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큐레이션

알고 보면 반할 민화
생활의 단면 유쾌한 미학 오천 년 K-민화의 모든 것

글 편집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한 민화 캐릭터도 관심을 받고 있다.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진 배지 등의 굿즈를 수집하기 위한 관람객이 이른 아침부터 박물관 가게에 줄을 설 정도인 요즘은 민화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민화의 이해로 이어지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민화 속 주인공 까치와 호랑이가 어떤 의미인지, 우리 민화가 한국 전통문화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책을 소개한다.

민화계 거목이 집대성한 민화 교과서
『알고 보면 반할 민화』는 민화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기 좋은 책이다.
우선 저자가 우리나라 민화계의 거목 윤열수 교수라는 점에 믿음이 간다. 그는 30년 전 ‘민화 교과서’라고 불린 『민화 이야기』를 출판한 이후 추가 수집한 자료를 엮어 『알고 보면 반할 민화』로 우리 민화를 집대성했다. ‘민화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민화의 역사, 종류, 구성과 색채, 그리고 그림 각각에 담긴 의미까지, 흥미진진한 민화 이야기를 140여 컷의 생생한 도판과 함께 담았다.

민화 속 호랑이

『알고 보면 반할 민화』는 크게 두 개 갈래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갈래에는 민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1부 민화와의 첫 만남’이라는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낯선 민화를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민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민화는 지금까지 상류계층의 감상용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화사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제는 민화가 단지 소박하고 꾸밈없는 민중의 그림이라는 단편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민화의 형성 과정이나 유통과정, 그리고 민화의 내용을 형성하게 된 당시의 시대적 미의식과 전체 미술사적 맥락을 폭넓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갈래가 민화와의 첫 만남이었다면 두 번째 갈래는 민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50년 동안 수집한 도판 자료를 산수화부터 춘화도에 이르기까지 21가지로 분류하고, 각 분류에 해당하는 도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알고 보면 반할 민화』는 초판 출간 이후 30년 가까이 새로 모은 자료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책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도판의 거의 절반가량을 새로 교체하거나 추가했다. 무엇보다 민화 입문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채롭고 생동감 있는 구성과 도판 해설이 돋보인다.

곽분양행락도

장식적 필요에 의해 그려진 그림
저자는 민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다섯 가지 요소를 꼽았다. 첫째는 민화가 가지고 있는 장식적 요소다. 민화는 대부분 병풍의 형태로 집 안에서 사용되었고, 병풍을 설치할 장소나 행사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선택했다. 사랑방에는 책가도나 문자도, 안방에는 화사한 화조도, 모란도, 어해도 병풍이 펼쳐졌다. 민화는 병풍 외에도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청화백자 항아리에는 많은 자손을 바라며 석류를 그려 넣었고, 문살과 창호지에도 여러 가지 장식적인 문양이나 그림 혹은 꽃이나 나뭇잎을 덧붙여 아름다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둘째는 민화에 깃든 토속신앙과 세계관을 꼽았다. 순수 회화가 예술성을 앞세운다면 민화는 실용성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는 저마다 특별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물고기를 예로 들면서 생물학적 특징, 즉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는다는 점과 떼 지어 다닌 점으로 다산을 상징할 때 주로 그렸다고 했다. 이처럼 부귀공명, 무병장수 등 인간으로서의 소박한 바람이 민화에 표현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서민들의 삶에 애착과 동경의 대상을 담아냈다.

셋째 민화는 민간 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민화가 일종의 주술적 효과를 지닌 매개체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민화가 가진 주술적 힘이 여러 가지 재앙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 주고,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랑이 그림인데 호랑이는 영물로서 악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 외에 주술적인 요소를 지닌 민화로는 사신도, 사령도, 용 그림, 산신도, 신장도 등이 있다.
넷째, 민화에는 서민의 공통적인 정서가 담겨 있어, 민화를 통해 당시 서민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민화는 미적 공감대가 개개인으로서의 작가와 감상자가 아니라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도 민화가 서민들의 생활과 함께 숨 쉬면서 형성된 실용성과 대중성을 갖춘 그림이라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다섯째 민화는 ‘뽄’ 그림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민화는 문인화나 도화서 화공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도 내용이나 표현 기법은 달랐다. 민화는 일정한 본을 따라 반복적으로 그려지면서 민중들의 세계관이 전이되었고, 양산되어 보급되면서 민중들만의 세계관이 투영되었다.

문방책가도

화조문방도

널뛰기(기산 풍속화)

자유분방함에 관념을 담은 민화
저자는 민화의 표현법에 대한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민화에는 정형화된 화법이 없으며, 오늘날 민화를 애호하는 사람들은 민화의 매력으로 자유와 독특함, 기발한 표현 기법, 천진스러움을 꼽는다. 민화는 주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사실 묘사에 그치지 않고 어떤 관념을 담고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상상을 동원해 표현한다. 이는 민화만의 장점이며, 그 관념의 실체가 곧 민중이 생각하고 상상하며 꿈꾸고 살아왔던 삶의 바탕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호랑이의 얼굴과 형태에서 앞면과 옆면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책걸이 그림에서 사물의 겉과 속, 혹은 좌측과 우측이 동시에 표현된다. 민화가 사물의 조형적인 어우러짐보다는 그 사물이 가진 기능이나 존재 자체에 주목하는 관념적 회화임을 이러한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민화의 색채 표현 특징도 잘 설명하고 있다. 민화는 모든 색채를 강렬한 색상 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민화에는 어둡고 칙칙한 색이 거의 없고, 모든 사물이 밝고 명쾌하다. 붉은색 옆에 파란색을 똑같은 채도로 칠하여 한 가지 색이 다른 색으로 인해 약하게 보이지 않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복합성과 반복성이 두드러지는 것도 민화만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반복성은 주술적인 면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이라 여겨진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 의지를 드러낸다. 또한 반복성은 주술적 효과 외에도 리듬감을 불러일으킨다.

귀중한 우리 유산, 민화
민화는 우리 겨레의 꿈과 신화, 종교,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귀중한 우리 유산이다. 순수한 감상 목적보다는 장식되는 장소나 쓰임새가 확실할 정도로 실용성을 구비한 회화였기 때문에 이른바 감상만을 평가 대상으로 삼아온 종래의 미술사에서는 거의 무시되어 왔다. 민화에 대한 인식이 변한 오늘날에도 민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세월에 풍화되고 그 빛이 바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윤열수 교수가 『알고 보면 반할 민화』를 집필한 것은 민화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과 더불어 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초보자들도 민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쉬운 방식으로 체제를 편성하고,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면서 귀한 도판까지 풍부하게 담아냈다. 민화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우리 민화를 더 친근하고 가까운 시각으로 마주하길 바란다.

호랑이와 까치를 소재로 한 자수(刺繡)

민속소식 제312호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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