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형근(국립경국대 문화유산학과 교수)
바야흐로 전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시대다. 한국 아이돌의 노래와 춤이 세계인의 심장을 두드리고,
우리의 드라마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깊은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이 화려한 현상에 주목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저변에 도도하게 흐르는 한국인 특유의 정신적 DNA, 즉 ‘K-스피릿’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척박한 현실 앞에서도 주저앉기보다 툭툭 털고 일어나는 끈기,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불안해하기보다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어내는 ‘흥’과 ‘신명’. 도대체 이 역동적인 힘의 원천은 어디일까?
그 해답을 1년 중 가장 춥고 어두운 계절, 겨울 한복판에서 새봄을 설계하던 우리 조상들의 정월 풍경에서 찾아보자.
‘복’은 능동적인 창조의 대상
다사다난했던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뒤로하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저마다의 가슴 속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품는다. 작년의 아쉬움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 올해 예정된 큰일이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간절함…. 이런 각자의 바람들이 모여 우리가 흔히 건네는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 민속에서 말하는 이 ‘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로또 당첨처럼 우연히 굴러들어 오는 행운이 아니었다. 조상들에게 복은 땀 흘려 농사를 짓듯,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스스로 만들어가는 ‘능동적 창조’의 대상이었다. 이것을 우리는 ‘조복造福(복을 지음)’이라 부른다. 설날의 경건한 정성부터 정월대보름의 신명풀이까지, 정월의 ‘복 짓는’ 조상들의 지식과 만나보자.

설날, 근신과 정성으로 시작하는 첫걸음
설날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낯설고도 조심스러운 날이다. 복을 짓는 첫 단계는 바로 내 주변을 정돈하고, 나를 둘러싼 뿌리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외부의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새해 아침, 대문의 양쪽에 호랑이나 용, 혹은 갑옷을 입은 장군을 그린 그림을 붙였는데 이를 ‘문배門排’라 한다. 문배에는 신장상神將像이나 복福자, 오방색 문양 등 다양한 벽사辟邪 그림이 사용됐다. 이는 단순히 그림을 붙이는 행위를 넘어, 우리 집안에 나쁜 기운이 틈타지 못하게 막아내는 영적인 방화벽을 설치하는 셈이었다.
액을 막은 그 자리에는 복을 불러들일 차례다. 사람들은 대문에 ‘복조리’를 걸었다. 조리는 본래 쌀을 씻을 때 돌을 걸러내고 알곡만 건지는 도구다. 섣달그믐 자정이 지나자마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복조리를 사서 걸어두었던 그 마음은, 한 해의 복도 쌀을 일듯 부지런히 움직여 건져 올리겠다는 성실함의 다짐 아니었을까?
재미있는 풍속은 또 있다. 정월에는 신발을 훔쳐 가는 ‘야광귀(앙괭이)’라는 귀신이 내려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야광귀에게 신발을 뺏기면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하여, 사람들은 신발을 방 안에 꽁꽁 숨기고 대신 대문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체’를 걸어두었다. 구멍 세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야광귀가 밤새 체의 구멍을 하나둘 세다가, 날이 밝아 도망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두려운 존재와 정면으로 싸우기보다, 그들의 습성을 이용해 유머와 여유로 따돌리는 조상들의 해학이 돋보인다.


문배
날이 밝아 집 안으로 들어오면 ‘떡국’을 먹으며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떡국에 들어가는 떡은 본래 긴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썬 것이다. 길게 뽑은 가래떡에는 무병장수의 염원을 담았고, 엽전 모양의 떡에는 재물이 불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즉, 떡국 한 그릇을 비우는 것은 장수와 풍요를 온몸으로 섭취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에는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며, 웃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이를 단순히 유교적 예법이나 형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전통 사회에서 조상은 돌아가신 뒤에도 후손을 보살피는 영적 존재로 여겨졌다. 제례는 가신家神 신앙과 유교적 효 사상이 결합된 중요한 의식으로, 조상은 늘 후손과 함께하고 후손은 정성스런 의례를 통해 평안을 보장받는다. 내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불확실한 새해를 살아갈 단단한 자존감을 만드는 긴요한 장치였던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에게 설날은 ‘세뱃돈 받는 날’로 통한다. 사실 세뱃돈은 근대에 들어 화폐 경제가 발달하며 생긴 풍습이고, 전통 시대에는 돈 대신 ‘덕담德談’을 주고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옛 덕담의 화법이다. “부자 되세요” 같은 미래형 기원보다는, “이번에 승진했다지?”처럼 마치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는 완료형 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는 말이 씨가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복을 미리 기정사실화해 주는 긍정의 주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토정비결’을 보기도 했는데, 이 또한 운명론에 갇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좋을 때는 겸손하고 나쁠 때는 조심하라는 의미였다.

