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놀이
투호, 던지기 놀이Target-throwing game의
변주와 보편성
글 장장식(길문화연구소장)
마크 보알이 각본을 쓰고 캐서린 비글로우가 연출한 영화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2012의 중반부에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유희 장면이 짧게 등장한다. 9ㆍ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10년의 여정을 다룬 이 영화에서, 해군 특수전 대원들은 작전 대기 중 짬을 내어 모래바닥에 박힌 말뚝stake을 향해 U자형 편자를 던진다. 이른바 ‘편자 던지기Pitching Horseshoes’이다. 이 시퀀스는 단순한 여가 묘사를 넘어, 전장의 긴장감과 일상의 이질적 대비를 조명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민속학적 관점에서 편자Horseshoe는 서구 사회의 전형적인 ‘행운’과 ‘벽사辟邪’의 상징물이다. 동시에 유희적으로는 목표물에 편자를 정확히 안착시켜야 득점하는 정밀한 구조를 지닌다. 이는 실체가 모호한 빈 라덴이라는 거대한 표적을 향해 파편화된 단서들을 정교하게 수렴시켜야만 하는 등장인물들의 고독한 추적 과정을 시각화한 강력한 은유이다.
투호 및 유사 놀이를 고찰하며 이 영화의 편자 던지기를 서두에 소환하는 까닭은, 투척을 통해 목표를 점유하려는 인류 보편의 지향성이 영화의 서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도구와 양식은 상이할지언정, 인간은 투척이라는 행위로 자신과 세계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고
중심을 확보하려는 본능적 욕망을 공유한다.

투호投壺
민속 000818

<호자투호豪子投壺>
기산 김준근, 19세기, 31.5×39㎝, 국립중앙박물관
성리학적 도道에서 풍류의 유희로: 동아시아의 투호投壺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향유된 투호投壺, Pitch-pot는 병이나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어 그 숫자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기원은 중국의 『예기』 「투호」 편에 상세히 기록될 만큼 유구하며, 한반도에도 일찍이 전래되었다. 『북사』 「백제전」과 『신당서』 「고구려전」의 기록은 투호가 삼국시대부터 이미 우리 민족의 상층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방증한다. 고려 예종 11년1116에는 중단되었던 투호를 부활시키기 위해 그림을 곁들인 교범을 편찬하라는 왕명이 내려질 정도로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투호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 도덕적 수양의 도구로 격상된다. 특히 성종은 투호에 대해 깊은 철학적 통찰을 피력했다. 1478년 신하들에게 “투호는 희롱하고 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이다.”라고 강조하며, 재신宰臣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중히 행할 것을 명했다. 이는 북송의 사마광司馬光이 저술한 『투호신격投壺新格』의 서문에서 강조된 ‘마음을 다스려 덕을 살피고治心觀德’와 ‘마음을 평정하고 몸을 바르게心平體正’ 하는 성리학적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즉, 화살을 던지는 찰나의 집중을 통해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성리학적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정적靜的 수양’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1,000원 권 옛 지폐에 퇴계 이황의 초상과 함께 투호가 그려진 것 역시 이 놀이가 지닌 이학적理學的 가치를 상징한다.
그러나 18~19세기로 접어들며 투호의 성격은 변모하기 시작한다. 규범적인 엄숙함보다는 시회詩會나 아회雅會의 흥취를 돋우는 세련된 풍류의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

투호화수
<투호>
화수(華受), 19세기, 64.5×42㎝,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
조선 후기의 문인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남긴 『투호집도投壺集圖』는 이러한 시대적 경향을 선명히 투영한다. 그는 명대 소설 『금병매』의 투호 방식을 차용하여, 항아리에 꽂힌 화살의 형세에 따라 예술적 품격을 부여하고 시를 짓는 정교한 규칙을 고안했다. 이는 사마광의 전범典範을 계승하면서도 유희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새로운 문화적 시도였다. 김홍도의 <투호도>나 신윤복의 <임하투호林下投壺> 같은 풍속화 역시, 엄숙한 의례의 틀을 벗어나 자연의 품에서 자유분방하게 투호를 즐기는 당대의 면모를 생생히 포착하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후기 풍속화 중 ‘투호’ 그림에는 “인도仁道, 의방義方, 중용中庸, 성신誠愼”이라는 성리학적 핵심어가 화제로 적혀 있다. 이는 놀이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마음 밑바닥에는 유교적 이념을 잊지 않겠다는 조선 지식인들의 다짐과도 같다. 그들은 놀이와 의례, 유희와 수양의 경계에서 화살 끝에 자신의 마음을 실어 보냈던 것이다
도道에서 일상까지; 일본의 도센쿄投扇興 vs 서구의 고리 던지기와 콘홀Cornhole
일본으로 건너간 던지기 놀이는 섬세한 미학의 옷을 입고 ‘도센쿄投扇興’로 피어났다. 18세기 후반 에도 시대에 유행한 이 놀이는 투호의 화살 대신 접부채扇子를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방식이다. ‘마쿠라 枕’라 불리는 오동나무 상자 위에 은행잎 모양의 표적蝶(나비)을 세워두고, 일정한 거리에서 가벼운 부채를 던져 이를 떨어뜨린다. 도센쿄의 진면목은 부채와 표적이 바닥에 떨어져 만들어진 형태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단순히 맞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종 형상을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무라사키 시키부가 지은 장편 소설)나 『백인일수百人一首』(백 명의 시인이 지은 일본 전통 정형시 와카和歌 한 편씩을 골라 모은 시집) 같은 고전 문학의 특정 장면과 연결하여 점수를 매긴다. 예를 들어 부채와 표적이 빚어낸 특별한 형상에는 ‘유기리夕霧 (저녁 안개)’나 ‘유메노우키하시夢浮橋(꿈의 부교)’ 같은 문학적 명칭이 부여되고, 나름의 높은 점수가 부여된다. 이는 던지기라는 신체 활동을 문학적 감성과 결합시킨 정신 유희이다. 초기 교토의 귀족 계층에서 시작된 도센쿄는 이후 에도의 요시와라吉原 같은 유곽 지대로 퍼지며 대중화되었다.

