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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3

1년 세시의 새로운 날,
8월 15일 광복절

“명절에는 못 가도 광복절에는 고향에 가요.”
경상북도의 한 마을 출신인 A씨는 해마다 광복절에 열리는 마을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주민들과 출향민들은 방송이나 신문의 홍보 없이도 해마다 자발적으로 광복절에 모여 그들만의 잔치를 즐긴다. 이는 마을 안팎의 구성원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온 약속이며,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마을의 행사이다. 그들은 왜 광복절에 마을잔치를 여는 것일까? 광복절의 마을잔치는 민속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늘날 경상북도의 몇몇 마을에서 해마다 양력 8월 15일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광복절의 풍경을 살펴보자.

광복절과 세시풍속
양력 8월 15일은 특별한 날이다. 1945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았고,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수립 이듬해에 대한민국 정부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8월 15일을 ‘광복절光復節’로 명명하고,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國慶日로 제정하였다. 광복절처럼 국가가 지정한 국경일이나 기념일 중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된 날은 세시풍속歲時風俗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게 된 사람들은 산업사회의 생활 주기에 맞춰 휴일을 경험하게 되었다.1) 그들이 고향인 농촌에 방문하는 것은 일주일 단위의 휴일인 주말 또는 국가 단위의 휴일인 공휴일에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세시풍속은 일상생활 속 중요한 마디에 하는 특별한 행위이자 생활의 리듬이므로, ‘정월대보름에 달집태우기’, ‘단옷날에 그네뛰기’, ‘동짓날에 팥죽 먹기’와 같은 세시풍속은 생활 주기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약화의 길을 겪게 되었다. 전통적인 세시풍속이 변화·소멸하는 상황 속에서, 경상북도의 몇몇 마을에서 광복절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세시풍속이 이루어지는 날로 선택되고 있다. 경북의 각 마을에서는 매년 광복절에 풀베기를 하거나, 동제洞祭 혹은 풋굿을 지내거나, 행정구역인 면을 단위로 면민들과 출향민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스포츠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현대사회에 등장한 광복절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세시로 정착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음력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전통사회의 세시풍속이 양력으로 바뀐 시간적 변화와 여전히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속되는 민속문화를 포착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경북 청송군 파천면의 2개 마을, 포항시 북구 기북면의 1개 마을,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의 4개 마을, 포항시 북구 신광면의 광복절 풍경을 소개한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 풋굿 행사(2022.8.15.)

광복절에 치르는 정월 동제와 여름 풋굿
예로부터 정월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달로서 신성하게 여겨졌다. 계절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달이며, 본격적인 농경을 위해 준비하는 달로서 크고 작은 세시풍속이 정월에 집중되어 있었다. 정월 보름 무렵에 지내는 동제는 마을 공동체에 있어 한 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시풍속이었다. 한편 풋굿은 여름의 세시풍속으로서, 음력 7월경에 논매기를 끝내고 날을 받아 하루 쉬면서 노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주민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여 먹고 놀면서 다음 농사일을 시작할 힘을 보충하였다. 오늘날 경북의 몇몇 마을에서는 정월 동제와 여름 풋굿의 날짜가 광복절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은 전통적으로 음력 정월에 행해지던 동제와 음력 7월 중순 무렵에 행해지던 풋굿이 광복절로 날짜를 옮겨 지속되는 사례를 살펴볼 수 있는 지역이다. 파천면 병부리는 동제의 전통을 광복절로 날짜를 옮겨 지속해오다가 최근에 중단하였다. 1990년대 후반, 병부리에서는 동제의 날짜를 변경할 때 마을 어른들이 의견을 모았다. 날짜 변경의 주된 이유는 음력 정월 보름 새벽은 날이 춥고 어두워 나이 많은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기에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광복절이 의미상 ‘기쁜 날’이자, 계절상 여름으로 겨울보다 새벽이 일찍 밝아오기 때문에 동제의 새로운 날짜로 선택하였다. 파천면 송강2리는 예로부터 음력 7월 중순 무렵에 행해오던 풋굿을 약 20년 전부터 광복절로 고정하여 전승하고 있다. 주민들은 광복절 아침에 풀베기를 한 다음 마을숲에 모여 음주가무를 즐긴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풋굿 제사’ 역시 지속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을 머슴들의 우두머리 격인 ‘큰머슴’이 풋굿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는 이장이 주관하여 지낸다. 포항시 북구 기북면 탑정1리에서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를 지내오다가, 1990년대부터 광복절로 제일을 변경하였다. 동제 날짜를 광복절인 양력 8월 15일로 변경한 이후에는 음력 7월 중순에 지내던 ‘서래치풋굿’의 풀베기 풍속도 합친 형태를 보인다. 동제를 지내기 전날인 8월 14일에 주민들이 모여 마을 곳곳과 당나무 근처의 풀을 베어 깨끗하게 한다. 이후 8월 15일 새벽에 동제를 지낸 다음, 오전에 마을회관에 모여 음복하고 점심을 함께 먹으며 논다.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탑정1리 동제(2022.8.15.)