떡국

토정비결
정월대보름, 생명력의 폭발과 공동체의 신명
설날이 가족 중심의 차분하고 내밀한 명절이라면,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은 마을 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다. 이때의 풍속들은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액을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더욱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우선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깨우고 건강을 챙기는 풍속이 다채롭다. 아침 일찍 ‘부럼’을 깨물며 “올해는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빌었다. 딱딱한 견과류를 깨무는 소리에 귀신이 놀라 도망간다는 속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병을 예방하려는 건강 관리법이었다. 찬 술을 한 잔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는 ‘귀밝이술’, 여름철 더위를 미리 파는 ‘더위팔기’ 풍습도 빠질 수 없다. 밥상 위에는 찹쌀, 차수수, 팥,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삶아 먹는 ‘진채식’이 올랐다. 이는 겨우내 말린 나물을 먹어온 전통의 연속성을 상징하며,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하여 다가올 농사철을 대비하게 하는 선조들의 지혜로운 영양 식단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축제의 열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을 공터나 논 한가운데서는 나뭇더미를 쌓아 올린 ‘달집’을 태운다.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은 마을의 모든 부정과 근심을 태워버리고, 새로운 생명력을 불러오는 정화의 불이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달의 기운을 받아 각자의 소원을 빈다.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놓는 ‘쥐불놀이’ 역시 해충을 줄이고 태운 재를 거름으로 쓰려는 목적이 있었으나, 그 근본에는 불을 통해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이 짙게 깔려 있다.

정월 대보름 절식 오곡밥, 부럼, 귀밝이술, 아홉 가지 나물
정월 대보름 축제의 백미는 단연 ‘지신밟기(마당밟기)’다. 마을 농악대가 집집마다 돌며 지신(땅의 신)을 밟아준다. 우리 조상들은 집 안에 성주신(가옥신), 터주신(땅의 신), 조왕신(부엌의 신) 등 다양한 신들이 함께 산다고 믿었다. 지신밟기는 노래와 춤, 악기 연주로 이 가택신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는 예술적 의식이었다.
농악대가 집주인의 복을 신명 나게 빌어주면, 주인은 쌀과 돈을 기꺼이 내놓았다. 이렇게 모인 재물은 마을의 공동 기금으로 쓰였다. 다리를 놓고, 서당을 고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된 것이다. 내 집의 안녕을 비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웃과의 나눔으로 이어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공동체 구성원 간의 결속을 다지는 ‘더불어 함께 사는 지혜’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동제_달집태우기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동제_지신밟기
2026년, 다시 붉은 말처럼 달릴 시간
이처럼 우리 민속의 새해맞이는 단순히 복을 달라고 비는 막연한 기복祈福에 그치지 않는다. 설날의 차례와 문배로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정월대보름의 오곡밥과 지신밟기로 몸의 건강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것. 이 일련의 과정은 불확실한 한 해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설계한 전통적 지혜이자, 지식인 것이다.
오늘날 설날의 풍경은 예전만큼 전통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간소화된 세배, 간편한 인사, 서양 음식 혹은 간편식,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의 짧은 연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설날의 형식이 아니라 그 근본정신, 즉 “복을 짓고 맞이하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 복이 오던 안 오던 그 사실이 중요하기보다는 한 해를 살아감에 있어 그런 기대와 희망은 또 삶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역동적으로 타오르는 달집의 불꽃처럼, 그리고 거침없이 달리는 붉은 말처럼, 올 한 해 우리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복을 짓고, 그 복을 이웃과 넉넉히 나누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것이야말로 K-컬처를 넘어 우리가 계승해야 할 진정한 ‘K-민속’의 정신일 것이다.

십이지신도(오신)
민속소식 제313호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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