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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일지

문화재 보존의 현장, 이탈리아에 가다

[vc_row 0=””][vc_column][vc_column_text 0=””]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으레 상대방은 그게 어떤 일이냐고 되묻는다. 그럴 때마다 영화「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야기하면서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일을 하지만, 목재 분야의 복원을 하고 있다고 부연하곤 한다. 영화가 개봉한지도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기에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밀라노의 한 성당 식당에 그려진 벽화였던 「최후의 만찬」을 예로 든다. 이 그림은 화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여서도 유명하지만, 1970년대에 시작되어 22년 동안 계속되었던 복원 작업으로 한동안 뉴스가 되었던 까닭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와 「최후의 만찬」은 둘 다 배경이 이탈리아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존처리 또는 복원을 이야기할 때 유독 이탈리아의 예를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탈리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대국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들이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 덕에 먹고산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문화유산에 관한 그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복원, 보존 관리는 중앙 정부와 지역별 감독 기구의 촘촘한 관리 아래 지금의 문화재 강국,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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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필자는 ‘이탈리아 주요 문화재 보존관련 시설 현황 조사를 통한 보존과학 스튜디오의 사례 연구’를 핑계 삼아「최후의 만찬」을 직접 보고자 했던 오랜 바람을 이루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출장이 결정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최후의 만찬」관람 티켓 구매였으니까….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예매는 이미 두 달 전에 시작되었고, 출장 일정에 맞추려면 간간이 취소되는 표가 운 좋게 손에 들어오길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름 넘도록 아침저녁으로 클릭한 결과는 대성공!

 

「최후의 만찬」은 작품이 있는 밀라노의 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의 부속 건물 입구로부터 표 검사를 위한 문을 통과하고도 4차에 걸친 유리문을 지나야 만날 수 있었다. 각각의 중문들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물리적인 목적 외에, 내외기의 온도차 때문에 관람객의 몸에서 습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조절하는 보존환경적인 목적이 있다. 원래 식당으로 사용되었던 커다란 홀에는 앞뒤로 벽화 하나씩만 남아있는데 홀 전체엔 환경 모니터링을 위한 각종 장비며 방화시설, 최소의 조명시설 외에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었다. 게다가 15분으로 제한된 관람시간, 1회 최대 25명 남짓의 관람인원에 가방이나 겉옷 외부 보관 필수, 비행기 보안 검색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소지품 검색, 예약 시간 20분 전 도착 등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최후의 만찬」을 마주했을 때 눈 녹듯이 사라졌다.

 

「최후의 만찬」

 

원작을 보존하기 위한 수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리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최후의 만찬」의 제작 방법은 그 전까지 주로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달리 템페라화에서 쓰이는 계란의 노른자(물)에 유화물감(기름)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건조가 시작되는 동시에 불안정한 안료층이 파손되기 시작해 이제 원작의 20%도 남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작품에 많은 손상을 남겼다. 이를 보존하기 위해 다 빈치가 제작을 마친 1498년 이래로 너무나도 많은 복원작업과 덧칠이 있었다. 그리고 1978년 현대화된 보존 방법으로 그간의 복원 흔적들을 걷어내고 새롭게 재탄생하기까지 꼬박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렇듯 제대로 남은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원작이 훼손되었음에도 원화의 감동을 생생하게 되살린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앞서 언급한 행정기관의 끊임없는 감독 · 관리와 함께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 기술의 전수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식적인 문화재 보존복원 기관은 1588년에 그 유명한 메디치가에 의해 세워진 국립보존연구소OPD, Opificio delle Pietre Dure이다. 세계 최고最古의 기관일 뿐 아니라 그 동안 쌓아둔 각종 기록 및 기술력은 세계 어느 기관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 다른 한 축은 1939년 이탈리아 보존과학의 바이블과도 같은 『복원론』을 저술한 당대 최고最高의 보존가인 체자레 브란디Cesare Brandi에 의해 세워진 고등보존복원연구소ISCR 산하 복원학교Scuola di Alta Formazione e Studio이다.

 

보존처리 작업 중, 오른쪽 상단을 자세히 보면 줄무늬 채색선이 보임
ISCR 대형회화 보존작업실
보존처리 작업 중, 앞부분을 자세히 보면 점으로 된 채색면이 보임
ISCR 목재 보존작업실
ISCR 회화작업 소개
ISCR Roberta Bollati 교수와 함께

 

두 기관 모두 문화재 보존에 최적화된 인재를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보존·복원관련 기술뿐 아니라 바른 철학과 기본적 자세를 갖추게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를 위해 문화재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미술사, 고고학, 역사, 미학, 철학, 윤리 등의 인문과학적인 과목들을 담당 교수와의 토론식 시험을 통해 평가한다. 복원에 필요한 실제적인 작업 시간 이상으로 대상 문화재를 연구하고 문제점을 파악해내기 위한 기술과학 분야의 기초과목인 화학, 물리학, 생물학, 광물학 등의 이수 또한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에 덧붙여 담당 교수의 엄격한 지도 아래 실제 문화재를 대상으로 보존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보존에 관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키우고, 현실적인 어려움 등도 여과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게 담금질된 인재가 결국 졸업 후 이탈리아뿐 아니라 각국의 문화재 보존 실무 최일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필자가 마주했던 그 벽은 최신 보존과학 기술을 응집한 결정체이기에 앞서 시간과 사람을, 또한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주어진 15분을 영원의 시간으로 기억하도록 해준 초월의 공간이며 동시에 다 빈치를 불러내 그와 함께 대화하며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점으로 선으로 이어갔을 보존처리자를 위한 헌정의 공간이었다.

 

 

글_박성희│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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