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한 대도시에 두 달 째 머물고 있는 나는 한국의 어떤 것들에 대해 외국어로 설명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정확히 말해서 그건 외국어도 아니다. 영어와 불어와 독일어와 일본어와 한자중국어가 아니라 한자다.를 총 동원해, 그 언어들 중 알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빈곤한 어휘들의 조합으로 그걸 설명하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외국에도 있는 어떤 물건이나 개념이 한국에도 있는 경우가 아주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이를테면 ‘관혼상제’라든가 ‘유교’, ‘가부장제’, ‘사농공상士農工商’, ‘화랑花郞’, ‘단오’ 같은 것들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무언가를 깨달았는데, 설명의 어려움을 겪은 대부분의 것들이 한국의 민속이나 풍속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란을 느꼈던 것이 ‘무당’이다.
무당은 일종의 ‘미디엄medium, 영매’이라고 설명했고, “그럼 샤먼shaman이냐?”라고 물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한국 무당에는 흔히 ‘신이 내렸다’라고 말하는 강신무spiritualistic shamans와 가문을 중심으로 무당의 신분을 이어받는 세습무hereditary shamans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병神病을 거쳐 신직神職을 얻고 무당이 되는, 무당으로 타고 나는 경우와 훈련을 통해서 무당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당사주를 보아달라고 찾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생년월일 생시를 대고 뽑은 점괘의 길, 흉, 화, 복을 알록달록 울긋불긋 그림으로 그려 풀어놓은 당사주책은,
콩기름 먹인 장지 뚜껑을 젖히면 넘기는 부분에 손때를 깊이 머금은 채, 이 본 저 본 여려 권, 백단이네 방 윗목 소반 위에 늘 포개어 얹혀져 있었다.
– 최명희, 《혼불7》, 한길사, 1996
위의 문장을 발췌한 최명희의 《혼불》에서 그런 무당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무당은 내가 이해하고 있던 것처럼 세습되는 것이기도 하고 신이 내려서 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 세습으로서의 무당은 굿을 하고 신이 내린 무당은 굿도 하고 미래를 점치는 일을 한다는 것,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세습무이지만 동시에 점도 치는 무당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일이란 그런 것이다. 정의나 분류대로만은 흘러가지 않는다. 이래서 소설이 있는 것이다.
차라리 한창 젊은 신딸들한테 그것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한승원, 「새끼무당」, 문예중앙, 1994
그런데 또 한승원의 「새끼무당」을 보면 굿을 하는 세습무에게도 타고난 무언가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신명’이라는 것이다. 순우리말로 이해하면 ‘흥겨운 신이나 멋’이라는 뜻일 테고, 한자어로 이해하자면 神明,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신령’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에게는 이 두 가지 뜻의 신명이 다른 신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보다도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신이 나서 할 수 있는지가 아니었던가. 한승원의 저 무당은 굿을 할 때 더 이상 신이 나지 않으므로 굿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신명이라는 것이 신이 무당에게 주었던 것이었다면, 왜 신명을 거두어 가버린 걸까? 신의 목소리를 듣던 사람이, 그래서 사람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던 사람이 더 이상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가 살아온 인생과 존재의 의미가 사라져버렸는데. 신은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대답해준다면 신이 아니니까. 무당이라는 직업 혹은 운명은 여전히 우리에게 인생과 세계의 불가해함을 증명하는 특별한 존재다.
1947년 전북 전주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만 17년간 《혼불》 집필에만 힘을 쏟았다. 그 외 단편소설 「몌별」, 「만종」, 「정옥이」, 「주소」 등이 있다. 1998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소설집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등과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원효》 《보리 닷 되》 《사람의 맨발》 등이 있다.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15년 장편소설 《거짓말》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가 있다.
감수_ 장장식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