출향민과 함께하는 광복절 마을 행사
경북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이던 풋굿이 출향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여전히 자연마을 단위로 지속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지역이다. 보현1리의 황새골은 1997년부터 출향민들이 중심이 되어 ‘황새골날 선포 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황새골날’을 제정하여 해마다 광복절에 황새골에서 향우 모임을 한다. 출향민들은 타지에서 각자 다양한 일에 종사하기에, 공휴일이면서도 기쁜 날로서의 의미를 지닌 광복절이 적절한 날로 선택되었다. 황새골날 행사는 주민들의 이주로 인해 사라진 풋굿의 풍습을 복원하여 출향민들의 교류를 위해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보현2리의 칠기덤과 보현3리의 절골은 오랜 세월 이어온 풋굿의 전통을 지속하면서, 그 날짜를 광복절로 선택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같은 초등·중학교를 졸업한 동문으로 이루어진 자녀 세대가 행사를 주관 및 후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마을에 살아온 부모 세대가 전통사회의 풋굿 전통을 지속하고 있다면, 마을을 떠난 자녀 세대는 동문회를 기반으로 풋굿 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특히 보현2리의 칠기덤은 자녀 세대인 출향민들이 ‘우리고향칠기덤화합한마당회’를 조직하여 광복절 마을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보현4리 탑전은 음지와 양지로 나뉘는데, 이 두 마을 역시 광복절에 주민들이 모여 마을잔치의 형태로 옛 풋굿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해마다 광복절에 출향민들이 마을로 찾아와 풀베기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양지에서는 마을 행사에 앞서 8월 15일 새벽에 동제를 지내는데 본래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던 동제의 날짜를 광복절로 변경하였다.

경북 영천시 자양면 보현4리 탑전 음지 마을잔치(2022.8.15.)

해방의 기쁨을 이어가는 면민친선 축구대회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는 매해 광복절에 면민체육대회와 겸하여 ‘신광면민 친선축구대회’가 열린다.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의 주도로 시작된 이 대회는 2022년에 69회를 맞이하였다. 신광면의 22개 마을에서 대표선수를 선발하여 광복절을 전후로 2박 3일 동안 마을 간 축구 경기를 치르는데, 과거에는 각 마을에 사는 청년들이 출전했으나 출향민이 증가한 최근에는 타지에 사는 자녀 세대도 선수로 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복절에는 자녀들의 방문으로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 신광면민들은 광복절을 ‘명절보다 더 중요한 명절’로 인식하고 있다. 축구대회 기간 중 각 마을에서는 잔치를 한다. 주민들과 출향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축구 경기의 승패에 관하여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는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여름 무렵에 했던 풋굿의 전통이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광면은 예로부터 넓은 들과 저수지가 있어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1960년대 주민들은 주로 벼와 보리를 재배했고, 벼농사 시 8월 초부터 수확 전 10월 초까지는 농번기에서 벗어나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2) 각 마을의 주민들은 힘든 농사일이 끝난 다음 모여서 풋굿을 했고, 행사가 끝날쯤 본격적으로 축구대회를 준비했다. 지금은 풋굿의 전통이 사라지고, 광복절에 펼쳐치는 면민친선 축구대회 및 팔씨름·윷놀이대회와 각 마을잔치가 그 풍속을 대체하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민 친선축구대회 만세삼창(2022.8.13.)

모이기 딱 좋은 날, 광복절의 마을 풍경
전통적인 세시풍속이 광복절로 수렴되기까지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의와 소통의 과정이 있었다. 계절과 날씨의 영향, 농사 주기의 변화, 광복절의 상징성, 경북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세시풍속인 풋굿의 영향, 출향민의 참여 등이 해마다 마을에서 펼쳐지는 광복절 행사가 지속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주민들은 필요에 따라 광복절을 자신들의 풍속을 지속하기 위한 세시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마다 광복절에 펼쳐지는 마을 행사는 절차에 기반한 소통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행사는 마을문화를 활성화하고 마을 안팎의 주민과 출향민을 연결한다. 또한 국가가 주관하는 광복절 기념행사와는 달리 공동체적 활동을 통해 주민들의 조화로움과 유연성을 포착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전통적인 세시풍속의 역동적인 변화상을 잘 보여주면서도, 민속문화에 대한 지식과 기억, 그리고 경험을 전승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세시풍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기도 하고, 새롭게 생성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기에 더욱 세심한 관심과 접근이 필요하다.

※ 이 글은 2022년 국립민속박물관 권역별 자유주제 민속조사 공모사업 선정에 따라 1년간 조사를 진행한 후 발간한 보고서 『광복절 세시, 현대사회의 세시풍속』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 경상북도·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경북마을지』, 경상북도·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1990.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정월편』, 국립민속박물관,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 현대신문편 1946-1970』, 국립민속박물관, 2006.
· 김명자, 「도시생활과 세시풍속」, 『한국민속학』 41, 2005.
· 김택규,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 민속학회, 『한국민속학의 이해』, 문학아카데미, 1994.
· 박군영, 「신광면축구대회의 축제화 과정과 문화적 의미」,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서해숙 엮음, 『세시풍속의 역사와 변화』, 민속원, 2010.
· 임재해, 「세시풍속」, 『한국민속학』 23(1), 1990.
· 임재해, 「세시풍속의 변화와 공휴일 정책의 문제」, 『비교민속학』 10, 1993.

1 ) 서해숙 엮음, 『세시풍속의 역사와 변화』, 민속원, 2010, 295쪽.
2) 신광면의 생업력에 관하여는 박군영, 「신광면축구대회의 축제화 과정과 문화적 의미」,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9~10쪽을 참고함.


글 | 김유신_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수료, 류한선_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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