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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2022 K-museums 공동기획전 《정동에서 피어난 문학향기》 개최

이화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2022 K-museums 공동기획전’ 《정동에서 피어난 문학향기》를 개최하였다. ‘K-museums 공동기획전’은 국립민속박물관과 지역박물관이 상호 협업하여 지역의 우수한 문화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사업이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산하 이화박물관은 이화학당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5월 개관하였다. 1886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에 의해 설립된 이화학당은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으로, 현재는 이화여자고등학교가 그 맥을 이어 기독교 교육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이화박물관은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공모에 참여하여 2022 K-museums 공동기획전 협력 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주제 선정과 기획, 디자인, 홍보 등 전시 전 과정을 긴밀하게 협업하여 성공적으로 지역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공동기획전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화박물관의 공동기획전 《정동에서 피어난 문학향기》2022.05.31.~2022.12.31.
이번 전시는 정동이라는 공간, 특별히 여학생의 학교생활을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살펴본 전시이다. 정동은 대한제국의 중심이자, 전근대와 근대의 시간이 교차한 공간이다. 쓰개치마를 쓴 여성과 파란 눈의 서양인은 덕수궁 돌담을 걸었고, 마지막 조선의 궁과 최초의 서양식 호텔, 최초의 학교,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이 공존한 공간이다. 여성에 대한 교육이 전무했던 시절, 여학생들은 이화학당에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독교 신앙 아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문학의 싹을 틔우게 되었다. 글을 익힌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였고, 학교 안에서 펼쳐진 다양한 문학 활동은 이들의 문학적 역량을 키워냈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양한 문학 활동과 문인들의 작품을 통해 타인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이 전시의 모티브가 되었던 작가 신지식申智植(1930~2020)을 기리고 추억하는 공간을 마련하여 작가의 삶과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다. 작가 신지식은 이화여고에 재학하던 고2때, 전국여자고등학교 문학 작품 현상공모에서 수석으로 당선된 이후 여러 편의 창작집을 발표하고, 이화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문예반을 이끌었다. 또한 새로운 작가를 양성하는데 힘쓰는 한편, 교지에 『빨강 머리 앤』을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교지에 연재된 『빨강 머리 앤』은 당시 상처받고 좌절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었는데, 교지가 나오는 화요일 점심에는 온 학교가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고 한다. 『빨강 머리 앤』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신지식은 묵묵히 작가의 길을 걸었고 수많은 동화, 소설, 수필 등을 창작하였다. 신지식은 정동과 학교에서 자라난 여학생이 작가로 성장한 예로, 이를 통해 또 다른 작가들이 서로 영향을 받아 꽃 피운 문학의 이야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이러한 정동과 문학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며 1부 <문학의 싹>, 2부 <문학의 뜰>, 3부 <문학의 향연>, 4부 <문학과 신지식, 그리고 빨강 머리 앤>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문학의 싹>
최초의 여학교가 들어선 정동과 그 안에서 시작된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았다. 그림으로 남아있는 이화학당 한옥교사 모습과 당시 학생들의 교과서사민필지, 디셰략해, 국어 문법, 수업 시간표와 학생들의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2부 <문학의 뜰>
1세대 작가인 신여성 김일엽, 시인 백국희, 소설가 장영숙을 소개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월간지 『신여자』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성의 견문을 넓히고 계몽하는 일에 앞장 선 김일엽의 시 「알거든 나스라」를 읽어볼 수 있도록 하였고, 1937년 현대조선여류문학 선집에 그 이름을 올린 백국희, 장영숙의 글을 전시하였다. 이들의 뒤를 이어 많은 학생이 『이고』, 『배꽃』, 『거울』 등의 교지를 발행했고 다양한 문학 활동을 펼치며 문학의 뜰을 가꾸어나갔다. 특별히 1954년 창간한 이래 현재까지 68년간 꾸준히 간행된 교지 『거울』은 학생 기자들이 취재하고, 국내외 동창생과 여러 기관에 이화의 소식을 보도하는 동시에 문예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시·소설·수필·콩트·기행문 등을 발표하게 함으로써 문학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발판이 되었다.

3부<문학의 향연>
정동과 학교에서 자라난 대표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는 공간이다. 초기 문학계는 여성들의 문필 활동을 여류문학이라고 칭하고 이들의 문학을 부드럽고, 섬세하고, 자상하고, 고운 문학으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특유한 개성과 시각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며 그 지평을 넓혀갔다. 시인 신동춘, 희곡작가 강성희, 수필가 전숙희, 아동문학가이자 수필가 이영희, 소설가 김제영, 허근욱, 손장순, 김지원. 3부에서는 이화를 대표하는 8명의 문인과 이들의 대표작, 그들의 어록을 전시하였다.

4부<문학과 신지식, 그리고 빨강 머리 앤>
작가 신지식을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전시장 가운데 빨강 머리 앤의 ‘초록지붕 집’을 배치하고 그 집 안에 신지식이 기증한 육필원고, 사진, 서신, 상패 등을 전시하였다. 또 ‘빨강 머리 앤’ 영상과 신지식의 대표작, 동화 작품 등을 전시하여 선생의 작품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하였다. 특별히 4부에서는 독특한 모양의 인어상이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김수로와 허씨 부인의 이야기인 『황옥공주』를 모티브로 1974년 부산에 설치한 해운대 동백섬의 인어상 모형이다. 신지식은 코펜하겐에 있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처럼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황옥공주』라는 동화를 창작하였고, 김정숙 조각가가 이를 조각하여 청동 인어상을 완성하였다.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이미지로 사용된 배꽃이미지는 1937년 발행한 교지 『이고3호』의 이미지이다. 이화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간행한 『이고3호』는 재학생과 졸업생, 교사와 기성작가의 문학 작품이 다양하게 실렸다. 특별히 『이고』는 이화의 초창기 50여 년의 기록이 담긴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학교의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으나 이 자료를 통해 학교의 연혁, 선교회와 동아리 소식, 졸업생 명단 등을 확인하였다. 이번 전시의 대표적인 유물은 1954년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는 교지 『거울』이다.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듯 바스러질듯한 『거울』 창간호와 초창기 모습, 그리고 영인본으로 만든 16권의 『거울』은 정동에서 피어난 문학의 향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상을 통해 『거울』의 기사와 삽화 등을 소개하였고, 전시장 곳곳에 『거울지』 단편을 비치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 당시의 글과 감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전시는 글로 경험하던 문학을 유물과 인물을 중심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갖고자 기획되었다. 낡은 교지와 사진, 그리고 지난 시절의 트로피 등은 그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공감과 추억의 장을 만들어주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학생들에게 그 시간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

작가 신지식을 아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저마다 다른 추억을 가진 ‘빨강 머리 앤’을 통해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적 공감을 경험하게 되리라 여겨진다. 책보다는 디지털 이미지를 더 좋아하고, 펜 글씨보다는 컴퓨터 자판이 익숙한 학생들도 이 공간에서 손글씨도 써보고, 원고지도 써보면서 문학이 주는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 서은진_이화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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