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훈영(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빛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루의 시작은 빛으로 열리고,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이 오면 인간은 또 다른 빛을 만들거나, 다시 빛이 올 시간을 기다린다. 이처럼 빛은 인간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요소였으며, 사람들은 언제나 빛을 곁에 두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빛의 여정을 되짚고, 그 의미를 조명하는 «겹빛: Where Gleams Overlap»을 2025년 7월 23일(수)부터 10월 26일(일)까지 선보인다. 개방×공유×활용을 모색하는 수장고에서 펼쳐지는 일곱 번째 수장형 전시로, 인간 삶 속에서 빛이 어떤 방식으로 머물고, 변화해 왔는지를 소장 유물과 현대 작품으로 함께 살펴본다.
호롱과 등잔, 촛대와 같은 민속자료 200여 점과 각기 다른 시선으로 빛을 재해석한 13명의 현대 작가 작품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말 그대로 ‘빛의 결이 겹쳐지는’ 장면을 열린 수장고 16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발화-확산-활용-확장’의 순서로 전개된다. 불을 붙이는 찰나에서 시작해,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고, 실용의 형태로 자리하며, 결국에는 빛 그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여정까지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 삶 깊숙이 자리한 ‘빛’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한다.
Red, 발화: 빛의 시작을 알리는 찰나의 불빛
불을 붙이는 순간, 어둠은 물러나고 빛은 태어난다.
이 작은 불씨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어둠을 지탱해 온 최초의 빛이었다. 빛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소장품은 바로 등잔과 초이다. 등잔은 종지형, 호형, 탕기형 등 형태가 다양하다. 등잔에 기름을 담고 심지를 넣어 사용하던 단순한 구조에서 점차 인화성이 높은 석유를 사용하면서 뚜껑 형태의 등잔이 등장한다. 소기름과 벌집의 틀인 밀랍은 각기 우지초牛脂燭, 밀초蜜燭와 같이 전통 초로 만들어져 불빛의 재료가 되었다. 빛을 내기 위한 서로 다른 재료는 저마다의 질감과 색을 품고 있어 한 자리에 놓여 있어도 서로 다른 ‘빛의 체온’을 전한다.
전통 등잔에서 영감을 받은 박소희 작가의 <호롱> 시리즈는 전통적인 조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과거의 쓰임이 오늘날의 감성 안에서 다시 호흡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과거의 빛’과 ‘지금의 빛’이 나란히 놓인 이 장면은, 하나의 시간이 다른 시간 위에 겹쳐지는 전시의 상징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호형등잔(쌍심지등잔)
Yellow, 확산: 공간을 물들이는 따뜻함을 머금은 빛
작은 빛은 놓인 위치에 따라 그 크기를 달리해 점, 선, 면으로 ‘확산’한다. 일정한 공간을 밝히는 ‘점’의 빛은 등잔대와 촛대에서 비롯한다. 등잔대는 독서나 바느질 등을 하는 옛 실내 공간에서 활용했다. 유기로 제작한 촛대는 초를 꽂아 사용한 도구로, 촛불이 내는 따뜻한 빛과 다양한 불후리[火扇]로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제등提燈의 빛은 사람이 내딛는 발걸음에 맞춰 ‘선’이 된다. 제등은 다각형 틀의 등으로, 손잡이가 있어 어둠을 헤치며 나아가는 사람 곁에 항상 있었다. 틀에 종이나 천을 바르고, 산수화와 화조화를 그려 미감을 더하기도 했다. 천장과 들보에 걸리던 현등舷燈의 빛은 ‘면’으로 퍼져 공간을 더욱 밝게 비춘다. 이 흐름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현대 작가의 작품도 소장품과 함께 자리한다. 김동규 작가는 <호롱불>로 등경燈檠의 구조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해 전통 등잔을 올려놓는 위치에는 유리 실린더를 놓아 디퓨저나 화병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했다. 진혜린 작가의 <흰빛 시리즈Light>는 이장압인泥裝壓印 기법을 사용해 빛의 방향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가변적인 그림자로 빛과 그림자의 조화, 그로 인해 나타나는 빛의 선과 면 요소를 강조한다. 최승천 작가는 전통 문양을 재해석하고 금속과 목재와 같이 서로 다른 물성을 결합한 <촛대>를 통해 물리적 장식 안에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한다.
