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장식(길문화연구소장)
1900년 파리 하계올림픽에서 연날리기Kite Flying를 비공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누가 연을 가장 세련되게 날리는가?”를 겨루는 방식이었는데, 정작 연을 날리는 평가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 대회가 열리는 날, 강풍이 불어 연들이 모두 날아가 바렸고, 경기는 무산되었다. 하나의 해프닝이지만, 이처럼 연은 전 세계적인 놀이Universal Pastime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이라도 하듯 연은 문학작품과 영화에 주요 소재로 쓰였다. 영화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할레드 호세이니, 2003)나 인도의 영화 <가투의 연날리기>(라잔 코사, 2013)가 대표적이다. 작품마다 상징의 차이는 있지만, 연은 꿈과 희망, 무한한 자유, 순수한 열정 등을 가리키는 메타포metaphor로 쓰였고, 서사敍事를 추진하는 동력으로 활용되었다. 연이 지닌 이런 상징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Constantin Gheorghiu는 『한국의 찬가Eloge de la Coree』에서(1984) “하늘을 쳐다보는 자는 노예의 조건을 거부한다.”라면서 연을 날리는 한국인을 노래했다.

실존하는 가장 오래된 방패연과 네모얼레의 하나 (국립문화재연구소,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2017)

지붕 위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_《태평성시도》(113.6×49.1㎝, 국립중앙박물관) 제 3폭 부분도
싸움놀이를 위해 창안된 방패연과 얼레
한국의 방패연은 가히 세계적이다. ‘방패’ 모양으로 만든 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네모반듯한 한지에 ‘干(방패 간)’ 자 모양의 달(댓살을 말함)을 붙이고 가운데는 구멍을 내어, 세로 두 줄의 벌이줄과 가로 활벌이줄을 잡아 만든 연이다. 강한 양력揚力과 선회력, 안정된 비행 등 연싸움에 최적화된 공기역학적 설계를 반영한 연이다.
본래 연은 한자로 ‘鳶(솔개 연)’이라 하지만 『한불 뎐』(1880)이나 기산풍속화의 화제畫題 <아희들 년 날리고>(29×33㎝, 덴마크 국립박물관) 등에서 보듯 우리말로는 ‘년(연)’이다. 이는 하늘을 나는 연의 모습이 먹이를 노리는 솔개鳶와 흡사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고, 종이로 만들었다 하여 ‘지연紙鳶’이라 불려 왔다.
‘方牌鳶방패연’이라는 말은 김수장金壽長의 사설시조 앞부분에 처음 등장한다. “이 시름 저 시름 여러 가지 시름 방패연方牌鳶에 세서성문細書成文하여 춘정월 상원일에 서풍이 고이 불 제, 올 백사白絲 한 얼레를 끝까지 풀어띄울 제, 큰 잔에 술을 부어 마지막 전송餞送하세.” 『동국세시기』에서는 ‘방혁方革’이라 했는데, 이 역시 방패연을 가리킨다.방패연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전통적 지식을 적용하여 만들었다. 바람이 센 바닷가와 평야 지대에서는 연을 크게 만들었으며, 바람이 잔잔한 산간과 내륙지방에서는 작게 만들었다. 이는 놀이 현장의 수많은 경험이 결집된 민속 지식의 결과이다. 바람이 방패연에 닿았을 때 바람의 세기와 연의 대소가 조응하여 연의 비상과 비행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미 체득한 탓이다.
연의 크기로 방패연의 독창성을 따질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연의 중앙에 ‘구멍’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방구멍’이라 불리는데, 연의 세로 길이의 ⅓가량 되는 크기이다. 방구멍은 ‘통풍구’ 역할을 하되 앞면과 뒷면의 기압 차이를 줄여 줌으로써 힘의 평형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방향을 제어하며, 바람의 저항을 줄여 더 멀리, 더 높이 뜨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바람이 센 지방에서는 방구멍을 크게 만들고, 약한 지방에서는 작게 만들었다. 제주도 방패연의 방구멍이 크고, 강원도 산간지방의 방구멍이 작은 것도 이런 탓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방형의 연이 평평하지 않고 아치형이라는 것도 남다르다. 연은 보통 다섯 개의 연살(댓살을 연에 붙인 것)을 결구해서 만든다. 머릿달과 허릿달의 양끝에 활줄을 연결하여 연이 안으로 약간 휘어지도록 했다. 바람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연 이마 쪽에 바람이 강하게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에서다. 이는 형태의 아름다움과 함께 비행을 위한 장치이다.
게다가 활줄의 강도를 조정하는 세심한 배려도 더했다. 바람이 센 지방에서는 활줄을 조여 연의 반경을 작게 하고 바람이 약한 지방에서는 반경을 크게 했다. 활을 조여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하거나 늦추어 약한 바람에도 연을 띄울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럼 방패연은 제작부터 바람과의 저항 관계를 고려하여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

기산풍속화 <년 날니(는) 모양> (16.9×13cm,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기산풍속화 <아희들 년 날리고> (29×33㎝, 덴마크 국립박물관)

