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창호(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하나만 알면…
19세기 저명한 인도학자이자 비교종교학자인 막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는 ‘하나만 알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라는 문구로 유명하다. 이 말은 종교학자인 그가 종교 간 비교 연구 방법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세계 문화에 접근하는 자세를 이야기함에 적용하여도 그대로 들어맞을 듯하다. 모든 문화는 타 문화와의 대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특수성을 드러내는데, 이에 한 문화의 행위 주체로서 타 문화와 조우한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먼 곳에 위치한 이질적 풍속을 대면하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더 깊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그 경험을 우리 가까이로 가져오고자 한다. 2031년 개관을 목표로 세종시에 짓는 새 박물관에서 ‘세계의 민속’을 다루려는 시도는 여러 정황상 시의적절한 모험이라 할만하다. 이미 온·오프라인 상에서 하나로 묶인 세계에 대하여 문화상대주의와 문화적 상호성에 입각한 이해 방법을 알려 줄 제대로 기획된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박물관 건립에 시의성을 더하고 있다. 아울러 국립민속박물관이 그간 얻어온 한민족 생활문화에 대한 대표 국립박물관이라는 평가를 넘어 세계인의 일상과 비일상을 탐색하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삶을 사유하는 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범위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존재론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분명 모험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위의 당위성에서 사명감을 얻고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 임무를 띤 ‘모험단’이 이미 출범하였고, 현재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모험단’은 세계의 민속자료를 수집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각 나라 혹은 민족마다 형태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인류의 보편성이 엿보이는 ‘축제’와 관련된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브라질 현지 연구자 자문회의

인도 현지 연구자 및 전문가 자문회의
무엇을 어떻게?
자료 수집 모험단의 첫 행보는 새로운 박물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이미 소장하고 있는 해외 자료에 더하여 어느 지역의 어떤 자료를 수집할지 중기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사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세계 민속자료 수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일부는 민속연구과의 해외 조사 사업을 통해서, 2009년 이후로는 연차별 문화 비교 전시를 준비하며 그에 필요한 자료를 현지에서 수집한 바 있다.
2025년 올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소장 자료량이 부족한 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지역으로 대상을 특정하여 2025년 3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리우 카니발Rio Canival과 9월 남인도 케랄라Kerala주州의 오남Onam축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해외에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해외 특정 지역 축제에 관련한 전문가를 섭외하였다. 국내에 축제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해외의,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의 연구 인력들과의 협업 네트워크 구축에도 목적이 있다. 조사·연구 방향에 대한 견고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현지 연구자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수집하고자 하는 자료에 대한 현장성과 진위성을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이에 더하여 향후 지속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 전시구성 및 운영에 관련하여도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다. 세계 문화를 다루는 박물관은 특정 문화의 역사적 정황과 맥락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한편 현지 문화의 변화에 반응하여 현장성과 현재성을 갱신하는 데에도 민감해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현지 연구자와의 긴밀한 협력만큼 좋은 방식은 없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전시를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박물관은 사물의 저장소가 아니라 의미의 협상장이다’1라는 말이 있듯이 협업Co-Curation은 과거의 박물관의 모습에 대비되는, 현대 박물관이 가져야 할 지향점이다.
아울러 해외 자료의 수집을 진행하며 느끼게 된 문제의식 하나는 자료를 수집하는 것과 수집 자료의 활용에 대하여 박물관적 윤리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자료 수집은 문화상을 담은 물질연구 활동에 국한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전시를 목적으로 한다. 전시를 준비하는 기획자는 결국 그 자료가 수집된 곳에서 매우 동떨어진—간혹 지구 반대편인 브라질과 우리나라같이—먼 곳에서 자료의 문화적 의미에 대해 ‘대신 말해주는 행위speaking for others’2를 하게 된다. 이것은 달달하지만 위험한 권력과도 같은데,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1978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통해 보여준, 서양이 동양에 대해 만들어 낸 담론과 세계 인식과 같이 오류투성이의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집 자료가 활용될 때에는 반드시 그 자료가 지닌 제 의미를 전달해야만 하는 책임이 부여되며, 자료의 수집 활동에도 위 책임의 바탕이 되는 명확한 정보들이 함께 수집되어야 한다. 자료가 가진 문화적 맥락을 최대한 복원할 수 있는 부가정보Meta-data는 기본이며, 자료의 출처가 되는 개인 혹은 공동체와 활용 범위와 인격권(초상권) 등과 관련 문제들의 사전 협의도 중요하다.
필자가 포함된 모험단은 올해 9월, 남인도 케랄라주 북부의 트리추르Thrissur시市 에반누르Evannur마을에서 오남 축제의 연행극 쿰마티칼리Kummattikali의 대가인 수구마란Sukumaran T.G. 선생과 마주 앉은 적이 있다. 오남 축제에서 활용되는 가면을 비롯한 관련 도구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번의 만남 끝에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우리가 준비한 약소한 선물도, 새 가면 제작에 필요한 현금도 아니었다.
‘오남의 쿰마티칼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선생님 마을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오남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그 전통을 이어가는 선생님의 마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습니다’라는 나름의 진정성을 담은 설득의 말이었다. 돌아보니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자료가 활용된다면, 그에게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진정성 있는 설득에 대한 책임이자 기쁜 낯으로 우리에게 자료를 넘겨준 이에 대한 예의이다. 상대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유·무형의 문화를 그곳에서의 모든 맥락과 단절시키면서까지 강제로 먼 한국으로 옮겨왔을 때에는 그것을 최대한 왜곡 없이 맥락을 지켜 표현해야 할 책임도 함께 가져온 것임을 잊고 싶지 않다.
1. Eilean Hooper-Greenhill, Museum and the Shaping of Knowledge, Routledge, 1992
2. Gayatri Chakravorty Spivak, Can the Subaltern Speak?, 1988

