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편해문(놀이터 디자이너)
자치기는 긴 막대기(채)와 짧은 막대기(알 또는 새끼자)를 이용해 짧은 막대를 멀리 쳐내고, 그 거리를 긴 막대로 재어 승부를 가르는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놀이다. 겨울철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겼던 자치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컴퓨터와 모바일 게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 곁에서 사라진 자치기와 아주 흡사한 놀이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면 놀이의 보편성을 실감하게 된다.


풍속화에 등장한 자치기
사라졌던 자치기와 다시 만나다
인도에 머물며 어린이 놀이를 연구하던 어느 날 아침이 떠오른다. 아침 7시도 안 돼 숙소 밖으로 나갔더니 아이들이 한국 자치기를 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한참을 지켜보았다. 분명 어려서 했던 놀이 방식이나 도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혼란스러움도 잠시 7살도 안 된 아이들의 자치기 솜씨는 가히 예술에 가까웠다. 더 놀란 것은 나중에 나이를 물었더니 다섯 살이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다섯 살 아이의 그 날렵함과 섬세함과 힘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바로 어릴 때 우리 모습이었다. 인도는 가까이 갈수록 자치기보다는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로 건너온 ‘크리켓’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자치기와 크리켓의 유사성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새끼자가 작은 공으로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맞아, 우리도 저 나이 때 저렇게 놀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미자로 고무공을 치면서 말이다. 잠시 생각했다. 한국 어린이의 놀이 시간과 놀이 장소, 놀이 자유는 이 아이들과 견주어 어디쯤 있을까?
자치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놀이가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사라진 놀이다. 가장 큰 까닭은 위험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치기할 정도의 넓고 긴 동네 마당이나 골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놀이가 놀고 싶은 마음만으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놀이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이 놀이환경이란 실제 환경일 수도 있고 심리적이거나 정서적인 환경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던지고 때리고 달리며 내는 소란스러움을 수용하는 분위기인지 아닌지는 무척 중요하다. 딱딱 소리가 나고 빠른 속도로 던지고 쳐내는 자치기가 위험회피 사회에서는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쉽게 거부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신체 능력과 반사 신경이 날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끼자
어렸을 때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어미자로 쳐서 날아오는 새끼자에 맞은 적도 있고, 어미자를 휘두르는 동무 가까이에서 새끼자를 받겠다고 어른거리다 동무가 휘두른 어미자에 맞기도 했었다. 더러는 빠르게 날아오는 새끼자를 날쌔게 피하기도 했고 가끔은 맨손으로 잡기도 했다. 날아오는 새끼자를 맨손으로 잡았을 때 손이야 말도 못 하게 아프고 얼얼하지만, 그 찌릿함을 타고 오는 뿌듯함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인도 오르차Orcha에서는 자치기를 ‘길린 덴다Gilin danda’ 또는 ‘길린 렌더’라고 불렀는데 길린은 작은 자. 덴다는 큰 자라는 뜻이었다. 우리로 말하자면 새끼자와 어미자라고 할 수 있다. 구멍은 구차Gucha라고 불렀다. 어떻게 하는지 보았더니 여기 자치기는 우리가 어려서 했던 ‘푸는 자치기’였다. 우리나라와 좀 다른 것은 새끼자가 이런저런 장애물에 걸려있을 때 어미자로 때려서 올라오는 것을 때려도 되지만, 퍼 올려 때려도 된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날아가는 새끼자를 지키는 쪽이 받으면 죽고 못 받으면 지키는 쪽이 새끼자를 어미자를 향해 던지는데, 맞으면 죽고 안 맞으면 3번 이내에 밖으로 쳐내면 된다. 어미자로 번갈아 재면서 점수를 올리는 것은 같았다. 특이한 것은 새끼자를 발가락이나 발등에 올려 큰 자를 맞춰도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여기서 쓰는 새끼자와 어미자는 판매되는 장난감이 아니다. 어린이가 어미자와 새끼자를 날카로운 돌이나 낫 같은 것으로 직접 깎아 만들어 썼다. 이 또한 장난감과 놀잇감의 큰 차이이다.
