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연구자

민속 현장과 함께한 진정한 민속학자
민속 현장과 함께한 진정한 민속학자
월산 임동권 선생

글 정형호(전 한국민속학회 회장)

월산 선생의 삶의 발자취
월산月山 임동권1926~2012 선생은 1926년 충남 청양군 장평면 분향리에서 풍천 임씨 임철순의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청양이지만, 주요 생활권이 부여 은산면이기에 그는 부여의 은산소학교를 졸업했다. 이로 인해 은산별신제*를 일찍 접하고, 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며, 1940년 소학교 졸업 후 일본 도쿄의 슌다이駿台상업학교에 유학 중인 형의 권유로 같은 학교에 입학해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1943년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후, 징용을 피해 청양의 중석 광산에서 일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이른 유학 생활이 그로 하여금 한일 민속의 비교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서울로 올라와 위당 정인보 선생의 권유로 진단학회가 주축이 된 국학 전문 대학인 국학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해 전쟁 직후 졸업했다. 이후 예산농업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3년 국학대학교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겼다. 1958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으로 옮겨, 1961년 최연소로 학장이란 보직을 맡게 된다. 이후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1968년에 우석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민요의 사적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후에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가 합병하면서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자리를 옮겨 정년까지 후학을 길렀다.

* 은산별신제는 충첨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마을 사당인 ‘별신당’에서 열리는 제사이다.

서라벌예술대학 학생들과 함께(1972년)

민요 수집 정리와 체계적 연구
월산 선생은 국학대학 시절 방종현, 고정옥 선생의 ‘민요론’을 청강하며 본격적으로 민요 수집과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후에 “민요의 세계는 황홀하다. 순박하고 진솔하고 가식 없이 마음을 그대로 쏟아놓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인간의 세계가 있어 좋았다.”고 회고했다.
1950년대부터는 전국의 민요를 조사하여 『한국민요집』 1~7권1974~1993을 연이어 출간한다. 그는 수집한 2만 5,000여 개의 민요를 약 570여 종으로 구분하고, 그 중 (성인)민요를 340종, 동요를 230종으로 구분했다. 문학적 표현을 중심으로 체계적 분류를 시도했으며, 일부 기능성을 가미했다. 그리고 『한국민요사』1964, 『한국민요연구』1974, 『여성과 민요』1984, 『한국민요논고』2006 등의 민요 역사서와 이론서를 통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민요의 시대적 흐름을 살폈으며, 민요에 나타난 색채, 한恨, 미美, 여성 등의 사설을 분석했다. 또한 민요와 민속극, 민요의 시대상, 국문학사적 의미 등에도 접근했다. 주로 문학적 접근에 의해 사설을 수집하고 이를 분석했으며, 많은 자료에 구체적인 조사 시기와 장소, 가창자의 인적 상황 등이 누락되어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초기 민요 연구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뛰어나며, 연구를 통한 심화 작업은 후학의 몫이라 여겨진다.

평생 유지한 현장 중심의 조사연구
월산 선생에게 민속 현장은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전쟁으로 의해 민속의 기반이 급변하고, 또한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에 따른 도시화로 인해 농촌이 해체되며 민속 자체가 소멸되는 시기에 현장 조사는 매우 시급한 과제였다. 이런 현지조사 작업은 민속 모든 분야에 평생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결과 그는 50여 권의 민속 관련 저서와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민속 일반론, 세시풍속, 민간신앙, 민속놀이, 설화, 민요를 비롯해, 한일민속의 비교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특히 마을공동체 속의 정을 바탕으로 한 나눔의 민속에 주목한 ‘분여分與의 민속’에 대한 글은 주목된다. 근래 한국인이 기부에 인색하다는 주장은 민속의 무지에서 나온 잘못된 시각이란 점을 밝히고 있다.
월산 선생이 가장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은 그의 고향 청양 민속조사이다. 청양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제자들과 함께, 2001년부터 2020년까지 13회에 걸쳐 청양의 민속을 집중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청양의 민속개관, 민속연희, 세시풍속, 마을신앙, 산속과 민간의료, 관혼상제와 풍수, 의식주와 점복, 금기어와 길조어, 민요, 지명과 전설, 당제, 시장민속, 물질문화, 전통오락과 놀이, 두레, 구비문학, 교통과 교역, 산촌민속, 교육, 단·당·사, 금석문, 토박이의 삶, 인생의례, 공동체 의례 등 24권의 민속 시리즈 책을 출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며 제자들에게 잇게 한 이 작업은 한 지역 민속조사의 전범典範이 될 것이다.

