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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기메선생’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현장 담기

요즘은 주변에서 굿을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서울 주택가에서 굿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초등생이었을 때였다. 하루는 바로 옆집에서 화려하게 굿판을 꾸며놓고는 종일 요란하게 굿을 했다. 그런데 그 집 아들이 퇴근하고 돌아오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집에서 굿하는 것을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하면서 굿판을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렸다. 굿은 중단되었으나 그것이 동티가 나서 다음 날 그 집안사람 하나가 급사하기까지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제 이런 굿판을 만나는 것은 의도적으로 찾지 않는 이상 TV드라마와 같은 데서나 연출된 모습으로 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그 양상은 다르겠지만 굿판의 모습은 대체로 화려하다. 제상에 제물을 풍성하게 차리고 다양한 무구들과 무신도 등을 갖추어 놓으면서 굿판을 조성하고 치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굿판을 꾸미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종이로 만든 무구巫具이다. 굿에서 종이를 활용하여 만든 무구는 굿이 잘 진행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굿판을 굿판답게 꾸며주는 데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굿판에서 만들어지는 종이 무구는 굿판을 그저 단순하게 장식하는 용도로만 쓰이고 마는 것은 아니다. 신이 머무는 거처를 만드는 동시에 신체神體의 상징물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신에게 바치는 예물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또 굿의 진행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거나 굿판을 다채롭게 장식해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하여 그 쓰임과 의미는 다양하다. 그렇기에 전국의 굿판에서 종이 무구가 중요하게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또한 그것의 기능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제주의 종이 무구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다. 그 종류가 풍부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굿에서 불리는 본풀이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많은 굿거리의 진행과도 연결되고 있어 굿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제주굿에서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로 만든 무구를 ‘기메’라고 지칭한다. 기메는 대개 백지나 창호지, 오색전지 등을 오려서 신을 상징하는 몸체나 의례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형태의 도구, 제장祭場의 장식물 등을 만드는 것이기에, 굿판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제주도의 굿판에서 이런 ‘기메’는 굿을 책임지는 수심방[首神房]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굿을 보조하는 소미[小巫]가 주로 만든다. 굿에 쓰이는 기메를 소미들이 서로 도와 함께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순할 때이고, 대체로는 소미 중의 한 명, 특히 남자 소미가 굿하는 동안 필요한 기메를 도맡아 제작한다. 그렇기에 소미 일을 하는 심방 중에서도 기메를 특히 잘 만드는 소미를 대우해서 ‘기메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기능을 가진 심방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다.

심방의 조상을 상징하는 기메 ‘육고비’. 무조신(巫祖神)의 근본을 푸는 <초공본풀이>에 그 유래가 담겨있다.

김영철 심방은 현재 제주도에서 이런 ‘기메선생’ 소리를 듣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4대에 걸친 세습무 가계의 심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집안 내력을 보면 4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심방일을 시작했으며, 그 가계 또한 명망을 얻은 심방들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본향당 당맨심방인 김순아 심방이고, 제주도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크게 활약했던 김만보 심방이 작은할아버지로, 기메를 제작하는 것을 비롯해 김영철 심방이 제주굿을 익히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의 보유자였고 현용준 선생의 『제주도 무속 자료 사전』의 주요 제보자였던 안사인 심방이 어머니에게 고모부였고, 안사인 심방 사후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의 보유자로 지정된 김윤수 심방이 그의 고모부이기도 해서 이들 유명 심방들에게서 직간접으로 기메 제작법을 전수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는 제주 목안牧內의 기메 제작법뿐만이 아니라 정의旌義와 대정大靜 지역의 기메 제작방식도 두루 꿰고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김영철 심방을 대상으로 2022년부터 조사를 시작하여 제주의 ‘기메’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당굿을 진행하고 있는 김영철 심방의 모습
김영철 심방이 기메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제주굿에서 활용되는 기메의 가치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제주굿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물질문화이면서 본풀이와 같은 구비전승과의 연계성 또한 뚜렷하고, 아울러 그 나름으로 독자적인 예술성도 갖추고 있다. 기메는 물질문화로 제주굿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무구이다. 제주굿에서 제작되는 기메는 종류 및 그 가짓수가 많고, 형태도 아주 다양하다. 이런 기메는 신체의 상징이면서 굿의 장식이기도 하고, 굿판의 준비에서 굿의 시작과 진행, 마무리까지 전 과정이 이들 기메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 따라서 기메를 이해해야만 제주굿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기메는 물질문화와 신화[본풀이]와의 관계성을 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제주도에서는 이런 기메의 유래가 본풀이에 기대어 설명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때문에 물질 전승의 생성이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이 신화에 근거하고 있으며, 신화를 통해 그것의 기능과 신화적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예컨대 신들의 공간을 상징하는 기메인 살장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신의 거처인 당클을 가리는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까지도 본풀이에서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기메가 물질 전승의 영역이라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존재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굿 전반과 맞물리면서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기메가 굿에서는 종교적 의례의 산물로서 그 쓰임새를 갖지만, 그것 자체가 지니는 독자적인 예술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종이나 천을 활용해 접고 정교하게 오려내 문양을 만드는가 하면 사람의 형상을 본떠 상징성을 부여하는 양상까지 기메를 만들어가는 형상은 종교적 기능이나 목적성 때문에 제작되는 것을 배제한다면 예술작품의 창작활동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종이공예를 전공하는 작가들에게 제작방식을 전수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다고 한다. 또 한지를 소재로 현대 미술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한 적도 있었다.

기메는 이처럼 의미 있는 대상이기에, 먼저 기메의 제작방식에 대한 기록화 작업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제주 큰굿에서 활용되는 주요 기메의 일습을 제작 과정과 함께 기록 정리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 기록화 작업 및 연구를 병행하여 남기고, 특히 굿에서 실제 활용되는 기메를 박물관에 기증, 보관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 무속 관련 유물 보존 및 아카이브 자료가 동시에 확보될 때 전반적인 이해 속에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전승을 도모할 수 있다. 기메는 특히 굿하는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굿이 끝나면 태워 없앤다. 때문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보존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일회성으로 소멸하고 만다. 그렇기에 역사가 오래된 기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제주굿의 전승이 이제는 예전만 못하다. 모든 신앙민들에게 깊이 자리 잡았던 무속에 대한 믿음이나 환경이 약화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더구나 근래 이중춘, 김윤수 심방 등 큰 심방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굿을 제대로 하는 심방들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기메선생도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김영철 심방 외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는 심방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시점에 제주 무속의 전승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물질문화인 기메 제작법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의 성격이나 기능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기메의 제작방식을 단계별로 기록해두어야 할 것이며, 특히 기메의 제작 과정을 사진 자료와 함께 설명을 담아 남겨둔다면 향후 재현이 필요하거나 전승을 되찾을 필요가 있을 때 아주 긴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제주 큰굿의 과정 속에 담아 그 쓰임새까지 제시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에 대해 제주 기메를 박물관에 박제화시켜 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적 흐름 및 전승 환경 등을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해두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것이다.


글 | 권태효_민속연구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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