뀌었다.

전통 신발(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목화, 태사혜, 당혜, 운혜, 꽃신)

제주도의 가죽신, ‘가죽버선’
우리나라에서 부츠형 가죽신 유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제주도다.
제주도는 지역의 특성상 동물이 많아 이를 통해 얻은 털과 가죽을 옷과 신발 제작에 널리 활용했다. 소, 노루, 개, 말의 가죽은 물론 오소리 털까지도 복식 제작 및 생활 속에서 쓰였다.
‘가죽버선’2에 관한 구술 조사에 따르면, 가죽버선은 소·노루·개·말 가죽을 버선 모양으로 꿰매 장화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가끔은 오소리 털 같은 모피로 의복을 만들고 남은 조각을 이용하기도 하나, 대개 신발은 오래 신을 수 있는 질긴 소가죽, 또는 가볍고 따뜻하면서 방수 효과가 좋은 노루 가죽 등을 사용했다. 형태는 버선처럼 생겼고, 2장의 가죽을 좌우로 맞대어 꿰매 신의 형태를 잡고 신목을 길게 했는데, 신목을 가죽으로 한 것도 있고, 가죽이 아닌 직물로 만든 것도 있다. 신발 앞뒤 솔기는 꼰실로 꿰매고, 신목은 가죽이나 직물로 덧대어 연결했다. 신목을 연결한 부분은 가죽끈으로 하여 실용성과 멋을 동시에 갖추었다.

2. ‘가죽버선’이라고 부르는 신은 버선처럼 생겼으나, 외출용 가죽 장화이다.

가죽버선

신태인시장 내 정읍신집

두꺼비표 방한화, 2025년, 최은수 사진

현대의 털신과 양모 부츠
우리나라에서 털이 드러난 신발은 1960년대 이후 등장했다. ‘털고무신’이라고도 하였는데, 겉은 구두모양이고, 신 안쪽에는 모직물을 바닥에 대었으며, 신울에 인조털을 덧댄 형태이다. 대륙고무, 태화고무, 흥화고무 같은 고무신 회사들이 생산했으며, 근래에도 시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겨울을 지내는 신이다.
필자가 조사한 전북 정읍시 신태인시장의 정읍신집에서는 우리가 털신이라고 부르는 ‘두꺼비표 방한화’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는데, 진흥고무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주로 농촌, 장터, 재래시장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고, 겨울철 농사일, 노동용 신발로 인기 있는 서민용 겨울철 필수품이기도 하다. 함께 진열된 털신 중에는 크록스 같은 신발 안쪽에 분홍색 털을 대서 만든 신이 있었는데, 요즘 시장에서 꽤 잘 팔리는 인기 상품이라고 한다.
한편 세계적으로는 호주에서 시작된 양털 부츠 어그UGG가 겨울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어그는 원래 호주에서 유래한 양털 안감 신발인 어그부츠Ugg Boots를 지칭하며, 브랜드 이름 ‘어그UGG’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호주를 방문하면 신발가게마다 모두 ‘UGG’ 상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그부츠는 발목까지 따뜻한 양털을 내부에 덮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1960년대 초기에는 바닷가형 보온화로 사계절용이었으나, 양털의 보온 효과가 뛰어나서 겨울에만 신는 신발이 됐다. 요즘에는 겨울 패션의 아이콘이 되어서 많은 브랜드에서 양털 부츠가 생산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부츠의 목이 긴 장화형뿐만 아니라, 짧은 신발, 운동화형, 슬리퍼형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브랜드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크록스 형태의 털신

최근에는 털신이 전통 신의 디자인 요소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으로 생산되고 있다. 또한 방수, 통기성, 충격 흡수 기능을 더한 기능성 털신도 나오고 있다. 크로슬라이트Croslite라는 합성수지로 만든 크록스Crocs는 여름에 한정하지 않고 털을 덧대어 겨울용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옷이 패션의 기본이라면, 신발은 이를 완성하는 요소다. 우리 전통사회는 의복뿐 아니라 모자와 신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신발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생활용품이 아니라,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복식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오늘날 털신과 양털 부츠는 시대를 넘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오늘날에도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생활 문화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민속소식 제312호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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