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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공동기획전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개관 22주년을 맞이하여,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 공동기획전을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거제시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수집한, NARA(미국 국립문서보관청) 소장 포로수용소 관련 기록 사진과 영상물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생활2021.10.15.~2022.3.31.
공동기획전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은 거제도로 들어온 6・25전쟁 포로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전시이다. 인구 10만의 평범한 어촌이었던 거제도는 최대 17만 3천여 명의 전쟁 포로와 10만여 명의 피란민이 유입되면서,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섬이 되었다. 그리고 거제도에 새로 설치된 포로수용소는 다양한 국적과 계층의 전쟁 포로를 품음으로써, ‘제1의 포로수용소, 캠프 넘버 원’이란 명칭을 부여받았다.

1부. 캠프 넘버 원
1부 ‘캠프 넘버 원’에서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설립배경과 공간 구성 그리고 관리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6・25전쟁으로 발생한 수많은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유엔군은 거제도를 새로운 포로수용소 부지로 선택했다.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포로 관리에 최소의 인력과 경비가 소요된다는 점, 급수가 용이하다는 점, 포로들의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가 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이에 거제도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수용소가 설립되고, 이후 포로 분리에 따른 분산 수용을 위해 거제도 남부면 저구리, 용초도와 봉암도 등지에 추가로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그렇게 거제도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제1의 포로수용소, 캠프 넘버 원’이 되었다.

1-1. 포로수용소 6・7・8・9구역
1부 첫 번째는 수용소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곳곳에 둘러진 철조망은 수용소의 안과 밖을, 그리고 내부의 경계를 구분 지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4개 구역과 그 하부 구조인 28개의 수용동으로 이루어졌다. 중앙계곡고현동에는 제6구역, 동부계곡수월동에는 제7·8·9구역이 설치되었으며, 수용동 내부는 관리자 공간과 포로 생활공간으로 나뉘었다. 관리자 공간에는 유엔군사령부와의 연락 수단인 초단파구역 중계소를 비롯하여 비행장, 보급창고, 숙소, 화장실 등이 있었다. 그리고 포로 생활공간에는 포로 막사, 야외 취사장, 야외 화장실 등이 있었다. 그 밖에 특수시설로 민간정보교육국 교육동, 야전병원, 감옥 등이 자리 잡았다.

1-2. 포로수용소 사람들
1부 두 번째는 수용소 관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국적과 출신, 이념이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하나의 작은 세상이었다. 전쟁 포로의 대부분은 정규 군인이었으나, 군인이 아니어도 유엔군이 의심스럽다고 판단된 경우에도 포로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부 피란민은 물론 여성과 아이들도 포로가 되었다. 포로수용소에는 북한 포로 15만여 명, 중국 포로 2만여 명 등 최대 17만 3천여 명의 전쟁 포로가 수용되었다. 또한 대규모 포로를 관리하기 위한 부대 병력과 행정 인력, 포로를 심문하거나 의사소통에 필요한 통역원 그리고 포로 재교육을 담당한 교관, 이 밖에도 의사와 간호사, 목사와 신부, 각종 편의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부. 포로의 생활
2부 포로의 생활에서는 포로의 하루 일과와 특별한 날을 전한다. 6・25전쟁은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제3협약이 적용된 첫 사례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포로들은 이전의 전쟁 포로와는 달리 굶주리는 일도,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일도 없이 어느 정도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았다. 자치제를 도입하면서 하루 세 끼 식사를 직접 준비하기도 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직업교육을 받았으며, 취미생활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자유시간도 주어졌다. 이처럼 포로들은 철조망 속에서 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누렸다.

2-1. 하루 일과
2부 첫 번째는 포로의 하루 일과에 관한 이야기이다. 6・25전쟁으로 일상생활이 무너져버린 포로수용소 밖과는 달리 포로들의 일상은 평범했다. 새벽 5시 30분 기상과 동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6시 30분 점호를 받았다. 7시 오전 일과가 시작되었고, 11시 30분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 1시 다시 점호를 받고, 5시까지 오후 일과가 진행되었다. 일과 시간에는 포로 생활에 필요한 물자 운반, 도로 보수 작업, 환경 작업, 취사장 작업 등 단순 노역을 했다. 오후 5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취침 전 점호 시까지는 자유 시간으로 세탁을 하거나 운동과 독서 등의 개인 취미활동 시간을 가졌다. 저녁 8시 소대별 점호를 취한 후 취침에 들면서 하루 일과를 끝냈다.

2-2. 특별한 날
2부 두 번째는 포로의 특별한 날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용소 당국은 포로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네바 제3협약을 준수하고 있으며, 친공포로들까지도 잘 대우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교육활동과 각종 행사를 지원했다. 포로에 대한 교육 활동은 1951년 6월부터 1952년 5월까지 진행되었다. 포로 교육이 진행된 일여 년 동안 포로는 대장장이, 목수, 이발사, 구두수선공, 인쇄공 등의 직업교육과 문맹교육을 받았다. 또한 포로 올림픽, 음악 및 연극 공연, 작품 전시회 등 교육 결과를 선보이는 특별한 행사도 진행하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평범한 포로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 정지연_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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