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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도가 움직인다

지도가 기록하는 세상? 십여 년 전만해도 여행에는 지도 책 한 권쯤은 필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전국의 명소는 물론 동네 빵집도 찾아 다닐 수 있다. 현재 위치를 파악해 원하는 장소로 데려다 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의 간판과 전화번호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지도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발로 뛰어 세상을 비추는 新 김정호들 덕분이다. 그들이 만드는 21세기형 대동여지도, 로드뷰를 제작하는 다음카카오 다음지도의 로컬콘텐츠셀 백규진 셀장을 만났다.
지도, 똑똑해지다

인터뷰에 앞서 ‘국립민속박물관’을 소개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못 찍은 곳입니다.” 세상의 숱한 장소를 ‘찍었는가, 찍지 못했는가’라는 기준으로 구분하는 그는 어쩔 수 없는 지도쟁이자칭였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변의 것들을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 혹은 기기나 사물에게 번역해서 전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저의 일입니다.”

백규진 셀장은 자신의 일을 그렇게 설명했다. 물론 산의 고도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서민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는 만큼 지금 이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내해 주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말을 보탰다.

사실 지도라 하면, 평면도에 눕혀 그려진 지형이나 고도를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가 스스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 더 큰 일이었는데, 요즈음의 지도는 나의 위치를 파악해 길을 안내하는 개개인을 위한 지도로서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지도를 사용하는 목적이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 지도 또한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과연 어디까지를 지도라 부를 수 있을까.
“오늘 날씨는 어떤지, 해는 몇 시에 뜨는지, 오늘 가려는 등산로는 언제 막히는지 등 이 모든 안내들이 모두 지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또 ‘들불놀이 축제’와 같은 무형의 것들까지 지도상에 담아서 사용자의 의도와 위치정보를 매치하여 최적의 정보를 안내하는 것까지를 지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만드는 지도는, 그 장소가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다양한 정보까지 포함하여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주는 ‘생활의 혁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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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뷰 제작자 백규진.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명감이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젊은 김정호들

한번 원정 촬영을 떠나면 일주일은커녕 한달 이상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촬영팀은 인터뷰일에도 공석이었다. 예정된 일정만큼의 속옷을 싸 들고 촬영을 떠났다고 했다. 만만치 않은 노동강도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명감’이라고 했다.

“돈을 좇지는 않습니다. 소비자와 사업자의 접점을 잘 조율해서 지도에 반영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것만 다루자면 번화가나 거리 표정이 자주 바뀌는 곳 위주로만 찍어야겠지요.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찍어야만 한다는 의지로 찾는 곳은,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하는 곳’입니다.”

얼마 전에는 철거를 앞두고 통행까지 막아둔 아현고가도로를 찾았다. 안 된다는 것을 몇 번이고 사정해서 찍었다. 낡은 고가도로의 거리표정은 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았고, 찍었다. 누군가는 기록해 두어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아현고가도로가 철거된다고 해도, 당장 철거 전 아현고가도로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이용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훗날 아현고가도로라는 것이 몇 줄 기록으로만 남겨지게 되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이용자가 있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알려줘야지요. 아현고가도로는 이런 모습이었다고.”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그 사명감의 근원지를 물었다.

“한국전쟁이나 혹은 그 이전, 우리나라가 힘들었던 시기를 담아둔 사진들은 거의 외신기자가 찍은 것들이지요. 그것을 복원하고 컬러를 입혀 현재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것들이 우리를 통해 기록되지 못하고, 보존되지 못했는가에 대해 늘 생각했어요.”

원래 지도란 이토록 감동적인 사물인 걸까. 역사를 기록하고 현장을 남겨두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던 김정호의 그것이 떠올랐다. 그들은 누구도 그들에게 억지로 쥐여주지 않은, 스스로의 사명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가장 아쉬운 것은, 로드뷰 서비스가 2009년 처음 시작되어서, 숭례문 소실 전을 미처 찍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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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도를 표현한 <동국지도>는 원 안에 지명이 표기되고, 도별로 색이 다르게 채색되어 있다.
<해좌전도>는 19세기 중반경 제작된 것으로 유추되는 대표적 목판본 조선전도이다. 산줄기와 하천, 호수, 자세한 교통로 등이 표시되어 있다.
<조선팔도지도>는 조선팔도,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본도로 구성되어 있다. 산수 표현과 채색이 특징이다.
<전국팔도채색지도>는 휴대용으로 제작한 전국 팔도 지도. 위도ㆍ경도와 같은 줄이 있고,
주요 도로는 붉은색, 바다와 강은 푸른 색, 산맥은 검은색 등으로 표시되었다. 모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세상이 온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지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이미 지도를 제작하여 활용하였고, 조선 시대에도 왕권 강화와 국가 통치를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상업의 발달과 무역, 국방 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지도가 등장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도는 그 쓰임에 맞춰 다양한 형태를 갖추어 왔지만, 가장 급격한 변화를 이룬 것은 근래의 일이다. 종이 지도에서 디지털 지도로 완전히 다른 질감의 지도가 탄생한 것이다. 지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가장 완벽한 지도는 같이 만나서 밥을 먹고 이동할 장소를 냅킨 위에 그려주는 지도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만 담겨있죠. 대동여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만 담고 있지요. 지금 우리도 우리가 사용하는 매체들이 허용할 수 있는 데이터 범위까지만 표현할 수 있어요. 즉, 대동여지도는 그 시대에 맞는, 지금의 지도는 현재에 가장 적합한 지도입니다. 미래에도 그 때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지도는 살아있을 겁니다.”

지도는 목적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게 명확하고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더 이상의 정보를 찾아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서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백규진 셀장은 말했다. 시대에 따라 지도가 형태를 달리하면 박물관에서 자료를 소장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할 텐데, 그가 상상하는 박물관에서의 지도의 모습을 물었다.

“3차원 데이터를 다룰 수 있다면 어떨까요? 2008년 처음 전국을 찍기 시작했을 당시 윤중로의 벚꽃이 어땠는지를 단순히 터치스크린을 통해 넘겨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서 2008년의 그 길을 산책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지도와 가장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휴대폰은 항상 위치정보를 알려주고, 차를 타면 네비게이션이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모든 정보가 위치정보와 연결되어 있다. 일상에서 내가 지도를 참조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지도는 우리 생활 전반에 스며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행동양식, 이동경로, 취향, 생활방식 등도 모두 지도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저장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지도는 더욱 중요해지고, 그만큼 더욱 복잡하게 설계될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정보만을 괴리함 없이 제공받게 될 것이며 우리의 생활양식은 차곡차곡 기록될 것이다.
지도. 이보다 완벽한 민속의 기록이 또 있을까.

백규진
본래 길치인 자신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백규진. 현재 다음카카오 로컬지도팀에서 로드뷰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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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홍승재 댓글:

    정말로 어려운 일을 하십니다 좋은 결과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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