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문화

장을 보다 문화를 만나는 곳, 시장
한국의 장터

글 이광준(서귀포시 문화도시센터장, 문화연구자)

어느 지역이든 시장에 가보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시장은 그 지역의 문화를 볼 수 있는 창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이나 출장 갈 때 자연스럽게 그 도시의 시장을 먼저 찾아간다. 신선한 채소, 신기한 공예품,
현지어 한마디는 그 지역의 생활과 정서를 느끼게 한다.
우리의 전통시장 ‘장터’는 단순한 상품 유통의 장소를 넘어 그 지역의 문화가 살아 있는 장소로 또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변천
고려 시대에는 지방에서 열리는 시장을 ‘향시’라고 불렀다. 혈연 공동체 중심으로 30~50가구 규모의 촌락 단위에서 생산된 잉여 물품을 필요한 생필품과 교환할 수 있는 장소였다. 마을 주민들이 물품을 사고팔기 시작하자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었다.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문화 공연을 펼치는 이들도 모여들었다. 이렇게 시장은 물품을 거래하는 기능과 문화 공연을 향유하는 기능을 함께 갖게 되었다.당시 시장이 열리는 시기는 2일장, 3일장, 5일장, 10일장 주기로 다양했다. 조선 시대 초기 시장의 모습은 고려 시대 향시를 계승하면서 체계화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보면 고려 ‘향시’를 ‘장시場市’, ‘장’으로 바꿨다. 그리고 지방에서 매 5일 마다 태음력으로 1·6·11·16·21·26일 주기로 열리는 장을 ‘오일장’으로 명명했다. 조선 시대 시장은 크게 상설 시장인 ‘시전’과 정기 시장인 ‘오일장’으로 나뉜다.
태종 때 종로와 청계천 일대에 800칸 규모로 조성한 ‘시전’은 국가가 공인한 시장으로 365일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산물이 모이는 교역의 중심이었다.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던 정기 시장 ‘오일장’과 부정기 시장을 합하면 1,000여 개의 시장이 있었다. 제주에도 제주시 오일장, 서귀포 오일장, 한림 오일장, 대정 오일장, 표선 오일장, 고성 오일장, 세화 오일장, 함덕 오일장 등이 현재까지 이어진다.
다양한 농산물과 해산물, 제주 전통 음식과 공예품까지 거래되는 오일장에서 지금도 제주 지역의 특색을 경험할 수 있다. 최근에 전국의 ‘오일장’의 숫자는 460여 개로 줄었지만, 여전히 지역의 저렴한 생산물과 지역 소식을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중심지로 남아 있다.

담양읍 장날(1978년)

장보러 가는 날 ‘장날’
5일 주기로 시장이 열리는 날을 ‘장날’이라고 부르고 장이 서는 장소를 ‘장터’라고 한다. 주민들은 장이 서는 ‘장날’에 ‘장터’로 장 보러 간다. ‘장날’과 ‘장터’는 한국적 시간과 공간 개념과 그 과학성을 알려 준다. ‘장날’은 한 달을 6회로 나누어 5일 간격으로 열리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1·6장(매달 1·6·11·16·21·26일), 2·7장(매달 2·7· 12·17·22·27일) 등으로 분산해 시기를 조정했다. 5일 주기는 농산물의 신선도, 이동성, 소비자 예측 가능성을 고려해 5일 주기 체계로 편성했다. 판매자는 날짜가 겹치지 않은 인접한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을 팔 수 있고, 소비자는 매번 새로운 상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대에 5일 간격은 식재료를 부패하지 않게 소비하기에 적절한 주기였다. 매일 시장을 열기에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고, 간격이 길면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한다. 오일장은 냉장 기술, 운송 인프라, 주간 개념이 미약했던 시대의 가장 합리적인 유통, 소비 시스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장이 서는 곳 ‘장터’와 장터 문화
조선 후기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오일장’은 ‘하루에 걸어서 왕복할 수 있는 30리(12km)’의 거리에 벌집 모양으로 배치되었다. 30리는 사람이 반나절 만에 걸을 수 있는 거리로 마을에 사는 주민이 아침에 집을 나서 장터에서 장을 본 뒤 해지기 전에 돌아갈 수 있는 거리다. 육각형 벌집 모양은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격자에 비해 모든 방향으로 고른 분포를 형성해 골고루 경제 활성화를 꾀한 지혜의 산물이다. 조선 시대 시장 체계인 ‘오일장’의 거리와 배치는 놀랍도록 과학적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장날에 제의를 올리고 향시 게시판에는 혼인·장례 공고를 올리고 과거 응시자들이 시험 준비 서적을 매매하거나 풍물패 탈놀이 등의 공연이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시장은 물품 거래 공간을 넘어 광고 센터이자 지역 뉴스 센터 역할을 했다.

판매하기 위해 늘어놓은 바구니와 담소를 나누는 상인들

현대의 장보기 문화와 팝업 스토어 등장
전통시장은 현대 사회의 소비 습관 변화로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시장 기능을 넘겨주고 쇠퇴해 왔다.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연 이마트 창동점이 최초의 대형 마트였고, 이후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엑스몰, 타임스퀘어 같이 쇼핑, 오락, 문화를 묶은 소비문화 공간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이후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쇼핑이 빠르고 편리한 배송과 소비자 리뷰 등을 제공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를 넘어서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확산은 역설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오프라인 소비 문화를 낳았다. 특히 20~30대 소비자들은 서울 성수동 등지의 팝업스토어와 지역의 로컬마켓을 찾는다. 이러한 장소는 단순히 상품 판매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팝업스토어에서 브랜드와 직접 교감하고 소셜미디어에 경험을 공유한다. 로컬 마켓에서는 지역 특산물과 수공예품 등 차별화된 상품을 통해 지역 문화를 만나고 지역 생산자를 만나는 경험을 즐긴다.

홍대역 부근 팝업스토어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무빙’의 팝업전 (2023년)

전통시장과 문화시장은 지역문화의 팝업스토어
우리는 클릭 한 번만 누르면 다음 날 아침 물건을 받아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팝업스토어는 ‘기다림조차 기꺼이 즐길 만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마주하며 교감하는 순간이 주는 신선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제주에 오면 오일장을 찾아 땅과 바다가 어우러진 삶의 방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담을장, 벨롱장, 모드락 플리마켓, 모모장, 놀멍장 등 제주 곳곳에서 일주일, 한 달 주기로 열리는 시장은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놓친 ‘사람의 온기’와 ‘지역 고유의 분위기’를 전해 준다. 오늘날에도 한국의 전통시장은 스스로의 문화적 가치를 지켜 가며, 해외 방문객에게 한국 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전하는 중요한 무대가 된다.

민속소식 제311호  (202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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