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사람들
전통의 지혜와 첨단 기술로
만들어가는 서화 보존처리
– 국립민속박물관 서화보존실 –
글 편집팀

왼쪽부터 김소연 학예연구원, 전지연 학예연구사, 정혜경 학예연구원
국립민속박물관이 어느덧 개관 80주년을 맞았다. 우리 민족의 삶과 궤를 같이 해온 수많은 유물이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박물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물관의 소장품인 서화書畵류는 온·습도에 민감하고 재질이 취약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유물과학과 서화보존실의 전지연 학예연구사, 정혜경 연구원, 김소연 연구원과 함께 서화 보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물의 최전선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사람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서화보존실은 서화 소장품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진단해 보존처리하고,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보존 환경 전반을 관리하는 곳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보존과학실은 2000년 보존 분야의 연구원을 채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출토 복식 유물 처리를 중심으로 업무가 이루어졌는데, 전용 시설이 없어 박물관 옥상에서 유물을 처리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후 2002년 수장고를 개조해 보존처리 전용 공간을 마련하며 보존과학실의 기반을 구축했다. 2004년에는 분석·보존환경, 섬유, 목칠 분야의 학예연구사를 채용하고, 서울관 건물 뒤편의 보존과학실 단독 건물에서 체계적인 연구 환경을 갖추었다. 2006년에는 서화, 목재, 금속 분야 담당 인력이 추가로 채용되며, 현재의 분석·보존환경, 직물, 서화, 목재, 금속보존실로 구성된 체제가 완성되었다. 2020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한층 개선된 연구 환경에서 보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서화보존실의 수장인 28년 경력의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서화류 소장품의 전반적인 보존처리와 더불어 수장고의 온·습도, 조도, 공기질 등 보존 환경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정혜경 연구원은 보존처리와 함께 미생물이나 해충으로부터 유물을 보호하는 생물방제 지원 업무를, 김소연 연구원은 보존처리와 보존 환경 관리 지원을 담당하며 철저한 분업과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서화 보존은 다른 분야와 달리 미술 전공자들의 비중이 높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그 이유를 ‘재료에 대한 몸의 이해’에서 찾는다.
“1997년 대학에서 문화유산보존학과가 생기기 전에는 미술 전공자들이 이 길을 많이 택했습니다. 미술 전공자가 종이, 비단, 안료, 아교 등 서화 재료를 직접 다뤄본 경험은 수많은 변수를 예측하는 데 큰 강점이 됩니다. 지금은 정혜경 연구원, 김소연 연구원처럼 문화유산보존학과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현장에 많이 배치되고 있습니다.”

접착처리
<삼국지연의도> 여몽유혈수음주呂蒙流血受陰誅 들뜬 부분 접착
물과 시간, 그리고 ‘장인 정신’이 빚어내는 서화 보존의 세계
서화 보존만의 가장 큰 특징은 ‘물’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이다. 수분을 활용해 오염을 제거하고 종이를 펴는 작업은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한다. 자칫 잘못하면 안료가 번지거나 바탕재가 손상될 수 있어, 숙련된 기술 없이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작업이다. 또한, 서화 보존은 그림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하는 ‘장황粧䌙(족자·병풍·첩 등의 형태)’을 재현하는 기술까지 겸비해야 한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이를 ‘장인의 영역’이라 설명한다.
“풀칠한 상을 닦는 기초적인 일부터 시작해 배접과 장황 기술을 익히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저 역시 28년을 일했지만 새로운 유물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특히 서화 작업은 대부분 ‘3인 1조’로 진행된다. 풀칠하고 배접하고 형태를 잡는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팀원 간의 호흡은 절대적이다. 이들은 전통 서화 보존에 선조들이 사용하던 소맥전분풀, 아교, 천연 염료 등 수백 년간 안전성이 입증된 재료만을 사용하며 전통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풀 자동 제작 기계’의 탄생 전통의 지혜에 첨단 기술을 입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2년 보존과학실 개소 이후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거두어 왔다. 2010년 ‘인공 열화견 제조법’ 특허 출원, 2013년 ‘저산소 살충법’ 특허, 2017년 ‘보존처리카드 관리시스템’ 개발 등은 국내 박물관 보존과학의 표준을 제시했다. 그리고 2025년 12월, 서화보존실은 또 하나의 쾌거를 이루었다. 바로 ‘보존처리용 풀 자동 제작 기계’의 개발이다. 그동안 보존처리용 풀은 숙련된 전문가 두 명이 냄비 앞에 붙어서서 풀이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가며 만들어야 했다. 이 과정은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풀의 농도나 점성 등 품질에 차이가 생길 수 있었고, 기술을 익히는 데에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풀을 많이 사용하는 날에는 하루에 서너 번씩 반복해서 만들어야 했다.
정혜경 연구원은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풀의 품질이 들쭉날쭉할 수 있다는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개발한 장비는 저희가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정밀한 데이터로 수치화한 결과물입니다. 이제는 언제든 일정한 품질의 풀을 얻을 수 있어, 연구원들이 본연의 처리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며 이번 개발의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서화보존실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대한大寒’ 무렵 ‘고풀古糊(오래 숙성시킨 풀)’을 한 독씩 제작해왔다. 고풀은 족자와 두루마리의 유연성을 위해 필수적인 재료로, 일반 풀을 쑨 뒤 항아리에 담아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전통 보존기술의 정수이다. 공정의 특성상 많은 노동력이 수반되었으나, 보존처리용 풀 자동 제작 장비의 도입으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이 마련되었다.

