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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걸어갈 길

우리 민속문화의 생명력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한다

나경수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나라 민속학의 권위자로서 국립민속박물관의 행보를 지켜보며 주요 궤를 함께 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지금, 그에게 민속박물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국립, 민속박물관이 있어 다행이다
2년 전 교수 자리에서 퇴직했지만 나경수 명예교수는 여전히 바쁘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놀고 있다”라고 웃지만 여전히 그를 찾는 강연회, 포럼, 공청회 등은 꾸준하고 요즘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공모한 영문 저서를 한창 번역하는 중이다. 2023년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삼청동 경복궁으로 이전 개관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민속학 권위자로 꼽히는 나경수 교수에게 이는 꽤 유의미한 일이다. 그 어느 대학에도 민속학과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민속학을 두고 마이너 중의 마이너, 외로운 학문, 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국립기관으로서 ‘민속’이라는 표기를 달고 있는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안심이 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알찬 전시도 많이 열었지만 특히 민속 분야별로 나눠서 꾸준히 사전 편찬을 해온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이는 사실 국립기관이 아니면 하기가 힘듭니다. 개인이나 작은 단체에서 하기엔 예산이나 인력면에서 불가능하거든요. 또 아카이빙도 굉장히 잘하고 있는데 희귀자료, 기증자료 등을 굉장히 잘 정리해서 온라인 상으로 볼 수 있고 또 활용할 수 있게 해놨어요. 박물관, 하면 뭔가 고전적인 느낌이 있는데 굉장히 발 빠르게 디지털에 적용해서 상당히 많은 성과를 낸 거죠. 저도 참여를 했지만 시민 대상이나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부분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리 민속을 확장하고 두텁게 하는 데는 학생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사 연수’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나경수 교수 입장에서 이 부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의도를 갖고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보급하고 파급시킬 수 있는 게 교사의 힘이잖아요. 직무 연수, 자격 연수 등을 통해 교사,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면서, 마이너 학문인 민속에 사람들이 부정적인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경수 교수는 대학 재직 당시 ‘전통’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커리큘럼을 만들었지만 3년 이상 지탱한 적이 없다며 아이들이 갖고 있는, ‘전통’은 고루하고 지루하고 재미없고 꼰대스럽다고 생각하는 네거티브한 인식을 바꾸려면 교육과 언론이, 그 중에서도 현실성 있는 교육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수장고

K-컬쳐 붐? 우리 문화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이 우선
2023년, 때는 바야흐로 K-컬쳐 융성의 시대다. BTS,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팝, 드라마 <오징어게임>, 영화 <기생충>은 이제 더이상 우리만 열광하는 존재가 아니며 대한민국의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전세계적으로 불붙듯 일어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경수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낙관을 경계한다. K-컬쳐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산 및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요소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 기반이 현재로선 매우 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속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다수 국민들이 외국, 특히 선진국 문화를 무조건 다 좋은 걸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사실 K-컬쳐가 각광 받는 것도 외국에서 알아주기 때문인 거잖아요. 축제를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가 1,500개나 되지만 사실 저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축제의 본질은 참여와 체험인데 전부 관광객들을 위한, 우리 지역 문화를 타자화시켜버리는 상황이잖아요. 즉 축제에 주인이 없다는 거지요. 우리가 주인이 된, 내수시장 견고함은 꼭 필요합니다. 판소리 음반이 국내에서 100만 장이 팔린다면 세계적인 음악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요.”
나경수 교수는 문화는 K-컬쳐가 오래 가려면 우리의 역사, 전통, 민속 등이 일관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튼튼히 다져야 발광체로서 계속 빛을 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이요? 사실 이건 한 기관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는데 국립민속박물관이 우리나라 문화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은 교육 사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통문화 인식을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확산시키는 거라고 봅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금 이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할 것, 이라는 나경수 교수의 단언이 붕뜬 마음에 묵직한 추를 드리운다. 그렇다면 교육 외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해야하는 미래 사업에는 뭐가 있을까? 나경수 교수는 두 가지를 꼽았다.
“우리나라 지정문화재에는 4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그리고 민속문화재죠. 이 4개 중 가장 천대 받는 것이 민속문화예요. 저는 민속문화재를 규정하는 법률적 개념부터 잘못되어 있다고 보고 있으며 공주 옷이 아니라, 장승이나 솟대 등이 민속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고 봐요. 이런 것들이 아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문화재청의 “직무유기”입니다. 저는 민속박물관이 학술대회, 공청회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민속문화재 지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래요. 또 민속문화는 지역마다 다릅니다. 지배층인 양반들의 시조는 평안도든 전라도든 3장 45자 내외로 똑같이 구성되지만 민속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기 때문에 이를 집산시키기 위해서는 광역자치단체별로 민속박물관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실물 아카이브예요.”

 

국립민속박물관 사람들을 추억하다
분위기를 바꿔보자. 나경수 교수의 실타래처럼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국립민속박물관에 대한 애정과 비례한 깊이와 내밀함을 가진 만큼 말랑한 에피소드도 청해본다.
“국립민속박물관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종철 관장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을 성장시키고 위상을 높였으며 재임기간 동안 관람객 2,000만 명이 찾아오게 만든 분이에요. 회의도 참 수시로, 많이 했던 분이라 제가 서울에 자주 올라갔었는데 막상 관장실에 들어가면 누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토시를 낀 채 늘 일에 몰두하고 있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 상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부분이(웃음)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직원들한테 수시로 연락해서 업무지시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그런 열정을 기반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거지요.”
내친김에 나경수 교수는 민속박물관이 전시회를 참 재밌게 잘한다, 라는 칭찬도 꺼내놓았다.
“2012년에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면서 민속박물관에서 ‘아리랑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저도 관람을 했었는데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그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아 전시를 하는 모습이 정말 희한하게 느껴졌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은 못하는 걸 국립민속박물관은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존재 이유가 되는 거죠. 국립민속박물관 사람들이 참 일을 잘합니다.”
대화 내내 민속문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부족과 민속문화 전문가의 부재를 안타까워한 나경수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
“대중들이 우리 문화나 민속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나 조언이요? 그런 거 없습니다. 부질 없어요. 개인에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공감은 해도 실천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예전에 김연아 선수나 손연재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한창 활약하며 메달을 딸 때 배경음악으로 우리 국악을 썼으면,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데리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직접 5분짜리 음악을 융합해서 만들어봤는데 재밌더라고요. 결국 교육의 힘이 중요하다, 로 자꾸 귀결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전통, 우리 민속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포지티브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면 한번쯤 서양음악과 국악을 융합해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한적하고 외진 길을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나경수 교수. 노老 교수에게 민속학은 여전히 외롭고 힘든 학문이지만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나의 원류, 나를 이루는 DNA의 출발지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먼 길을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손을 내미는 나경수 교수의 손끝에는 여전히 단단한 힘이 실려 있었다.


글 | 나경수_전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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