사설시조 <이 시름 저 시름…> 『청구영언』(1728, 동경대학 小倉文庫)
방패연을 만들 때 다섯 개의 연살이 필요하다 했는데, 연살의 굵기는 머릿달, 허릿달, 귓달·꽁숫달이 각각 다르다. 무엇보다도 머릿달은 굵고 허릿달은 가장 얇으며, 귓달과 꽁숫달은 보통이다. 연의 틀을 이루는 살이 이처럼 다른 것은 방패연의 구조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머릿달은 연 전체의 뼈대를 유지하는 구실을 하는 탓에 굵어야 한다. 이와는 달리 허릿달은 가장 얇고 가늘다. “있는 둥 마는 둥 하다.” 이는 얇은 굵기로 존재하되 때마다 부는 바람의 영향에 맞춰 자가自家 반응할 수 있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연의 비행을 스스로 조절하도록 유연성에 기반하여 고안된 것이다. 덧붙여 머릿달에 대응하는 아랫부분의 가로에 살이 없다는 것도 방패연의 한 특징이다. 이는 연의 하중을 줄이려는 의도이고, 자칫 달의 무게 때문에 연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방패연은 꼬리가 없다. 하지만 초보자이거나 연을 높이 띄우기 위하여 꼬리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띄우는 요령이 붙으면 달지 않는다. 연에 꼬리를 달면 높이 올라갈 수는 있지만 연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싸움을 할 때에는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방패연은 이와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독창적인 연이다. 연싸움에 최적화되어 있는 연이고, 연싸움을 위해 존재하는 독창적인 연이다. 가오리연처럼 꼬리가 있으면 쾌속적인 이동과 기습적인 공격을 할 수 없다. 구조적 차이에 근거한다면 가오리연은 높이 띄우고 날리는 정적인 완상의 연이라면 방패연은 이에 덧붙여 싸움까지 고려하여 ‘싸움연’으로 탄생한 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다양한 모양의 방패연
연날리기의 묘미를 더하는 얼레
연실을 감고 푸는 데 쓰는 얼레도 독특하고 서양 것보다 훨씬 실용적인 구조이다. 얼레는 나무 기둥의 설주설柱를 두 개나 네 개 또는 여섯 개나 여덟 개로 짜서 맞추고 가운데에 자루를 박아 만든다. 설주의 수에 따라 이모얼레[납작얼레], 네모얼레, 육모얼레, 팔모얼레로 구분하여 부른다.
조선의 얼레를 처음 본 길모어G.W. Gilmore는 『서울풍물지』(1892)에서 얼레를 ‘기선의 외륜을 축소한 것’ 같다고 했고, 구체적인 생김새와 함께 사용법을 설명했다.
“굴대는 손잡이를 이루는 한쪽으로 연장되어 있으며, 감는 손잡이는 다른 쪽에 있는 굴대 위에까지 미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연의 당기는 힘에 의해 줄이 팽팽해질 때 굴대가 달린 감개를 줄과 평형이 되게 하면 줄이 풀려나간다. 줄을 잡아당기려면 줄과 엇갈리게 굴대를 돌리고 한 손으로는 감개의 끝을,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굴대를 잡는다. 그런 다음 전체를 한 번 휘두른 후 빠른 속도로 줄을 잡아당긴다.”1
이처럼 얼레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연줄에 작용하는 힘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연이 나는 높이, 속도,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줄을 천천히 당기다가 갑자기 홱 잡아당기거나 살짝 비틀어 주면 연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이것은 연싸움에서 공격하거나 피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나라 얼레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능을 극대화해 연 놀이의 묘미를 살려주는 뛰어난 놀잇감이다.
연싸움은 승자와 패자가 결정될 때 끝나기 마련이다. 무승부는 없다. 오로지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줄이 끊긴 패자의 연은 실의 장력을 잃어버린 채 주인을 떠나 낙하할 수밖에 없다. 낙하지점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나 바람의 세기와 방향, 연의 높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연을 날리는 사람은 연을 수습할 방법이 없다. 이미 남의 연이 된 것인데, 연싸움이 벌어지면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떨어진 연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게 작동하는 현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떨어지는 연을 쫓는 이들도 하늘을 보며 행운을 꿈꾼다.
1. G.W. Gilmoreㆍ신복룡 역, 『서울풍물지』(1892), 집문당, 1999, 123쪽.

얼레
세상을 읽는 놀이
놀이에 얽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일화가 떠오른다. 오리梧里 이원익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새해 인사차 찾아온 한양의 친척과 문답했다. 이원익이 친척에게 ‘남북촌의 윷놀이’와 ‘중촌의 연날리기’ 및 ‘삼문 밖의 돌싸움’의 상황에 대해 묻자 친척은 “윷놀이는 전보다 신신치 못하고, 연날리기는 그다지 굉장하지 못하며, 돌싸움은 전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원익은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하는데, 연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윷 노는 것으로 양반의 기상을, 연날리기로 중인의 기상을, 돌싸움으로 평민의 기상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 놀이가 부실한 것은 세 계급의 기상이 부실한 것이니, 어찌 걱정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2
놀이에서 세상 이치를 읽어낸 오리 이원익의 혜안이 놀랍다. 오늘 우리의 놀이는 신신新新한가, 굉장宏壯한가, 전만 같은가? 영화 《오징어게임》에 열광한 지구촌은 마침내 K-민속놀이로 향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의 놀이는 세계의 감각을 깨우는 신선하면서도 장엄한 문화적 트렌드가 되었다. 문화가 국력이 되는 도도한 이 흐름 속에서 우리 문화의 무한 변모와 눈부신 발전을 기원한다.
2. 정언학인(鼎言學人), <풍흉을 점치는 여러가지 풍속(完)>, ≪조선일보≫ 1934. 2. 1.

연날리기 《백동자도》 제8폭 (60×34cm,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소식 제313호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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