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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3

한국족보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
《명당明堂, 그림에 담다》

한국족보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K-museums 공동기획전 《명당明堂, 그림에 담다》를 개최한다. 한국족보박물관은 대전광역시 중구에서 설립하여 운영하는 공립박물관으로, 한국인의 족보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 2010년에 문을 열었다. 한국족보박물관은 244개 문중에서 자발적으로 성씨 조형물을 설치하여 민관협력으로 조성한 뿌리공원에 터를 잡고 있다. 매년 가을 뿌리공원에 조형물을 세운 각 성씨의 퍼레이드로 시작하는 효문화뿌리축제는 올해 14회를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족보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협업하여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다.

상례에서 떼어낸 명당도
이번 전시는 한국족보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인 족보에 수록된 산도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산도山圖는 일생 의례의 마지막 장소인 산소와 주변 지형을 그린 지도로, 조상을 명당明堂 옆에 장사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인의 일생을 전시한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 3관에는 상례의 한 부분으로 전시된 명당도를 집중 조명한다. 상례 이후 후손의 효는 제사와 산소를 돌보는 행위로 표현된다. 산도에는 조상을 명당에 모시는 마음, 분묘의 위치를 그려 기억하는 마음, 조상을 모신 장소를 족보에 수록하여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산도에 그려 전하는 묘소는 나와 조상을 연결하는 장소가 되고, 조상의 음덕을 기억하여 전승하는 풍수 설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뿌리공원 풍경

명당, 부모를 모시는 마음
한국인은 좋은 땅에 살고 싶어 한다. 좋은 땅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땅의 기운이 잘 보전되는 공간이다. 살기 좋은 터를 찾아 복을 받고자 하는 기술을 양택풍수라 하고, 죽은 사람을 모실만한 좋은 땅을 찾아 복을 받는 기술을 음택풍수라 한다. 풍수지리에 따라 찾은 좋은 땅을 명당이라 한다.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좋은 땅의 기운을 받은 조상의 유골과 같은 뼈를 가진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족보에 남긴 산도를 통해 명당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이해하고, 조상 덕에 번영한 후손이 조상의 분묘를 중심으로 문중을 이룬 과정과 믿음의 체계를 풍수의 원리와 설화에서 찾고자 하였다. 조상을 편안하고 좋은 땅에 모시는 일이 부모에게 드릴 수 있는 자녀의 마지막 효라면, 복을 받은 후손이 번성하고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저승에서라도 보고 싶은 것이 부모가 받고 싶은 효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명당에 장사하고 당대발복을 이룬 조선시대 학자 정인지가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따라 명당이 펼쳐진 전시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1부. 명당, 좋은 기운이 모인 땅을 찾아서
풍수는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의 기운이 산맥을 이루며 전국으로 뻗어 가는 것을 용이라 부르며, 기운이 한자리에 모인 곳을 혈이라 한다. 혈장의 기운이 흩어지지 않도록 바람을 갈무리하는 주변의 산을 사라 하고, 수水는 기운의 흐름을 멈추고 혈장에 머물도록 한다. 명당은 풍수지리설의 관점에 따라 용·혈·사·수가 조화를 이룬 땅이고, 명당을 찾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풍수지리서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당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쇼케이스 배치로 표현했다. 키가 큰 장을 녹색으로 도색하여 조종산祖宗山에서부터 내려오는 용맥의 숲을 표현하고, 키가 작은 쇼케이스를 이용하여 좌청룡과 우백호를 표현했으며, 전시실 한쪽을 뿌리공원 잔디광장이 보이도록 개방하여 혈장의 중심에서 바라보는 명당을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2부. 산도, 명당을 그리다
지도는 만든 사람의 지리적 지식, 의도와 목적에 따라 일정한 규칙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지도는 만든 사람들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산도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가치와 경관 인식을 보여준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명당이라 생각하는 지형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고 조상의 분묘와 주변 산세를 그렸다. 실제 명당의 모습과 다른 무덤이라 할지라도, 풍수적 명당의 규칙에 맞추어 산도를 그렸다. 산도는 망자가 묘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산세와 물의 흐름을 담은 것으로 지도의 위쪽이 북쪽으로 설정된 현대의 지도와 다르게 망자의 머리가 매장된 방향을 지도 위쪽에 그린다. 시신이나 사람이 그림에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산도의 중심에 조상이 자리한다고 생각하여 그린 것이다.