서재에서의 월산 선생

민속학 관련 최초의 민속학회 창립
그는 1960년대, 민속 관련 학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관련 학자들과 함께 1969년 ‘민속학회’를 창설한다.
창립 초기부터 열악한 상황 속에서 20여 년 동안 학회장을 맡아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 관련 학회로 성장시켰다.
당시 ‘한국민속학회’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고 ‘민속학회’란 학회명을 사용한 것은 최상수가 1955년 한국민속학회를 만들어 거의 홀로 이끌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상수는 초기 몇 차례 학회지를 거의 혼자 출간한 이후 활동을 중단했고, 후에 월산 선생은 활동이 중단된 최상수의 학회를 흡수 통합하여 현재의 한국민속학회로 잇게 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한국민속학회는 1969년부터이며, 현재까지 56년에 걸쳐 수많은 학술대회 및 학회지 81호를 발간하는 성과를 내며 민속 관련 학회의 본가로서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한국민속학회에서 왼쪽부터 현용준, 김태곤, 임동권, 박계홍, 지춘상 (1973년)

오랜 기간 무형문화재위원 역임과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심사 참여
그는 1964년부터 문화재 위원을 32년간 역임하여 초기 무형문화재 제도의 수립과 정착에 힘썼다. 그러면서 1960년대 후반부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18년간 심사위원을 맡아 전국의 민속을 발굴하여 보존하는 일에 힘을 썼고, 이를 토대로 각 지역의 많은 문화유산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무형문화재는 1962년에 제도화되었으며, 그는 약 2년 후에 문화재위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 제도는 사라져가는 무형문화의 체계적 보존 활성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전국의 수많은 민속을 발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현대에 와서 민속 경연화의 부작용과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저조하여 점차 축제화로 방향을 바꾸며 개선되고 있다.

한일 민속의 비교 연구
그는 일찍이 한일 민속의 비교 연구에 관심을 가져 1974년 7월 19일부터 8월 15일까지 조사단을 이끌고 일본 대마도對馬島와 그 남동쪽의 이키섬壹岐島의 민속조사를 실시한다. 당시 임동권, 김태곤, 지춘상, 현용준, 박계홍 등의 민속학자들이 조사단으로 참여해 분야별로 정밀한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계속해서 현지조사를 하며 일본 속의 백제문화의 영향, 한국과 일본 신앙과의 비교, 한국과 일본의 궁중의례 등에 비교연구를 시도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본 일본의 민속문화』2004에서는 한국 마을신앙과 대마도의 천도신앙, 한국 격구와 일본 타구, 한일 산육속産育俗의 비교, 백제 왕족과 사주제師走祭의 관련성을 다루었다. 『일본 안의 백제문화』2005에서는 백제 관련 유적과 신사 중심의 마을신앙, 천황 계보, 대장군 신앙, 백제의 신격 전파 등을 통해 백제문화의 일본전파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일궁중의례의 연구』에서는 한국과 일본 궁중 상장례를 비교하고, 일본 궁중의 신앙, 제의, 세시, 습속 등을 살펴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의례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살피고 있다. 한일 민속의 관련성을 비교한 5권의 책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월산민속학술상 제정으로 민속학계 연구 지원
그는 2003년,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와 저술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민속학계에 처음으로 ‘월산민속학술상’을 제정한다. ‘학술상’은 근년에 중요 학술서적을 저술한 기성 연구자에게, ‘학위논문상’은 신진 대학원 학위 논문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2024년까지 17회째 수상되었으며, 학술상에 17인, 학위논문상에 11인이 각각 수상했다.
기존 학술상을 보면, 비교민속 분야에 최인학, 노성환, 민요에 강등학, 이소라, 김혜정, 연희에 박진태, 윤광봉, 전경욱, 허용호, 불교민속에 김용덕, 구미래, 설화에 강재철, 임재해, 물질민속에 김광언, 고광민, 민간신앙에 현용준, 사회민속에 김미영 등의 다양한 학자들이 수상했다.

2004년 월산민속학술상 시상식

한국 민속학계의 중추적 학자 양성
월산 선생은 민요 수집 연구에 가장 힘을 쏟았지만, 민속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와 연구 작업도 실시했다.
또한 민속학자의 양성에도 힘을 쏟아 많은 그의 제자들이 한국민속학계를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초기 국학대학교의 제자로는 김태곤(무속), 하효길(마을신앙), 박상규(언어민속) 등이 있으며, 서라벌예술대학에서는 다양한 연극, 영화계 핵심 예술인을 배출하고, 한국 최초로 사진학과를 신설했다. 중앙대학교 재직 시에는 박전렬(일본 연희), 한양명(놀이), 좌혜경(민요), 김종대(설화), 정형호(연희), 장정룡(세시풍속), 박현국(설화) 등의 민속학자를 배출해 한국 민속학의 맥을 이어가는 산실이 되었다.

민속소식 제311호  (2025년 09월)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