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인터뷰

문화로 숙성된 우리의 식탁

지금 우리나라 TV는 주방이다. 리모콘을 누르면 반 이상의 채널에서 썰고, 볶고, 끓인다. 셀 수 없이 많은 음식과 조리법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나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적이 있나 싶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문화가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우리 삶에 존재할까. KBS <누들로드>, <요리인류>를 통해 세계인들의 음식문화를 탐구해온 이욱정 PD를 만났다.

 

큰 상에 솥 하나, 우리 잔칫상에 담긴 몇 가지 법칙

최근 세계는 한국을 꽤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나 생활, 역사와 환경에 이르기까지. 물론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에게 ‘우리의 음식 문화’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물었다.

 

“’파티’를 생각해봤어요. 파티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자리이지요. 식음료가 없는 파티는 상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음식을 나누며 생각과 말을 더불어 나누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서양의 파티 장면을 보면,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내가 조금 어색해질 때가 있다. 누구나와 대화하고, 곁을 지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과연 저 자리에 있다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우리에게는 조금 머쓱한 장면이다.

 

“서 있는다는 것은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쉽게 바뀔 수 있고, 또 내가 간단히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앉아야 하죠. 앉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쉽게 바뀌지도 않고, 자리를 옮길 일도 좀처럼 없다는 겁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잘 아는 사람과 오래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의 솥에 있는 걸 함께 떠먹는다거나, 앞에 주어진 음식을 나눠 먹는 ‘한상차림’이 잘 맞습니다.”

 

그는 우리의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메인 스피커중심 인물’를 꼽았다. 메인 스피커가 존재함으로써 위계질서가 잡히고, 그렇게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그 잔치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잔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자리는 바로 ‘회식’. 자리의 중심에는 가장 윗사람이 앉게 되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대화는 지방방송이 된다. 서양의 파티가 우리에게 어색한 만큼, 서양도 이런 우리의 잔치가 익숙할 리 없다.

 

“오래 전, 런던에서 처음으로 고기를 구워먹는 형태의 한식집을 도입한 지인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정말 쉽지 않았다고 해요. 손님 일행이 각자 먹고 싶은 고기가 다른데다, 골고루 시켰다 해도 각자 자신이 주문한 고기만 먹으려다 보니 다른 일행의 고기를 모두 다 구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컴플레인이 대단했다고 해요. 서양은 보통 각자 다른 요리를 주문해도, 비슷한 속도로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주방에서 충분히 계산해 내어주니까요. 하나의 불판을 이용해 먹을 수 있도록 같은 음식을 주문하고, 함께 나눠 먹는 우리의 문화가 그들에게는 불편했던 거죠.”

 

회식 풍경을 떠올려보자. 음식이 어떻게 주문되고, 어떤 식으로 차려지고, 그 음식을 사이에 두고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누는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일단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파도를 타고, 손을 모아 같은 목표를 뜨겁게 외치며 얼큰한 시간을 보낸다. 이게 우리의 잔치인 것이다.

우리의 식문화가 서양인들에게 낯선 까닭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와 아무렇지 않게 한 솥의 찌개를 떠먹을 수 있게 되려면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삶의 형태를, 정서를 모두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문명 탄생과 함께 등장한 음식이 지금 다시 각광받는 이유

그는 <요리인류 시즌2>를 제작 중이다. 시즌1이 각 나라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음식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각국의 ‘도시’와 음식을 조명할 예정이다. 이미 일본 도쿄와 교토를 찾아 그곳 음식에 대한 답사도 마쳤다. 도시와 음식이라.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도시는 태생부터 먹거리에 있어 불안정한 공간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밀집된 사람들이 하루 세끼를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음식을 먹어야 하죠. 이 과정에서 인류의 식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레스토랑’의 탄생입니다. 도시인은 입맛이 까다로워요. 육체 노동이 아닌 사무나 상업 등에 종사하기 때문에 감각적이고, 입이 짧고, 같은 음식을 참지 못합니다. 이 군상들을 위해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야 했고, 이것은 오늘날의 모든 테크닉, 서비스 등이 태어난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도시는 태생적으로 위태롭지만,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양면을 갖고 있습니다.”