삼한국 대부인 흥례이씨 산소

3부. 가문 전설의 현장을 그리다
우리 집은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말할 때, 뼈대가 있다는 표현은 조상을 명당에 모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유골이 산화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땅의 좋은 기운이 조상의 뼈를 통해 같은 뼈를 가진 후손에게 유익하게 작용한다는 풍수 발복의 원리를 나타낸 말이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거나 안되면 산소 탓이라는 말도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다. 명당 발복 이야기는 조상과 후손이 무덤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전승한다. 실존하는 장소를 그린 산도는 풍수 전설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한산이씨는 관청 마루 밑에 시조의 묘를 쓰고 발복했다고도 하고, 가정 이곡의 어머니 흥례이씨 할머니를 무학대사가 알려준 자리에 모시고 발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시대 학자 정인지는 아버지를 뱀이 내려와 개구리를 잡아먹는 형국의 산에 모시고 당대발복當代發福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하동정씨 집안에서는 뱀의 먹이가 부족하지 않도록 개구리가 사는 연못이 무너지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 명당 발복 이야기뿐만 아니라 적선하여 명당을 얻은 해평윤씨, 백 마리의 소 대신 흰 소로 제사 지내고 명당을 얻어 목조를 낳은 이양무의 설화가 전하는 준경묘도 소개된다.

하동정씨 하동부원군 정흥인 산소 (정인지의 아버지)

산도, 부모를 가까이 모시는 그림
18세기 종법제 확립 이후 17세기 실전묘 찾기와 묘지 소송, 즉 산송山訟의 증가는 조상 분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파평윤씨는 실전했던 선대의 묘를 찾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아 산도첩을 발간했다. 파평윤씨 산도첩 서문에서는 선조의 묘를 가까이 모시는 듯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조상의 묘를 일상에서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마음과 실묘하는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산도를 제작한 것이다.

협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국족보박물관은 전시실이 좁아 모든 가문의 산도를 보여줄 수 없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산도 아카이브를 담은 키오스크 제작을 제안하였고, 한국족보박물관에서는 소장자료를 전수조사하여 산도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장한 산도 520점을 K-museums 사업을 통해 키오스크에 담아 누구나 검색해 볼 수 있도록 전시함으로써 아카이브 구축 사업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조상탓? 조상덕!
처음에 전시담당자들은 한국족보박물관에서는 드론으로 산소를 촬영하여 평면적인 산도와 함께 보여주고자 했었다. 한산이씨 가문이 삼한국대부인 흥례이씨 할머니 묘소의 발복으로 번영하게 되었다고 하여, 명당 국세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고자 드론을 띄웠다. 그러나 촬영 시작과 동시에 드론은 야산으로 추락하게 되었고, 동네 어른들의 도움으로 풀과 넝쿨이 우거진 숲을 뒤져 4시간 만에 드론을 찾을 수 있었다. 촬영한 영상은 복구할 수 있었지만, 날개가 망가져 더 이상의 촬영은 어려웠다. 가정 이곡의 어머니이자 목은 이색의 할머니 흥례이씨께서는 우리 박물관의 특별전이 명당의 비밀을 발설하는 것 같아 불편하셨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정인지의 아버지 묘소를 찾았을 때, 함께 갔던 촬영팀 모두 고장난 드론을 아쉬워했다. 산 중턱보다 높은 곳에 정흥인의 묘소가 보였지만 묘를 향해 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드론만 있었으면 촬영을 쉽게 마칠 것인데 결국 숲을 헤치고 산을 오르기로 했다. 한 시간 이상 산길을 걷다가 정흥인의 묘를 만났다. 어두운 숲을 빠져나오며 만난 명당의 광명한 빛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아버지를 모실 명당을 찾아 이 산길을 걸었을 정인지의 마음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정인지가 걸었을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전시 영상을 촬영했다. 그렇게 전시를 여는 영상은 흥례이씨 할머니 묘소에서 드론이 추락한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

이번 《명당, 그림에 담다》 공동기획전시는 2023년 12월 31일까지 한국족보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전시가 한창인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박물관 앞 잔디광장에서 효문화뿌리축제도 열린다. 명당 발복을 받은 후손들이 모여 가문 전통을 대대손손 이어가는, 살아있는 민속의 현장을 함께 관람해보시길 바란다.


글 | 심민호_한국족보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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