춘유투선홍
<춘유투선흥春遊投扇興>
우타가와 구니사다(歌川国貞), 1849, 도쿄 도립중앙도서관
너무나 큰 인기를 끈 나머지 도박으로 변질되기도 하여 막부로부터 금지령을 받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전통 보존회에 의해 엄격한 유파로 계승되고 있다. 부채가 허공을 가르는 궤적과 부드러운 낙하는 일본 특유의 ‘정중동靜中動’ 미학을 대변하며, 다도茶道나 화도花道(꽃꽂이 예술의 도)처럼 마음을 닦는 하나의 ‘도道’로 인식되고 있다.
서구 문화권의 던지기 놀이는 보다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배경을 지닌다. 투호와 구조적으로 가장 흡사한 유럽의 민속놀이는 ‘고리 던지기Playing Quoits’이다. 이는 로마 시대의 원반Discus 던지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금속이나 로프 재질의 고리를 던져 땅에 박힌 말뚝에 거는 방식이다. 중세 영국에서는 하층민들의 군사 훈련 대용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이는 현대의 교육용 ‘고리 던지기’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국민적 인기를 누린 ‘콘홀Cornhole’은 삶의 현장이 만든 산물이다. 말 그대로 옥수수 알갱이를 채운 주머니Bean bag(콩주머니)를 경사진 판의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이다.
약 8.2m의 거리에서 정교한 힘 조절을 통해 콩주머니를 구멍에 ‘골인’시키는 메커니즘은 투호의 물리적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21점을 먼저 내는 팀이 승리하며, 매회 상대의 점수를 상쇄하는 ‘캔슬레이션 스코어링Cancellation Scoring(양 팀이 획득한 점수를 비교하여, 낮은 점수를 낸 팀의 점수를 높은 점수를 낸 팀의 점수에서 뺀 나머지 점수를 해당 이닝의 최종 점수로 인정하는 규칙)’ 방식은 고도의 전략을 요구한다. 서구의 이러한 놀이들은 농경과 목축, 그리고 대장간이라는 노동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투호가 화살이라는 무기를 정화하여 예禮를 만들었다면, 서양의 던지기 놀이들은 노동의 도구를 유희화하여 현대의 ‘스포츠’로 전환시킨 사례이다. 현재 미국 콘홀 조직ACO이나 세계 콘홀 기구WCO가 매년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할 만큼, 이 놀이들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대중문화로 기능하고 있다.

쿼이츠던지기
<쿼이츠 던지기Pitching Quoits>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1865, 68×136.5㎝, 미국 하버드 미술 박물관
남북전쟁 당시 북군 진영에서 벌어진 병사들의 쿼이츠 던지기 놀이 장면이다. 보통 무거운 금속 고리를 사용했지만, 그림 속 병사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말발굽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림의 제목을 ‘편자 던지기(Pitching Horseshoes)’라고도 한다.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이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쿼이츠 놀이하는 광부들Pitmen Playing at Quoits>
헨리 파커(Henry Perlee Parker), 1831–1841, 77×64㎝, 영국과학박물관

<시골의 놀이 고리던지기Rural Sports or Game at Quoits>
토머스 로런드슨(Thomas Rowlandson), 1811, 24.7×35.4㎝,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편자 던지기Pitching Horseshoes>
해롤드 앤첼(Harold Anchel), 1935, 24.1×33.7㎝,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인류의 보편성이 빚어낸 놀이의 결과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던지기 놀이’의 분화는 인류가 공유하는 표적 지향적 본능을 보여준다. 한국의 화살, 일본의 부채, 서구의 편자와 북미의 콩주머니는 각기 다른 생활양식과 철학을 담고 있지만, 그 모든 궤적은 ‘나’라는 주체로부터 떠난 물체가 ‘목표’라는 객체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다.
동양의 놀이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정좌靜坐와 사양의 미덕辭讓之禮을 강조했다면, 서양의 놀이들은 물리적 정확도와 점유를 통한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몸짓은 결국 흩어진 개별 존재를 하나의 점(항아리, 말뚝, 구멍)으로 수렴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를 찾아가려는 인간의 원형적 욕망을 반영한 듯하다.
투호, 도센쿄, 고리 던지기와 편자 던지기, 그리고 콘홀, 이들은 각기 다른 이름이지만 비슷한 은유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던지는 행위는 단순히 점수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보이지 않는 삶의 과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인류 공통의 수행 방식일지도 모른다. 같은 행위 속에 담긴 서로 다른 문화적 변주, 그것이 바로 인류 정신의 보편성이 빚어낸 아름다운 놀이의 풍경이다.

말구두 던지기
말구두 던지기 게임
민속소식 제315호 (2026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