 

초밥은 요즘 세계인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것 중 하나다. 간편하고 산뜻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 사랑받는 초밥은 400여년 전인 에도 시대에 탄생했다.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모여든 전국의 남자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목조 가옥으로 불을 쓰는 요리를 기피하던 당시로서는 제격인 음식이었다. 간단하고 알차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초밥, 돈부리, 야키도리, 덴푸라 등의 스트리트 푸드가 그때 태어났고, 지금에 이르렀다.

 

“왜 그 시대의 음식이 20세기, 21세기의 식탁을 석권했을까요. 첫째, 빨리 조리됩니다. 둘째, 밥 위에 어떤 것을 얹느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초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키지요. 셋째, 휴대하기 매우 용이합니다. 오늘날 도시인들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어떻게 식문화를 바꾸었는지 가장 상징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초밥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간편하게 먹을 음식을 찾고, 집에서 밥을 지어 먹기 보다 밖에서 사 먹는다. 400년 전과 닮아있다. 그 옛날의 음식이 지금에도,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bobsang

 

음식, 이제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예술이고 놀이가 되다

요즘 우리 생활에 불어 닥친 ‘쿡방’, ‘먹방’은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토록 성황인 걸까. 이욱정 PD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먹고 요리하는 것에 대한 본능과 욕구를 억누르며 살아왔어요. 유교적인 관념 혹은 고도성장사회에서 ‘먹는다’는 것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거죠. 얼른 끼니를 때우고, 얼른 일을 해야 하니까요. 음식이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고, 예술이자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 그런 시선이 바뀐 겁니다. 남자가 옷에 신경 쓰는 것이 더 이상 꼴불견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이제 지겨우니 그만했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항상 나오는 셰프들이 또 나와서 조리법을 가르치고, 혹은 대결을 펼치며 모여 앉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감상을 나눈다. 이것밖에 없을까.

 

“지겹다는 마음, 이해해요. 워낙 같은 포맷의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음식에 관한 콘텐츠는 무궁무진해요. 지금보다 더 다양화 되어야 하고, 깊이를 가질 필요가 있죠. 접근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음식점은 넘쳐나지만 전문적인 음식평론가도, 음식평론서도 없어요. 눈에 보이는 음식이라는 덩어리에는 관심이 있지만 음식에 대한 이야기, 말,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혹은 보고 싶다는 욕구가 부족하죠. 그 나라의 음식문화가 풍부하다, 다양하다, 선진적이다라고 얘기하려면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해야 합니다.”

 

외국의 서점에 가보면 음식 코너에 어마어마한 서적이 꽂혀있다. 음식의 역사, 레스토랑에 대한 평론, 식재료에 대한 리서치 등 우리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 서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다. 방송도 마찬가지. 그만큼 오랜 시간, 음식을 향해 가져온 그들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도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콘텐츠는 더욱 다양화 될 테고, 음식에 접근하는 태도도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화가들의 그림에 평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절름발이나 다름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음식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기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조선 시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과 <규합총서>에는 조미료 없이 깊은 맛을 내는 당시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꽉 채워지지 않은 맛의 여백이 그 때의 삶을 대변한다. 지금의 삶은 어떻게 기록될까. 분명 중심에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사람과 음식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이욱정 프로듀서
KBS <추적60분-학교급식이 위험하다>2004, <문화의 질주-맛있는 나라의 유혹>2006, <KBS스페셜-주방의 철학자>2009, <KBS스페셜-셰프의 탄생>2012 등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누들로드>2008는 미국 피버디 어워드Peabody Award, ABU, 한국방송대상 등 국내외 방송관련 최고상을 휩쓸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방송되었다. 음식을 제대로 알아야 좋은 음식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2년간 요리유학을 감행, 돌아온 후 8부작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2014~2015를 연출했다. 현재 <요리인류 시즌2>를 제작 중이다.

글·사진_ 편집팀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