자치기를 통해 궤적과 거리와 단위를 이해하다
자치기라는 놀이의 이름을 보면 ‘자’로 시작한다. 여기에 자치기 놀이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자’라는 것은 어떤 기준, 표본, 틀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자치기 놀이의 점수를 계산할 때도 어미자 또는 새끼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은 이 놀이의 이름이 왜 자치기인지 말해준다. 상대방이 부른 거리가 어림짐작으로 너무 많이 불렀다고 판단되면 “재봐?”를 당당히 외쳤고 생각한 것보다 적게 불렀다고 판단되면 “먹어!”라고 했다. 이렇듯 자치기 놀이를 저물녘 새끼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숱하게 치면서 나는 ‘거리’라는 것을 센티미터cm나 인치inch가 아닌 어미자와 새끼자의 기준으로 깨우쳤다. 다시 말해 어미자 하나의 크기가 나의 첫 번째 거리와 길이를 가늠하는 단위가 된 것이다. 덧붙여 배수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만약 새끼자 4개의 길이가 어미자 1개의 길이와 같다면 1:4라는 비율을 이해하게 되는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자치기를 통해 궤적을 어렴풋이 이해했다는 점이다. 새끼자가 날아가는 궤적을 자연스럽게 익힌 감각이 훗날 골프, 축구, 야구, 배드민턴, 테니스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자치기는 크게 어미자로 새끼자를 아래서 위로 퍼 올리는, ‘푸는 자치기’와 새끼자를 한 손에 들고 어미자로 치거나 수비가 던진 새끼자를 역시 쳐내는 ‘때리는 자치기’로 나눌 수 있다. 동일하게 새끼자를 멀리 보내야 하고 수비하는 쪽에서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때 새끼자의 궤적을 보면 진폭이 낮은 포물선에서 높은 포물선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다채롭다. 수비를 잘해서 날아오는 새끼자를 받으려면 출발 지점의 새끼자가 어느 정도의 궤적을 그리며 어디쯤 도착할 것인지 순식간에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는 앞에서 예로 들었던 구기 종목 스포츠에 거의 다 적용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눈부신 점은 여러 구기 종목에 등장하는 기구를 살 수 없었던 형편에서 긴 막대기와 짧은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 ‘자치기’였다는 점이다. 이런 새끼자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가 몇 개 더 있었는데 방향과 힘과 어미자와 새끼자가 절묘하게 만나는 타이밍이었다. 자치기를 잘한다는 것은 이러한 변수를 점점 더 잘 다루게 되면서 자치기 솜씨가 좋아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솜씨를 갖추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잦은 경험이고 긴 시간의 자치기 놀이였다. 
위험한 자치기를 오늘날 되살릴 방법을 찾아서
자치기는 우리 주변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필자는 자치기를 안전하게 즐기는 방법을 답사와 연구 현장에서 발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위험한 자치기를 오늘 어린이 놀이환경 안으로 가져와 되살려낼 수 있는지 실행해 보고 싶었다. 인도와 네팔을 다니며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이 하는 자치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페트병을 새끼자 대신 쓰고 있었고, 어미자는 그대로 막대기를 써 놀고 있었다. 페트병을 눕혀놓고 톡 튀어나온 입구를 때리면 페트병이 위로 솟아오른다. 그때 어미자를 휘둘러 멀리 보내는 방식이었다. 크고 작은 페트병을 새끼자 삼아 때려보니 소리도 뻥뻥 나서 느낌도 좋았고 나무를 깎아 만든 새끼자보다 빠르거나 멀리 날아가지 않아 좋았다. 손으로 받아도 안전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 교사 놀이 워크숍 할 때 해봤더니 누구나 힘들지 않게 거뜬하게 해냈다. 어린이와도 해봤더니 타격감에 매우 즐거워했다. 세상의 놀이를 찾아다니며 이처럼 전통놀이를 현대화하는 숙제를 하나씩 풀 수 있는 열쇠를 만나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다. 놀이를 멈추지 않고 계속 궁리하는 어린이에게 가장 발달한 놀이 형태가 발견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터이다. 자치기는 오늘의 놀이가 될 수 있다.

폐트병을 이용한 자치기
민속소식 제312호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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