풀보존처리용 고
보존처리용 고풀古糊 관리
서화보존실이 이루어 낸 성과, <삼국지연의도>와 <신·구법천문도>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서화보존실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삼국지연의도>로 꼽았다. ‘박물관형 연구’ 제도로 진행된 이 작업은 2013년부터 3년간 이루어졌으며, 보존과학, 미술사, 민속학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작품이 제작된 시기와 사용된 공간, 활용 방식 등을 상당 부분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충분한 고증에 근거한 보존처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자들과 협업하며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고 보람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삼국지도 조사
서울역사박물관 <삼국지도> 조사
왼쪽부터 오준석 학예연구관, 전지연 학예연구사, 장장식 학예연구관, 김윤정 학예연구사(2016. 3. 10.)
가장 난도가 높았던 작업으로는 2023년 보물 <신·구법천문도> 보존처리를 꼽을 수 있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두께 0.06mm에 불과한 극도로 얇은 대나무 종이 위에 그려진 이 유물은 결손 부위가 넓어, 보강재를 준비하고 결손부를 보강한 뒤 색을 맞추는 과정에 특히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색맞춤작업
<신·구법천문도> 색맞춤 작업 모습

특별전
특별전 <다시 만난 하늘: 보물 신·구법천문도 복원기>에 전시된 보물
<신·구법천문도>와 복제본
<안동권씨족도>를 위해 개발한 ‘자외선 인공 열화견’ 제작 기술
보존처리에 있어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유물의 손상된 부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재료를 찾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8년부터 2년간의 끈질긴 연구 끝에 ‘자외선 인공 열화견’ 제작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가계도인 <안동권씨족도>를 보존처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분석실과 서화보존실은 자외선을 활용해 열화견 제작 기술을 함께 개발했으며, 이는 2010년 ‘견본 회화 문화재 보존처리용 인공 열화견 제조방법’이라는 특허 출원으로 이어졌다. 과학적 분석이 뒷받침된 이 기술 덕분에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안동권씨족도>는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민속 유물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근현대 생활 자료도 보존의 대상이 된다. 최근에는 현대 유물인 ‘껌 포장지’의 은지를 보존처리하며 과학적 분석의 중요성이 입증되었다. 포장지의 접착 성분을 정밀 분석한 결과 ‘파라핀 왁스’ 성분을 찾아내 보존처리에 적용했다.

보존처리를위한 자외선 인공 열화견
<안동권씨족도> 보존처리를 위한 자외선 인공 열화견 개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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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족도> 보존처리 전·후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 자료는 전통 유물뿐 아니라 근현대 및 세계 민속자료까지 폭넓게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재질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종이를 덧붙여 만든 탈, 종이꽃이 달린 패랭이와 어사화御賜花, 종이부채, 목가구나 함의 내부 종이, 가마의 창문, 그림을 붙인 제등提燈, 의복의 동정 심지, 금속 위에 부착된 종이 상표 등에 이르기까지 한 분야의 기술만으로는 완벽한 처리가 어렵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민속자료 특성상 여러 재질이 섞여 있는 복합 유물이 많다는 점도 협업이 필수적인 이유다. 보존과학실 내의 유기적인 협업 체계는 보존처리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속 가능한 보존 환경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보존처리의 철학, 최소한의 개입, 그리고 겸손함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바로 ‘최소한의 개입’이다. 과거에는 비교적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보존은 유물이 지닌 시간의 흔적과 학술적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유물 보존처리에는 여러 원칙이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최소한의 개입’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유물을 무조건 깨끗하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질과 손상 상태, 오염 정도를 충분히 고려해 유물의 학예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처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아울러 무리한 보존처리를 지양한다. 예컨대 물로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무리하게 약품으로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종이를 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기술로 해결하기 어려운 유물이라면, 무리하게 손대기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관리하며 미래의 기술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다만 예외는 있다.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온전한 보존이 어려운 경우이다. 현재 처리 중인 <조철승 초상화>는 그림 주변을 장식하는 비단이 손에 닿기만 해도 가루처럼 부서질 정도로 약화된 상태였다. 이런 경우에는 그대로 두면 유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전체를 해체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재 결손된 비단 부분을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원재료와의 조화를 고려해 자외선으로 열화를 유도한 비단을 사용하고 있다.
정혜경 연구원과 김소연 연구원 역시 이 원칙에 동의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연 연구원은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한 원형 보존을, 정혜경 연구원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지 않는 겸손한 작업’을 최우선 가치로 꼽았다.

초상화
조철승 초상화(민속39650)
서화보존실의 과제와 미래
앞으로의 보존과학은 어떻게 변할까? 서화보존실은 첨단 기술이 ‘지능형 조력자’로 자리할 것을 기대하면서도, 기계로는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유물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해석하고, 종이 한 장의 미묘한 질감 차이를 손끝으로 느끼며 최적의 재료를 골라내는 ‘감각’은 오직 인간 보존 전문가만이 가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서화보존실에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파주 이전 과정에서 보존 분야 학예연구관이 퇴사하여 전문성을 갖춘 책임급 연구 인력이 부재한 상황이며, 분석·보존환경 담당 인력의 공백도 업무 운영에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향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근현대 유물, 특히 플라스틱 등 합성 재질 유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이 보완된다면,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유물을 보다 안정적으로 후대에 전승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화보존실은 각자의 포부를 밝혔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남은 10년의 임기 동안 그간의 수집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족자 장황』 총서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김소연 연구원은 과거를 미래로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다짐했고, 정혜경 연구원은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내는 전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박물관 80년의 세월은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헌신이 빚어낸 시간이기도 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서화보존실의 풀 끓이는 냄새와 정성스러운 손길이 있는 한, 우리 문화유산의 생명력은 앞으로의 80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 동안 계속될 것이다.

보존총서4
전지연 학예연구사가 발간한 유물보존총서 『삼국지연의도』, 『신·구법천문도』, 『안동권씨족도』,『병풍 장황』
민속소식 제315호 (2026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