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는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으리으리한 가옥과 자신의 가문만을 중요시하는 권위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가는 가풍과 학풍을 이어오며, 가문을 넘어 지역사회에 나눔의 문화를 실천해오고 있다. 상주박물관의 <섬김과 나눔의 큰집, 종가>를 기획한 조연남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조연남 학예연구사이하 조연남_ 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 박물관과 진행하고 있는 <K-museums 지역순회 공동기획전>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상주의 ‘종가宗家’를 주제로 한 전시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온 종가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임란일기보물 제1003호’, ‘월간 창석 형제 급난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7호’, ‘효곡재사 현판’, ‘백비탕 그릇’, ‘도남서원 사적’ 등 120여 점의 자료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조연남_ 올해 상주박물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았고, 이전에 영호남의 소통을 이끈 학자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 종가를 중심으로 전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종가는 불천위不遷位, 국가나 학문에 큰 공이 있어 사당에 영원히 모시는 신위 조상을 중심으로 한곳에 터를 잡아 대대로 내려온 큰집입니다. 상주는 경상북도에서도 많은 종가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상주에 자리 잡은 열여섯 개의 종가들은 학덕學德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가통家統을 이어왔습니다. 상주 지역문화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섬김’의 마음으로 종가를 지키며, 가문을 넘어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해 온 상주 종가의 참모습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종가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조연남_ 열여섯 개 종가를 전시에 다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공간이 협소하다보니 유물을 전시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종가별로 전시하기엔 공간도 좁고 종가마다 유물이 달라서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고심하다가 문文, 효제孝悌, 충서忠恕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내었고, 주제에 맞게 유물을 모아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종가의 사정으로 인해 두 개 종가의 유물은 전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는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연남_ 종가별로 유물을 가져와야 했는데, 어떤 것을 소장하고 계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유물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주는 옛날부터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경상도라는 명칭이 상주에서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굉장히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건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유물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종가의 종손, 종부님께서 협조를 잘 해주셔서 소장하고 계셨던 소중한 유물들을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조연남_ 안반案盤은 떡을 칠 때 사용하는 나무판으로, 우복종가 종부님께서 시조모님의 일화를 말씀해주시다가 소장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종부님의 시어머니께서는 설이 지나면 사당 세배를 오는 손님들을 위해 떡을 만드는데, 떡 치는 날만큼은 머슴들이 떡 하나를 먹더라도 주인의 눈치를 덜 보게 배려하셨다고 합니다. 머슴들이 떡을 치면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셨던 거죠. 그렇게 사용하던 안반은 우복종가의 마당 한편에 세워져 있었고, 우복종가를 네 번 정도 방문했을 때야 이야기를 듣고 박물관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월간종가 종부님은 남편 분이 살아계실 때 시내를 거의 안 나가셨다고 합니다. 가마솥에 불을 떼어 사용하던 시절, 음식을 하느라 부엌에 있으면 한복소매가 금방 시커멓게 되었다고 해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종가라고 하면 살림살이가 잘 갖춰진 부잣집으로 인식하는데, 현실은 평범하고 누구보다 힘들게 사셨던 거죠. 한복을 소장하고 계시다고 해서 전시에서 소개하려고 했는데, 종부님께서 찾아보니 없다고 하셔서 전시는 하지 못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한복을 찾으시느라 고생하셔서 죄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연남_ 삼선생 수적 주절주해三先生手蹟朱節註解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자필 『주자서절요』 주註에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에 이어 월간 이전月澗 李㙉, 1558~1648이 주를 붙인 것으로, 1930년에 그 후손들이 그 책의 주를 떼어서 한 책에 정리한 것입니다. 종가의 학문이 이어져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상經床은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이 사용한 것으로, 수암 류진修巖 柳袗, 1582~1635을 거쳐 강고 류심춘江皐 柳尋春, 1762~1834까지 전해졌습니다. 대를 이어 많은 학자를 배출한 풍산류씨 우천종가의 학문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이와 함께 여산송씨 우곡 송량愚谷 宋亮, 1534~1618을 모시고 있는 효곡재사孝谷齋舍 의 현판懸板도 중요한 유물입니다. 송량의 지극한 효성으로 인해 마을 이름이 소곡素谷에서 효곡孝谷으로 바뀌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백비탕 그릇白沸湯 湯器은 우천종가의 유물인데요. 우천종가에서는 ‘가전청백家傳淸白 충효세업忠孝世業’을 가훈으로 삼아 왔는데, 녹봉이 떨어졌을 때 손님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인 물인 백비탕白沸湯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비록 끓인 물이라도 놋그릇에 담아 정성껏 대접함으로써 손님에 대한 예를 다했던 것이죠.
조연남_ 소재 노수신 종가는 나눔을 실천한 종가였습니다. 워낙 청렴하시다 보니 넉넉한 생활을 하지 못하셨는데, 자신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더라도 손님에게는 꼭 대접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가 근처에 감나무를 많이 심어서 아이들이 따 먹게 했다고도 합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이 편하게 감을 딸 수 있도록 나무 아래 작은 사다리까지 두셨다고 하니 얼마나 나눔을 실천하신 분인지 알 수 있지요. 종손님이 돌아가신 후 마을 사람들이 서로 상여를 매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복종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생선장수가 아이를 업고 저녁에 왔는데, 종손님이 자신은 이미 먹었으니 저분에게 밥을 드리라고 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종손, 종부님이 굶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조연남_ 종가의 종부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힘들게 사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가에 시집을 왔기 때문에 일 년에 12번이 넘는 제사를 지내며 종가의 안살림을 책임져 오셨습니다. 젊은 때 종손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손 마디마디에 관절염이 올 정도로 고생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우복종가는 현재 종부님이 편찮으신데, 자녀분들이 굉장히 극진히 모시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요양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우복종가 분들은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집에서 간호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희가 가면 매번 찐 감자를 내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종가 분들은 사명감으로 종가를 지키며, 가문을 넘어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해오고 계십니다.
조연남_ 이번 공동기획전을 통해 많이 배웠고, 즐겁게 작업해서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시장을 방문해주신 종가 어르신들도 매우 만족해 하셨습니다. <K-museums 지역순회 공동기획전>을 함께한 국립민속박물관과도 얘기를 했었는데, 종가의 종부님들의 삶을 조명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비슷하게 선비의 삶도 조명해보는 듯 사랑채를 그대로 살리면서 관련 기획전을 시리즈로 진행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조연남_ 종가는 우리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 있습니다. 또한 종손, 종부님들의 삶도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착취하고 권위적이었던 종가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대부분의 종가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을 통해 종가에 대해 재인식하고,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상주박물관의 공동기획전 <섬김과 나눔의 큰집, 종가>는 2017년 9월 18일(월)부터 2017년 12월 25일(월)까지 상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