인도 오남축제 현장에 함께한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조사팀과 유물과학과 수집팀
축제 찾아 삼만리
올해 3월, 거의 25시간에 육박하는 비행시간을 견뎌내고 지구 반대편 브라질 땅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축제의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카니발의 행렬은 삼바스쿨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삼바 문화 전승 단체에 의해 준비되는데, 리우데자네이루에만 해도 스물네 개의 삼바스쿨이 존재한다. 카니발 행렬의 행진은 전용 경기장인 삼보드로모 경기장Sambódromo da Marquês de Sapucaí에서 펼쳐진다. 이곳을 경기장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는 참가 행렬마다 규정에 따라 심사위원이 점수를 매기고 이를 통해 순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삼보드로모 경기장에서 행렬을 자랑할 수 있는 단체는 적어도 전년도에 일정 순위 안에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유명 축구 리그League처럼 순위가 매겨져 1·2·3군으로 분류되고 1군이 아니면 전용 경기장에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이다. 카니발의 관광 자원화와 맞물려 상위권 단체에 정부의 지원이 주어지고, 카니발 준비와 연행을 유일한 업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은 일종의 세시歲時처럼 매년 개최되는 리우 카니발의 중요도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제행위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이후 진행되는 조사를 통해 이토록 화려하고 거대한 행렬이 사실은 브라질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 낸 거리 모임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바탕을 알게 되었을 때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환호하던 필자는 손을 허리 아래로 내려 공손히 모을 수밖에 없었다.

삼바 축제 준비장(Cidade Do Samba)의 망게이라(Mangueira)팀 하역장

삼보드로모(Sambódromo) 경기장의 삼바 축제 행렬
우리 모험단은 현지에서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 준 연구자 하파엘Rafael Zamorano Bezerra/Sitio Roberto Burle Marx, IPHAN과 함께 1928년 설립되어 리우 카니발에서 20회의 우승을 거둔 유서 깊은 삼바 단체 망게이라Mangueira와 접촉하였다.
올해 그들이 선보인 리우 카니발 행렬은 리우의 발롱고Valongo 부두에 내린 아프리카 출신 반투Bantu족 노예들이 브라질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오늘날까지 이른 모습,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리우 카니발의 역사성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였고, 망게이라 삼바스쿨의 명성 또한 리우 카니발의 대표로 손색이 없다 여겼기에 2025년 리우 카니발의 현재를 보여주는 자료로 망게이라 행렬 등장인물의 복식 30여 점과 악기, 그리고 행렬 구조물 일부를 철거하여 한국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40피트의 대형 컨테이너에 자료를 빼곡히 싣는 모습이 진귀한 구경거리였던지 사람들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도 그럴 것이 망게이라 측도 카니발 관련 자료를 이처럼 대단위로 반출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모험단 역시 모든 것이 첫 모험이었다.

브라질 망게이라 상징 깃발 기증자와 함께

브라질 구입 자료 정리
2025년 9월, 모험단이 올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이미 주지한 남인도 케랄라주에서 연행하는, 수확의 감사를 담은 힌두교 축제 오남 현장이다. 오남 관련 자료 수집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가면극 조사’와 연계 추진한 것이다. 오남은 전설속의 인물인 마하발리Mahabali 왕의 강림을 경외하는 의례 행위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집 문 앞에 다양한 장식을 두어 그 귀환을 환영한다. 특히 푸칼람Pookalam이라 하는 땅에 꽃잎을 뿌려 만드는 문양은 매우 화려하고 다양하다. 본격적인 오남 행사는 아타차마얌Athachamayam이라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시작한다. 이후 각 마을에서는 힌두교의 여러 신의 가면과 함께 몸을 치장한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고 각 집에 방문하여 의례적 성격을 지닌 공연을 연행하기도 한다. 모험단은 민속연구과 조사팀과 함께 현지 연구자 고팔라크리쉬난K.K. Gopalakrishnan/South Zone Cultural Centre, India Ministry of Culture의 도움으로 케랄라주 트리추르시市 일대의 오남 축제 현장 조사에 함께하며, 민속연구과에서 조사한 마을 중 하나를 선택해 축제에 활용하는 가면과 소품을 수집하였다.

