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 이야기

초복, 중복, 말복에 알아두면 좋은
삼계탕 문화사

글 주영하(한국학중앙연구원 음식인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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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한식진흥원)

왜 한국인은 가장 더운 날 가장 뜨거운 국물을 먹는가. 이 역설 앞에서 삼계탕의 역사가 시작된다.
초복은 태양력으로 6월 21일경인 하지夏至 뒤 셋째 경일庚日, 중복은 넷째 경일, 말복은 태양력으로 8월 7일경인 입추立秋 뒤 첫째 경일이다. 하지 무렵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여름이 열린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음력 7월 15일 백중이 오기 전까지 등짝이 논바닥에 붙도록 세 벌 김매기를 해야 했던 농민들에게 삼복은 고된 노동의 절정이었다. 그 소진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동물성 식품으로 기력을 보충했다.
오늘날 삼계탕이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이러한 오랜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계탕의 시작, 닭백숙
조선시대 문헌 어디에도 ‘삼계탕’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음식의 역사를 추적하려면 두 가지 재료, 즉 닭과 인삼의 연원부터 따져볼 수밖에 없다. 인삼은 가공 방식에 따라 수삼水蔘 ·백삼白蔘 ·홍삼紅蔘으로 나뉜다. 수삼은 캐낸 뒤 열흘 안팎밖에 보관할 수 없어 오랫동안 유통하려면 반드시 건조 가공이 필요했다. 백삼은 4년산 수삼을 껍질 벗겨 햇볕에 말린 것이고, 홍삼은 6년산 수삼을 증포蒸包하여 말린 것으로, 홍삼 가공소가 개성에 처음 설치된 것은 1810년경의 일이었다. 그러니 조선시대 사람들이 닭국에 넣을 수 있었던 인삼은 백삼을 곱게 빻은 가루가 고작이었다.
식민지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요리책이었던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1921년판 『조선요리제법』에는 이런 요리법이 나온다.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발과 날개 끝과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뱃속에 찹쌀 세 숟가락과 인삼 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쏟아지지 않게 잡아맨 후에 물을 열 보시기쯤 붓고 끓리나리라.” 백삼 가루를 넣은 닭 요리의 첫 기록이다. 당시 인삼 가루는 결코 값싼 재료가 아니었다.
그런데 1920년대 들어 조선총독부가 농촌 부업으로 양계를 적극 장려하면서 닭고기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양계 권장의 일차 목적은 달걀 생산량 증대에 있었지만, 서유럽·미국·일본의 개량 종계種鷄가 전국에 보급되면서 식용 닭의 공급도 덩달아 늘어났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우수한 품종의 암탉과 크고 질 좋은 달걀을 선발하기 위해 가축공진회家畜共進會가 수시로 열렸다. 닭이 흔해지자, 비로소 인삼과 닭의 결합이 일부 계층을 넘어 조금씩 대중의 밥상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열렸다.

『조선요리제법』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였던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이 우리 음식 조리법을 집대성하여 쓴 책 1931, 19×13.5cm, 민속88012

1960년대 ‘삼계탕’이란 이름을 얻다
1937년 6월 27일자 <동아일보> ‘상품시황’에는 여름에 계삼鷄蔘의 수요가 상당하여 산지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계삼’은 닭고기에 들어가는 인삼을 가리키는 말로, 이 기사는 식민지기 대도시에서 이미 인삼을 넣은 닭 요리가 여름 보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하지만 그 음식의 이름을 신문이나 잡지에서 계삼탕이라고 표기하지는 않았다.
1942년판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연계백숙 요리법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여름에는 제일등 보양하는 것이니 혹 인삼 먹는 이는 삼을 넣어 함께 고아도 매우 좋으니라.” 같은 해 나온 1942년판 『조선요리제법』도 ‘백숙’ 요리법 끝에 “국물을 짜서 먹나니라”라는 구절을 추가했다. 인삼을 넣고 끓인 닭국물을 약처럼 먹는다는 의미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이 음식을 ‘계삼탕鷄蔘湯’이라고 불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인삼이 아니라 닭고기였다. 여기에서 ‘삼’은 인삼 가루가 아니라 건삼乾蔘이거나 수삼水蔘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계삼탕’이란 이름은 널리 쓰이지 않았다.

삼계탕(셔터스톡)

전환점은 1960년대였다. 냉장 유통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수삼의 전국 공급이 처음으로 가능해졌고, 한국 정부의 양계업 지원 정책으로 닭고기 생산량도 급증했다. 이 두 조건이 맞물리자, 서울의 음식점들은 ‘삼계탕蔘鷄湯’이라는 새 이름을 내걸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서울 명동과 종로 일대의 음식점 광고에 ‘삼계탕’ 명칭이 등장한 것이 그 증거다. 이름의 순서가 계삼에서 삼계로 뒤집혔다. 주인공이 닭에서 인삼으로 교체된 것이다.

인삼(2018, 국립민속박물관)

수삼(농촌진흥청)

삼계탕, K-푸드가 되다
삼계탕의 국제화는 통조림에서 시작되었다. 1974년 대한종합식품이 삼계탕 통조림을 개발해 일본에 수출했고, 1983년에는 레토르트 제품이 국내 시판을 시작했다. 1985년부터는 일본·미주·홍콩·동남아로 수출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닭고기가 가진 특별한 이점이 있었다. 소고기는 힌두교도에게, 돼지고기는 무슬림에게 금기이지만 닭고기에는 그런 종교적 제약이 없다. 인삼에 친숙한 아시아 소비자와 종교적 금기 없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전 세계 소비자, 이 두 시장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었던 것이 삼계탕 세계화의 핵심 조건이었다. 1992년에는 냉동식품으로도 개발되어 호주와 중국 시장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21년 중국 드라마 〈금심사옥〉에서 삼계탕을 한국 음식으로 명시하지 않아 한국 네티즌의 항의를 받는 일이 벌어졌고,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은 삼계탕을 광둥요리로 기술했다. 이에 한국 농촌진흥청이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공식 견해를 내놓았다. 음식의 기원을 둘러싼 이 갈등은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다. 음식의 역사적 맥락이 세계 시장에서 곧바로 브랜드 가치로 전환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17년 7월 19일자에서 “충분히 뜨겁나요? 더 뜨거운 음식을 먹어보세요Hot Enough for You? Try Eating Something Even Hotter”라는 제목으로 삼계탕을 소개했다. 한국인이 뜨거운 여름에 오히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며 땀을 내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는 서양 과학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더운 날 따뜻한 액체를 마시면 땀 증발을 촉진해 오히려 체온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왜 한국인은 가장 더운 날 가장 뜨거운 국물을 먹는가”라는 도입부의 역설이 여기서 답을 얻는다.

마트에서 판매 중인 삼계탕(2024, 국립민속박물관·최지현)

영국 한인마트에서 판매 중인 삼계탕 재료(2024, 주영하)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삼복에는 개고기가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음식의 문화적 맥락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흐른다. 닭백숙에서 계삼탕으로, 계삼탕에서 삼계탕으로, 그리고 K-푸드 브랜드로. 한 그릇의 뜨거운 국물 안에 한국 근현대 농업사·식품산업사·문화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민속소식 제316호  (2026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