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2
오늘도 어떤 ‘잔’으로 마셨을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여덟 번째 수장형 전시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 개최
글_ 나훈영(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2026년 7월 23일(목)부터 11월 1일(일)까지 열린 수장고 16에서 여덟 번째 수장형 전시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를 개최한다.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수장형 전시는 소장품을 보관하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수장고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확장하며, 소장품의 개방×공유×활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이다. 관람객은 수장고 속 유물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고, 박물관이 그간 축적해 온 생활문화자료를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대표 소장품은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물건, 바로 ‘잔’이다. 잔은 술·차·물 등 음료를 마시는 데 쓰는 작은 그릇으로, 크기도 다양하다. 잔은 도자기, 금속, 석재, 나무,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손잡이와 받침의 유무에 따라 그 종류는 더욱 많아진다. 인간의 음료 문화에서 빠지지 않고 사용된 잔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또 일상적인 기물이기에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잔은 인간의 역사와 생활, 관계와 기억을 오랫동안 담아온 존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천 년 동안 잔을 만들고 사용해 왔을까. 오늘, 또는 어제 사용한 잔을 잠시 떠올려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아침에 마신 커피가 어떤 잔에 담겼었을까? 정수기 옆에서 뽑아 쓴 종이컵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자리에 두고 사용해 온 머그잔일 수도 있겠다.
어제 퇴근 후 친구 내지 동료와 기울인 소주잔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잠들기 전 마음을 차분히 하려한 찻잔은 손잡이가 있었을까?
이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잔을 쥔다. 하지만 손에 쥔 잔을 지긋이 바라본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는 바로 그 익숙한 잔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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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수장고
가장 오랜 시간을 품은 가장 평범한 물건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잔의 재질은 흙이었다. 손으로 빚어 만든 잔은 누군가의 일상에서 사용되기도 했고, 때로는 떠난 이를 기리는 마음과 함께 무덤에 묻히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잔과 흑유잔에 차와 술을 담아 풍류를 즐겼고, 조선시대에는 담백한 백자잔에 맑은 술을 따르며 일상을 나누었다. 시대에 따라 형태와 재질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은 늘 잔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삶의 순간들을 기록해 왔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사용하던 작은 잔 앞에서는 지금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잔 역시 먼 훗날에는 지금의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이 될지 모른다.
잔, 시대를 비추는 작은 거울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잔의 변화가 곧 시대의 변화로 읽힌다는 점이다. 흙으로 시작된 잔은 돌과 금속, 유리로 확장되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이와 복합재료, 3D 프린팅 기술을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석제잔, 예禮의 중심에 놓였던 유기잔, 투명한 아름다움을 담은 유리잔,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종이컵까지. 각각의 잔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이다. 잔의 변화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의 삶과 문화가 함께 변화해 온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곁에는 어떤 잔이 자리하게 될지 상상해 보게 된다.
“한 잔 하실래요?” 관계를 담는 잔
잔은 단순히 음료를 담는 도구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한 잔 하실래요?”라고 건네는 말은 단순한 권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말 한마디로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도하고, 오랜 친구와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아침의 커피잔에는 안부가 담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술잔에는 위로가 담긴다. 우리는 잔을 사이에 두고 웃고, 축하하고, 때로는 말없이 서로를 이해한다. 작은 잔 하나가 관계의 문을 열고 ‘당신’과 ‘나’를 ‘우리’로 이어주는 셈이다.
이로써 잔은 단순한 목축임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매개체였음을 다시금 보여준다. 잔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할 것이다.
기억을 담는 잔
독자 여러분의 집 안 어딘가에도 특별한 잔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회사 창립 기념 머그컵, 여행지에서 사온 찻잔, 집들이 선물로 받은 유리잔, 스포츠의 열기를 간직한 기념잔까지. 어떤 잔은 사용한 시간보다 간직한 시간이 더 길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잔이 음료 그 이상, 기억을 담기 때문이 아닐까? 전시에서 소개할 근속 기념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잔 등은 우리가 삶의 중요한 순간을 어떻게 잔으로써 기록하는지 소개한다. 잔은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지나간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열린 수장고 16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람객 여러분의 잔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잔이 오래 사용해 손에 익은 컵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잔일 수도 있다. 어쩌면 특별한 의미를 담아 보관하고 있는 잔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잔들 사이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머물게 하는 잔은 무엇일까. 전시를 거닐며 잔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전시 감상 포인트 2가지
1. 현대가 될수록 점점 가벼워지는 잔의 무게
전시 흐름에 따라 걷다 보면 흙, 돌, 금속, 유리 등 다양한 재질의 잔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손에 쥐었던 도자기 머그컵, 스테인리스 잔, 유리잔을 떠올려보세요. 그 무게감은 어떠했나요? 시대와 재질의 변화에 따라 점점 가벼워진 것 같지 않나요? 이처럼 사용하는 인간에 맞춰 잔의 크기, 무게가 변화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전시를 보면 더욱 재밌을거에요. 가벼워진 잔에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도 생각해보면 좋겠죠?
2. 오늘 내가 쥔 잔은 무엇이었지?
오늘, 또는 어제, 또는 지난주 가장 기억나는 순간에 마셨던 음료가 있나요? 어떤 잔에 담아 마셨나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겠지만, 이곳에 있는 잔 모두 그러한 일상을 지나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잔도 전시될 수 있답니다. 그때가 오면, 여러분은 어떤 잔을 전시하고 싶을까요? 여러분의 잔을 생각하며 관람해 주세요.
민속소식 제316호 (2026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