인도 풀리칼리 모습
자료 수집은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추진하였다.
첫째, 마을마다 변형된 형태의 쿰마티칼리 연행 양상이 두드러지기에 현지 연구자의 도움을 받아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것을 선정하였다. 둘째, 가급적 축제 준비 및 연행과정을 충실히 재현할 수 있도록 가면과 복식 등 중심자료 이외의 부가적 자료 수집에도 만전을 기하였다. 예로 마하발리 왕의 강림을 경배하는 놋기 등의 의례용품, 오남 축제 기간이 표시된 달력 등에서부터 몸을 치장할 때 사용하는 짚이나 풀을 모으기 위한 포대 자루 등 오남의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자료를 가능한 한도 내에서 풍부하게 수집하고자 노력하였다.

브라질 소규모 축제 조사 촬영

인도 현지 조사
앞으로 또…
자료 수집 모험단은 해외에 직접 나가서 조사와 자료 수집을 진행하는 일 외에도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세계 민속자료로의 접근 방식을 다양화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는 이미 몇 차례 있었던 개인 소장가들의 기증 사례를 토대로 개별 컬렉터들에 대한 적극적 홍보가 포함될 것이며 유명 경매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수집방법의 전략화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10월에는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과 협력해 현재 일본에 들어와 있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프로그램 참가국 중 국립민족학박물관의 문화 연수 프로그램 ‘박물관과 커뮤니티 개발博物館とコミュニティ開発’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현지 조사·연구 및 자료 수집을 위한 협업을 제시하였다.
현재 동 프로그램에는 이집트, 수단, 나우루, 파푸아뉴기니, 팔라우, 피지 등 10여 개 해외 박물관과 문화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 모험단은 새롭지만 준비된 여러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수집한 세계 민속자료들이 새 공간에 멋지게 구현될 날을 기대하며 간혹 크고 작은 전시로 중간 결과를 공유할 것이고 이미 세워진 중기 계획에 발맞춰 차근차근 빈공간을 채워 나갈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 민속자료의 수집은 결국 세계 문화를 다루게 될 국립민속박물관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옛 제국주의 시대에 지식을 시각적으로 소유하는 데 열중해 그 수집품을 한 건물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 오늘날 공공박물관의 시작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박물관학 분야에 큰 화두를 던진 뉴뮤지올로지New Museology는 근간의 박물관 역시 문화 권력과 지식 자본의 독점자로 규정하고 정치·경제적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 비 식민화된 전시, 다시 말해 어떠한 영역에서도 상대를 관찰과 판단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 전시를 지향한다. 이에 더하여 보는 이의 시선과 이해를 막지 않는 관람자 참여형 해석 공간, 사회적 의제의 공유 공간, 사회적 실천의 장으로서의 박물관을 강조하고 있다. 어떠한 주제 의식 위에서 세계 문화에 접근한다는 것은 인류의 문화적 특수성과 공통성 이해의 첫 단계이며 그 끝은 인간의 이해이다. 따라서, 세계 문화를 다루는 박물관은 단순히 문화적 광경이 병렬로 펼쳐진 ‘문화의 비교 공간’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공공 철학을 실험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시도의 첫걸음이 해외 민속자료 수집 사업이라 생각한다. 현장과 연결된 자료, 이와 연결된 현지 연구자, 이것을 기반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새로운 전시 공간이 세계로 열린 창을 넘어 세계로 연결된 창으로 기능했으면 한다. 현지의 연구자들과 가상 혹은 실제로 공론의 장을 마련해 그 결과가 적용되는 공간. 현지 연구자가 전해주는 현장의 변화상이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공간. 우리만의 시각으로 타 문화를 설명하고 규정하지 않는 공간. 때로는 현지 연구자들이 자기들의 문화 언어로 우리에게 설명해 줄 기회가 마련되는 공간. 전시장에 표현된 세계 문화의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관람자와의 담론이 가능한 공간.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새 박물관의 완공이 예정된 2031년까지도 무리이다. 그러나 완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완성되어가는 과정의 중요함에 무게를 두고 가능 여부에 대한 고민을 쌓아나가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새로 만드는 박물관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세계 민속자료를 수집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도 그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함께 담아 가고자 한다.
민속소식 제312호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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