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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션

제주 성산읍 해녀공동체와 바다거북의 상징성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

이 글은 현재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서 유학 중인 강대훈 씨가 쓴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2021 한그루에 대한 서평이다. 강대훈 씨는 학부에서 해양학을 전공하고 이 책의 내용으로 2017년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은 제주 성산읍 해녀공동체를 현장연구하여 바다거북을 둘러싼 상징성을 규명하고, 이로부터 제주 해녀공동체의 조상 관념을 도출하고 있다. 이 책은 난해한 이론적 논의를 줄이고,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학위논문에서 전개했던 주장을 쉽게 풀어쓴 것이 특징이다.

바다거북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해양학을 전공하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듯 보인다. 2012년 출간한 『타마르 타마르 바다거북: 바다거북의 진화와 생활사』승산에서 저자는 호주에서 바다거북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였고, 이를 계기로 거북의 생물학적 특징을 쫓아간 적이 있다. 이 전작에서는 거북의 진화와 분류, 바다거북의 출생에서 산란까지의 생애와 적응 전략, 바다거북의 생태환경 등을 다루고 있다. 전작이 바다거북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책은 해녀와 바다거북의 관계성을 다루고 있다. 필자가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기로 한 것은 이 책이 한국민속학계의 오래된 이론적 쟁점을 다루면서 새로운 이론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다거북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한국인의 조령祖靈신앙, 그중에서도 유교적 조상 관념과 구분되는 ‘무속적’ 조상 관념을 조명하고 있다. 부계 혈연 중심의 조상 관념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방계 혈연이나 유사 친족 관계도 아닌 바다거북에 나타나는 조상 관념이라니 민속학적 논의에 익숙한 독자들도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숭배와 돌봄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혈연관계를 넘어서 친밀한 친족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 책은 한국인이 맺어온 또 다른 형태의 친족관계에 대한 좋은 연구 사례로 볼 수 있다.

민속학계에서 성리학적 친족 관념 이전의 조령신앙이나 그것이 기반한 조상 관념에 대해서는 1940년 아키바 다카시[秋葉隆]가 보고한 이래 1980년대 중반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 장주근, 최길성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된 적이 있다. 주로 가정신앙을 중심으로 유교적 형식과 상이한 신체神體나 의례에 주목하였고, 이를 통해 『주자가례』를 따르는 유교적 관념과 의례적 형식이 도입되기 이전 한국인의 조상 관념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기존 논의는 주로 한국인의 전통 조상 관념이 부계뿐 아니라 방계, 모계, 나아가 먼 조상까지 매우 확장적·포용적이라는 것에 주목하며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현용준, 진성기 등의 제주 민속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지적되어 온 제주의 조상 관념의 특수성에서 출발한다. 제주에서는 뱀신앙이든 당신앙이든 조상 관념, 즉 조상-자손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제주의 모든 신에는 조령祖靈적 성격이 깃들여 있다. 바로 이러한 무속적 조상 관념이 해녀공동체와 바다거북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바다거북은 해녀들의 조상 범주에 속하고, 거북을 위한 배송의례는 해녀가 바다와, 구체적으로 바다 너머에 사는 자신들의 조상인 ‘요왕할망’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된다.

그런데 해녀와 바다거북의 관계를 규정하는 또 한 가지 원리가 있다. 바로 ‘곱가름’이다. ‘곱’은 경계, ‘가름’은 가르다라는 의미이다. 즉, 곱가름은 ‘경계를 가르다’, ‘경계를 분명히 하다’라는 뜻이다. 조상과 자손의 경계를 분명히 하여 떨어져 있어야 무탈하다는 제주무속의 조상관을 드러낸다. 조상은 자손을 돌봐주지만 서로 분명한 경계 내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책 제목이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가 의미하는 바이다. 자손은 정성을 다해 바다거북을 돌려보내고, 자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손을 도와달라고 하며 비는 것이다.

“나아가 마을 신이나 용왕이나 인간들을 돌봐주는 존재이기에 모두 조상이 된다는 관념은, 제주 해녀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해녀 모두가 요왕할망의 자손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의 주장이 한국민속학의 주류적인 해석에 가깝게 보일 수 있다. 필자는 한국민속학에서 민속을 바라보는 주류 관점이 기능주의, 혹은 진화주의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기능주의는 민간신앙이나 민간의례가 사회나 인간 생활에서 일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주의는 우리가 관찰하는 민속이 사회의 기능적 변화에 따라 사라지거나 변화할 운명이거나, 과거가 남긴 잔존물survival로 바라보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필자가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이 책이 한국민속학계의 오래된 이론적 쟁점을 꺼내면서 새로운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해녀의 조상숭배의 근원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바다거북과 나아가 요왕할망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 혹은 조상-자손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일까?

지난 반세기 한국민속학계를 포함한 범-문화인류학계에서 문화에 대한 또 하나의 주류적 관점은 현상학 혹은 해석학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상학적이든 해석학이든 둘 다 인식론에 기반해 전개되었다. 주체가 세계를 의미화하여 인식하는 과정, 혹은 주체와 주체 사이에서 상호이해와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과정이 주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방법에서 인간-자연이든 비인간-자연이든 자연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만 다뤄질 뿐이었다. 다시 말해, 상호작용이나 상호주관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민간신앙 행위는 소위 합리적 주체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과거의 잔존물이거나 종교사회적인 현상으로 치부되었다. 예컨대,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기능적 행위나,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오래된 관습으로 설명되곤 하였다. 이 책은 해녀와 바다거북과의 관계성을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해녀가 바다거북과 관계를 맺는 것은 해녀가 요왕할망이 지배하는 바다에, 바다에 사는 수많은 생물에 의지해 살기 때문이다. 해녀는 수많은 해산물 채취를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어진 권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해녀가 잠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명과, 그것들을 표상하는 요왕할망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상호작용할 필요가 있다. 해녀는 요왕할망과 조상-딸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요왕할망의 돌봄을 받는 존재로 바닷속 수많은 생명을 채취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듯이, 해녀에게 용왕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지만 이 절대적 믿음도 해녀가 바다를 다닐 때만 중요한 것이다.

해녀와 바다거북의 관계성은 한국인이 비인간-존재들과 맺어온 관계성의 다양한 편린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편린들은 나아가 그 관계성을 대체하여 등장한 근대적 관계성을 성찰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것들은 무엇보다 인간 간의 관계뿐 아니라 식물, 동물, 나아가 바위와 토지 등의 무생물까지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실로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근대적 세계관이야말로 인간과 함께 살아있는 행위자로 세계를 구축해 온 존재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미신迷信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혹은 브뤼노 라투루Bruno Latour의 말처럼 환경문제, 기후문제, 빈곤문제 등의 온갖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뒤덮여 버린 현실에 직면해, 근대성 자체가 불가능한 기획이었다는 점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이 해녀와 바다거북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듯이, 우리는 주변에서 지금까지 미신, 잔존물, 사회적 부속물로만 간주되어 온,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비인간-존재와 맺어온 다양한 관계성의 편린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편린들을 드러내는 것이 과거와 미래를 함께 성찰해야 하는 현대 민속 연구자들에게 남겨진 주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바다거북과 요왕할망을 대신해 근대적 미신이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는 나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나 이후에도 이어질 미래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오창현_목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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