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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수장고에서 열린 특별한 전시, 그리고 디자인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이하 파주관의 첫 기획전시 《민속×공예: 소소하게 반반하게》는 소반과 반닫이에 스며든 전통의 아름다움과 과거에서 현대까지 이어져 온 민속과 공예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전시이다. 특히 이 전시는 비어있는 전시장이 아닌, 이미 완성형의 공간인 열린 수장고1)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구현하는 전시로, 새로운 형태의 전시 플랫폼으로서 시도를 꾀하는 매우 유의미한 프로젝트이다.

‘함께’ 그리고 ‘연결’의 키워드, 전시디자인
수장고는 소장품의 ‘집’과 같은 공간이다. 《민속×공예: 소소하게 반반하게》는 전통 소반과 반닫이의 ‘집’이었던 열린 수장고에 각기 다른 현대 공예작가 13명의 작품 49점을 초대하여 ‘함께’하는 전시다. 필자는 이곳에 초대받은 작품들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디자인 방향을 고민하였다. 이번 전시 디자인의 큰 틀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큰 전시처럼 느껴지도록 함에 있었다. 즉 새로운 콘텐츠가 전시장 한 켠의 작은 공간으로포켓이나 코너 형태 추가되는 소극적인 형태를 떠나, 기존 공간에 있던 콘텐츠와 새로운 콘텐츠 간의 경계를 허무는 적극적인 형태로서, 재분류, 재배치, 재맥락화하여 또 다른 전시로 실현하는 것이다. 먼저 현대 공예작품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집기가구, 좌대 디자인에 신경썼다. 파주관에서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조형언어인 그리드Grid 패턴을 유지하면서도 전시공간에 조화될 수 있는 간결한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여기에 과감하게 사용한 고채도 컬러와 광택감을 살린 마감재로 대비를 줌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고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도록 하였다. 200여 점의 전통 소반과 반닫이로 가득 채우고 있는 기존 수장대 곳곳에도 ‘연결’이라는 키워드는 계속 읽히도록 의도했다. 현대 공예작품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이는 유사 형태의 전통 소반에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컬러 받침대를 사이사이 배치하여 시각적·공간적 매칭을 돕도록 하였다. 이로써 모든 작품은 감상하기 알맞은 위치와 높이, 숙고된 배열에 의해 개별로 집기 위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타 작품들과의 조화 속에 연출되어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서로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함께’에서 확장된 ‘연결’이라는 키워드는 전시 영상의 비주얼 아이덴티티에도 반영되었다. 천정에서 벽면, 바닥을 잇는 가로 2.2m 세로 7.5m의 세로형 영상은 전통 소장품과 현대 공예작품이 교차되는 모션그래픽을 통해 ‘전통’과 ‘현대’라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 서로 연결되어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작가들이 다양한 소재의 실험을 통해 저마다의 해석을 보여주었듯이 나무, 도자, 금속, 합성수지의 각기 다른 재질로 제작한 소반 촉각전시물을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보면서 재료별 차이를 느껴보도록 하였다.

현대 공예작품에 영감을 준 전통 소반에는 컬러 받침대를 놓아 주목도를 높이고 ‘연결’을 강조하였다.

다양한 변주가 돋보인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
《민속×공예: 소소하게 반반하게》 전시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다. 건축의 디자인 요소로도 사용된 전통 창살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소소반반’ 레터링과, 현대의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는 모습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컬러를 합쳐 감각적인 전시 아이덴티티를 개발했다. 이를 포스터, 브로슈어와 같은 인쇄 매체뿐 아니라 무빙포스터, 프롤로그 영상과 같은 영상매체, 전시 공간 내 집기디자인까지 관람객과 접점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영역에 변주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통일된 정체성을 구현했으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건물의 정면부, 즉 파사드에 대형 윈도우 그래픽을 진행하였는데 유리월로 마감된 건물 외벽을 십분 활용한 컬러 랩핑2)과 레터링은 포인트가 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단번에 끌었다. 해가 저무는 오후가 되면 내부 깊숙이 들어오는 색색의 빛들이 대리석 일색인 로비 공간을 물들이며 내·외부의 경계가 흐려지는 듯한 흥미로운 공간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인드에 들어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3)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방향과 빛의 양에 따라 로비 공간은 변화하는 색상으로 매시간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로비 한켠에 전시한 구본창 사진작가와 하지훈 디자이너의 소반 작품

수장형 전시의 첫 번째 사례, 《민속×공예: 소소하게 반반하게》
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가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과 협업한 데서 나아가 개방형 수장고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수장형 기획전시로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전시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수장’과 ‘전시’는 생각보다 공존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특히 전시디자이너 입장에서 ‘수장형 전시’는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여러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4) 하지만 모든 제약 조건은 새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기회가 되기도 하듯이, 이번 전시가 개방형 수장고 수장형 전시디자인의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열린 수장고가 지속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고민하고 선보이는 공간으로 선도적인 위치, 유니크한 취향을 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1)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열린 수장고(16수장고)는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의 한 형태로서 현재 반닫이 25점, 소반 175점, 떡살과 다식판 271점이 격납·전시되어있다. 2022 ASIA Design Prize의 Space Design 부문에서 Winner를 수상했을 정도로 전시 연출적인 면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공간이다. asiadesignprize.com
2)wrapping : 건물이나 물건의 겉표면에 필름이나 색상시트지로 씌우는 작업
3)안진환 옮김, 잭트라우스·엘 리스 지음, <포지셔닝>, 2016, p39
4)수장고 공간이기에 전시물 제작 설치 과정부터 순탄하지 않다.


글 | 유민지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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