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놀이

굴렁쇠와 팽이 놀이의 보편성과 현대적 의미
굴러가는 굴렁쇠, 돌아가는 팽이

글 편해문(놀이터 디자이너)

놀이 본능에서 나온 놀이의 보편성
88 올림픽 개막식에 굴렁쇠가 등장했다. 한 꼬마 아이가 넓은 운동장에 홀로 굴렁쇠를 굴리고 나와 큰 인상을 남겼다. 그 장면을 보았던 한국 사람이라면 전통 놀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굴렁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놀이가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나 있는 보편적인 놀이이다. 결과적으로 인류애를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에는 더 가깝게 간 셈이다.
여러 외국에서도 “어! 저거 우리 아이들도 하는 놀이인데!” 이런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굴렁쇠는 왜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것일까?어려운 질문 같지만 어렵지 않은 해답이 있다. 굴리고 싶고 돌고 싶고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땅이 있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땅을 판다. 농사꾼이 밭을 갈듯이 아이들이 땅을 판다는 것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대목이다. 아이들은 땅을 가는 농부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셈이다. 땅을 파고 숨기는 놀이도 하고 땅을 파서 나뭇가지와 풀잎으로 덮어 함정을 만드는 놀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파는 놀이의 대표적인 것이 무엇일까? 바로 모래놀이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놀이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땅을 언제까지 팔까. 자기 자신이 웅크리고 들어가 있을 정도까지 파면 그만두는 것 같다. 그곳이 엄마의 뱃속이고 집일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구르고 돌고 놀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도 뭔가를 굴리고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제 몸 전체를 흔들고 돌리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이게 놀이와 몸짓의 시작 아니겠는가.

국민학교 5학년 2학기용 셈본 교과서

아이들은 굴리고 싶고
굴렁쇠부터 보자. 어려서 참으로 여러 가지를 굴리면서 놀았다.
자전거 휠은 고급스러운 재료였고 그 안의 타이어를 빼서 바람을 넣어 굴리기도 했고 굵은 철사를 구부려 원형 형태로 만들어 굴리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큰 자동차 타이어를 굴리기도 했다. 옛날에는 대나무를 불로 굽고 휘게 만들어 동그란 형태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인도에서 정말 다양한 굴렁쇠를 만났다. 작은 실패에서 자전거나 큰 경운기 폐타이어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굴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굴리며 놀았다. 대게는 어른들이 쓰고 버린 것들을 아이들이 놀이에서 다시 쓰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온 동네를 굴리면서 자기 마을과 주변의 경계와 지형과 지도를 그려갔다. 굴렁쇠 하나에 의지해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 이것이야말로 요즘 어린이가 만나기 어려운 가치 있는 놀이가 분명하다. 아이들과 골목과 길을 내달리는 굴렁쇠 놀이를 지금도 할 수 있는 곳으로 도시가 디자인되면 얼마나 좋을까. 자동차 때문에 위험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당장 반대하실 테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굴렁쇠 놀이가 쇠퇴하게 된 까닭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바로 도로와 교통과 그곳을 차지한
많은 차량으로 인해 굴렁쇠는 더는 길로 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굴리고 싶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다. 아이들은 지금도 굴리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왜, 아이들은 굴리고 싶으니까. 어떻게 그런 동기를 몸으로 할 수 있을까? 안전하게 마음껏 굴릴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한 까닭이다.

굴렁쇠

국립민속박물관 정월대보름 세시 행사-굴렁쇠 굴리기 코너

굴렁쇠 굴리기 체험하는 외국인들

인도의 굴렁쇠 놀이

아이들은 돌리고 싶고
굴렁쇠와 함께 회전력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놀이가 바로 팽이이다. 이 놀이 또한 아시아와 중동에 이르기까지 너른 분포를 보이는 어린이 놀이이다. 인도와 네팔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팽이 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많은 아이가 옛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깎고 못을 두드려 박아 만든 팽이를 썼다. 눈에 띄는 것은 다 감은 팽이 줄을 오른쪽 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는 모습이었다. 우리 어릴 때는 보통 끈을 빠지지 말라고 두세 번 묶어 썼는데 네팔 아이들은 병뚜껑을 뚫어 가운데로 끈을 빼내 묶어 손가락 뒤로 걸어 썼다. 옆에서 지켜보았더니 그렇게 하면 팽이 줄이 빠질 걱정이 없어 팽이를 더 힘차게 던지며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놀이 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발달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놀이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팽이는 동시에 던져 누가 더 오래 도나 내기를 하기도 하고 차례로 던져 상대방 팽이를 깨기도 하는 놀이로 나뉘는데 때로는 묘기에 가까운 것도 있다. 내려찍듯이 하다가 순식간에 잡아당겨 자기 손바닥으로 팽이를 받아내는 솜씨였다. 우리가 어려서 했던 팽이 찍기도 보았다.
얼마나 격렬하게 팽이 찍기를 했는지 마당 한가운데 박아놓은 내 팽이가 동네 형이 세차게 내려 꽂은 팽이에 찍혀 둘로 갈라졌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요즘 장난감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베이블레이드’ 또는 ‘탑블레이드’이다.

베이블레이드

네팔 아이들의 팽이치기 놀이 모습

몽족 아이들의 팽이치기 놀이 모습

현대에 되살아난 동그라미와 회전의 미학
잘 알려진 것처럼 두 제품은 한국의 장난감 회사인 손오공과 일본의 완구 회사 다카라토미가 공동 개발한 팽이 장난감이다. 팽이를 일본말로 고마コマ라고 하는데 베이블레이드는 베이고마에서 차용했다. 영어로 팽이는 탑Top이라고 하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탑블레이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굴렁쇠는 왜 베이블레이드와 같은 길을 가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놀이 공간의 크기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베이블레이드나 팽이는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하지만, 굴렁쇠는 넓은 공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이 가능하다면 아이들은 굴렁쇠의 21세기 버전을 만들어낼 것이다.
굴렁쇠 또는 팽이의 가장 큰 형태는 무엇일까? 물레방아, 풍차, 또는 대관람차가 아닌가 한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서 ‘줄라’라고 불리는 회전 놀이기구를 만난 것은 참 놀랄만한 일이었다. 나무로 물레방아 만드는 기술이 놀이기구 만드는 데 쓰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내가 본 가장 큰 놀잇감이었다. 어른 둘이 마주 잡고 오로지 힘으로 돌리는 것이 인도다웠다.
작은 형태로는 실팽이가 있다. 어렸을 때 명주실을 구멍 두 개인 단춧구멍에 넣어 감아 돌리는 ‘실팽이’를 기억하는가? 참 옛날 아이들은 굴리고 돌리는 일을 충분히 하고 놀았던 셈이다. 이 모든 것이 동그라미와 회전의 보편적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었다.

인도 타지마할의 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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