Blue, 활용: 생활을 넘어 실용의 영역으로
‘활용’에서는 빛이 실용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석유, 카바이드, 전기처럼 에너지 자원의 발달은 빛의 쓰임을 새롭게 했다. 빛은 더 밝고, 더 넓고, 더 오래 지속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망망대해의 야간 조업을 가능케 한 배등, 어두운 갱내를 환히 밝히는 탄광안전모의 빛은 산업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그야말로 한줄기의 ‘빛’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감정을 전달하고 몰입을 유도하는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빛은 플래시건과 무대 조명으로써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빛은 삶의 실질적인 도구로 자기 존재를 새로이 증명한다.
‘새로운 쓰임’이라는 공통적인 주제 아래 이혜선 작가와 윤지훈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혜선 작가의 <손등대> 시리즈와 <Frog Lighthouse>는 버려진 바다 쓰레기를 조명으로 재탄생시킨 작업이다. 쓰임을 다한 물건에 새로운 빛을 입혀, 조명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생태적 성찰의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지훈 작가의 <Mushroom Series>와 <Mini Lamp Series>는 흙으로 빚어낸 도자 조명으로, 자연 일부로 작동하는 빛의 순간을 포착한다.

남포등
White, 확장: 빛의 의미를 찾아가는 끝없는 과정
색은 섞일수록 어두워지지만, 빛은 섞일수록 오히려 밝아지고, 결국에는 하나의 흰빛에 도달한다. 그 끝에서 우리는 질문한다. “빛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전시의 마지막인 ‘확장’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 현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저마다의 작품에는 빛의 본질과 의미를 탐색하고 이를 활용한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부지현 작가는 폐집어등을 활용한 <Luminous>를 통해 빛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소비의 순환을 되짚는다.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도시의 야경을 형상화한 랩크리트LAB.CRETE의 <B-01 Light Scape Series>는 차가운 재료 속에 빛을 담아 따뜻한 감성과 위로를 전한다. 동아시아 전통 건축물의 생명력을 빛으로 옮겨온 다주로Dajuro의 <호롱>과 <초롱>, 금속 장신구의 오링O-ring 구조를 착안해 관계의 균형을 탐색하고 빛과 그림자로 조형적인 리듬을 만들어낸 방효빈 작가의 <O-Light Series>와 <X-Light Series>도 선보인다. 고비考備에 꽂힌 두루마리 모습에 영감을 받아 전통의 질서와 관념을 빛으로 풀어낸 강애란 작가의 <Scrolled Book>, 프리즘에 굴절된 빛의 다양한 색으로 실존에 대한 사색과 탐색을 하는 김선희 작가의 <실제, 실체의 실재│다가오는 파동>, 재료의 각 교차 지점을 버려진 통신 케이블로 엮어 관계의 결을 탐구하고 삶의 연속성과 생명력, 회복성을 이야기한 이성근 작가의 <인간+자연+사랑+빛>까지 모두 ‘빛’이라는 개념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 작업 결과물이다.

김선희 작가 〈실제, 실체의 실재 I 다가오는 파동〉
특별하고, 이색적인 일곱 번째 수장형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이하 파주관)는 2021년 7월 개관 이래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수장형 전시를 진행해 오고 있다.
수장형 전시는 소장품의 안정적인 보존을 위한 공간에 전시 기능을 더해, ‘보존’과 ‘향유’라는 두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파주관만의 특별한 전시 방식이다. 이는 박물관이 그간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대중에게 ‘개방’하고, 널리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파주관의 설립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열린 수장고’에서 개최하는 이번 «겹빛: Where Gleams Overlap» 전시로 관람객은 겹겹이 쌓인 빛의 문화사는 물론,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시간의 층위까지 느끼는 특별하고도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겹빛: Where Gleams Overlap》 전시장
수장형 전시 «겹빛: Where Gleams Overlap»
ㅇ 전시 기간: 2025. 7. 23.(수)~10. 26.(일)
※ 관람 시간: 10: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ㅇ 전시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수장고 16
ㅇ 전시 내용: ‘빛’을 주제로 등잔, 호롱, 카바이드등,
<Luminous>, <Scrolled Book 3>, <Scrolled Book 4>, <인간+자연+사랑+빛> 등
민속 유물, 현대 공예 및 설치 작품 총 240여 점 소개
ㅇ 전시 해설 운영 시간
-화요일: 10:30, 13:30 (1일 2회)
-수~일요일: 10:30, 13:30, 15:30 (1일 3회)
※ 박물관 사정에 따라 전시 해설 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해설 시간 변경 시 박물관 누리집(파주관)을 통해 공지합니다.
민속소식 제311호 (2025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