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효찬(전시운영과 학예원)
국립민속박물관은 충주박물관과 함께 K-museums 공동기획전 «연기 위에 지어진 삶, 충주 엽연초 이야기»를 개최한다.
오는 9월 11일(목)부터 충주박물관에서 진행될 이 전시는 충주의 담배 농업 소개와 잎담배 생산 농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충주 특산물, 담배
충청북도 충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은 무엇일까? 평소 충주에 관심이 없던 외지인이라면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사과’를 연상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사과도 충주의 대표 특산물이기는 하지만 1970년대부터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 역사가 깊은 것은 아니다. 충주에는 사과보다 더 유명하고 오래된 특산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잎담배다.
“담배의 고장 충북을 가노라면 마을마다 여기저기 흡사 망루와도 같은 연초 건조실이 서 있음이 처음 보는 눈에는 기이하게 비치기도 하지만, 충주-중원이 사과의 고장임을 또한 몰랐다.
길 따라 가는 곳, 산비탈 들녘마다 사과밭이 없는 곳이 없고….”
– 조선일보 기사(1977. 4. 23.) 중
잎담배는 궐련과 같은 제조 담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주원료로, 농작물인 ‘담배’의 잎을 말려서 만든다. 잎담배는 한자어로는 엽연초葉煙草라고도 한다.
지금도 한여름 충주의 들녘에서는 사람만큼 큰 키에 연둣빛의 넒은 잎을 거느린 담배가 줄지어 자라난 풍경을 볼 수 있다. 무더위 속에서 이것의 잎을 수확하고 건조하는 농민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본래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황토로 지은 담배 건조장이 유적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조선중요물산 겸 특산물분포도(1930년대)
충주와 그 일대에 갈색 잎으로 그려진 담배[煙草]가 보인다.
충주 잎담배, 영광의 기억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있는 담배 품종은 재래종·황색종· 벌리종Burley·터키종 등이 있다. 충주는 황색종* 재배의 중심지다. 황색종은 종이말음담배인 궐련과 파이프용 담배의 주원료가 되는 품종으로, 건조 후 잎이 황색을 띠게 되므로 황색종이라 한다.
충주가 지난 100여 년 동안 황색종 담배의 주산지로서 자리 잡은 것은 조세 확보를 위한 전매제 시행에 앞서 1912년 조선총독부가 충주 지역에 황색종 담배 재배를 장려하면서부터다. 달리 말해 충주의 담배 재배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굳건히 하려는 일본 제국주의 정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충주의 특산물이자 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으로써 잎담배의 가치를 실제로 지키고 키워온 것은 다름 아니라 담배 농사에서 먹고사는 길을 찾은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1912년, 농민 251명, 경작면적 약 14ha로 시작한 충주의 담배 재배는 꾸준히 성장해 1978년에는 농민 5,155명, 경작면적 약 2,400ha에 이르렀다. 충주 담배는 이미 광복 전인 1930년대부터 지역 특산물로서 자리 잡았고, 1960년대부터는 국내 담배 수요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 것은 물론,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효자 상품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이러한 성장은 무엇보다도 매년 때마다 밭을 지키며 담배를 가꾸어 온 농민들의 땀과 생계를 이으려는 의지 덕분이었다.
* 황색종 담배는 미국 버지니아가 원산인 담배 품종의 하나이다. 버지니아종(Virginia種)이라고도 한다.
고온에 노출시켜 장시간 건조했을 때 노란 빛을 띤다. 특유의 풍미가 있고 상품성이 좋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재배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담배 농사
담배는 농사짓기 힘든 것으로 손꼽히는 작물이다. 이 말은 우선 말 그대로 정말 힘든 ‘노동’이 필요한 것이 담배 농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담배 농사는 특정 시기에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한다. 다른 농사도 그렇지만 특히 담배 농사는 모종을 밭에 심을 때와 수확할 때가 더 힘들다. 작물의 특성상 기계화·자동화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농부의 고된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과거에는 담배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끼리 서로의 일손을 돕는 품앗이로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곤 했다. 더욱이 수확기인 7~8월은 충주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운 시기이기 때문에 농민들의 수고를 어렵지 않게 가늠해 볼 수 있다.
담배 농사가 힘들다는 것은 단지 노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사를 짓고자 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시설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쇠락한 산업의 기억
1970년대 말 성장세에 정점을 찍은 충주의 담배 농업은 1980년대부터 점차로 움츠러들었고,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수도, 경작지의 총 면적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더 이상 충주의 주요 산업으로서의 의미도 다소 희석되었다. 아마도 ‘충주’하면 떠오르는 대표 특산물로서의 이미지도 이때부터 옅어졌는지도 모른다.
1980년대는 담배가 대중들의 인식에서 점차 권하기 어려운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때이다. 그 당시 영상들을 보면 버스나 기차,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흡연에 대한 규범이 엄격한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무질서해 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공공위생이나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면서 흡연 에티켓에 대한 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금연 캠페인이나 정책도 확산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 흡연이 가진 보건의학적인 위험성에 대한 연구 성과도 널리 알려지면서 오늘날 담배는 정말로 권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담배에 대한 전매제도가 점진적으로 해체되었다. 해방 이후 전매 실무를 담당해 오던 국가기관인 전매청은 1987년에 한국전매공사, 1989년에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점차 변화한 끝에 결국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공공성보다는 이익을 우선 도모하는 사기업이 된 것이다. 그와 함께 국내 담배 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산 담배의 수입이 자유화되었다. 외국산 담배가 소비자의 선택지에 놓이게 된 것은 물론이고, 저렴한 외국산 잎담배도 담배 제조에 사용되게 된 것이다. 계약재배라는 형식을 통해 여전히 충주 농민들이 생산한 잎담배는 수매를 통해 전량 수익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고된 농사를 지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충주 담배 농업의 미래는?
«연기 위에 지어진 삶, 충주 엽연초 이야기» 전시를 준비하면서 만난 몇몇 충주의 담배 농사짓는 농부들은 한결같이 담배 농사짓기가 참 외로워졌다고 말했다. 주변에 담배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줄어들어 마을 사람들끼리의 담배 품앗이는 예전의 추억으로나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대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다. 담배 파종에서 수확과 건조, 선별에 이르기까지 멀리 캄보디아에서 온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농촌의 보편적인 문제로 자리 잡은 고령화와 공동화가 충주의 담배밭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현상으로 인해 충주에서도 담배 농사가 조만간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그런 징후일 것 같다고 말한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지면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농민 한 명당 재배 면적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만나본 농민들 모두 스스로를 ‘대농’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 농사를 대하는 농민들의 태도나 접근에도 변화가 있다. 땀 흘리는 노동으로서의 농업이라기보다는 인력을 관리하고 자본의 투자를 결정하는 경영자로서의 면모가 더 강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충주의 담배 농업은 변화하는 세태에 맞춰 진화하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2025년, 충주 농민 105명이 146ha의 땅에서 담배를 재배하고 있다. 내년, 또 내후년, 충주의 담배 농사는 어떻게 될까? 충주박물관에서 열리는 K-museums 공동기획전 «연기 위에 지어진 삶, 충주 엽연초 이야기»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좋겠다.

수확하는 농부들(2025년)
민속소식 제311호 (2025년 0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