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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즐거움 | 구슬치기

정교한 손놀림의 미학, 구슬치기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동네의 골목이나 공터에 아이들이 모여 구슬치기가 한창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져서 집에 돌아갈 시간에는 그날의 승패가 결정되었다. 승자의 호주머니는 그날의 전리품인 구슬로 불룩해지고, 세상을 다 얻은 양 위풍당당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그럭절그럭 소리가 났다. 패자의 경우 마음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일 다시 도전할 기회는 오는 법! 그날의 결정적 실수를 복기하며 괜히 빈손가락으로 구슬을 튕기는 시늉을 하며 밤잠을 설쳤다.

낯선 아이의 진귀한 구슬에 전의를 불태우다
구슬치기는 사실 일 년 내내 할 수 있는 놀이이지만, 음력 정월에서 2월 경의 구슬치기는 특별했다. 동네아이들뿐 아니라 친척집에 놀러온 다른 동네아이들이 참여하면서 판이 커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낯선 아이와의 대결은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맨날 보던 구슬이 아닌 진귀하고 싱싱한 구슬들을 따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공기놀이가 여자아이들의 놀이였다면 구슬치기는 남자아이들의 놀이였지만, 간혹 여자아이 중에서도 숨은 고수가 있어서 우습게 여기고 놀이에 끼워주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구슬치기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놀이라니요?
혹자는 구슬치기가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도입된 놀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구슬치기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돌로 상대방을 돌을 맞혀 따내는 놀이다. 이런 놀이는 상고시대부터 있었을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기본적 놀이 방식에 시대적, 지역적 특수성이 가미되면서 점차 국가적, 민족적 놀이로 발전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빼땅끄Pétanque가 그 대표적 예이고, 올림픽 종목으로 발전한 컬링Curling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구슬치기의 일종이었다.

『동국세시기』에는 땅에 구멍을 만들고 편을 갈라 어른들은 돈을, 아이들은 사금파리를 던져 구멍에 넣는 놀이가 소개되어 있다.1) 돈이나 사금파리 대신 구슬을 던진다면 구슬치기 중 ‘봄들기’라는 놀이가 된다. 독자 중에는 땅에 신발뒤꿈치를 대고 빙빙 돌려 구덩이를 판 후 거기에 구슬을 던져 넣으며 놀던 것을 기억할 텐데 바로 그 놀이이다. 그러니 구슬치기의 일제강점기설은 유리구슬 때문에 생긴 오류일 터이다.2)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억하는 구슬은 십중팔구 유리구슬이고, 이 유리구슬이 193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구슬치기가 꼭 유리구슬을 사용해야만 할 수 있는 놀이는 아니다. 손쉽게 던질 수 있는 작고 동그란 물체면 구슬치기가 가능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구슬치기의 도구는 조약돌 혹은 도토리나 상수리 열매였겠지만, 찰흙을 빚어 딱딱하게 굳힌 구슬이나 이것을 가마에 구워 만든 사기구슬도 있었다.

구슬에는 나름의 서열이 있었다
구슬의 재료야 어떻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슬에는 특별히 애착이 가는 구슬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애착의 정도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다. 유리구슬의 경우 안쪽에 무늬로 박힌 색유리의 정교한 모양으로 선호도가 갈리기도 했지만 실전에서 행운을 안겨준 구슬이 가장 아끼는 구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잃어도 되는 구슬과 절대 사수해야 할 구슬이 구별되었고, 이런 구슬들로 등판의 순서가 정해진다. 아무래도 가장 아끼는 구슬은 가장 나중에 등판하는데, 이 구슬을 잃었을 때는 마음의 쓰라린 정도가 곱절이었다.

정교하고 복잡했던 구슬치기의 방법들
구슬치기의 놀이 방법도 인원수나 구슬의 개수에 따라 다양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보편적인 구슬치기는 ‘알까기’ 혹은 ‘딴치기’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서너 명 정도가 모여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뒤 순서대로 유리한 위치에 자신의 구슬을 내려놓는다. 우선순위부터 구슬을 던져서 상대방의 구슬을 맞히는데, 맞히면 그 구슬을 따는 동시에 자신의 순서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맞히지 못하면 자기 구슬이 멈춘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며, 기회가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 만약 상대방의 구슬을 맞히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다음 차례에 대비하여 안전하고 유리한 위치에 구슬을 던져두는 등 나름의 전략도 필요하다.

참가 인원에 비해 구슬이 많지 않을 때는 ‘봄들기’ 혹은 ‘꼴랑치기’라는 놀이를 하였다. 마당이나 공터에 일정한 간격으로 6군데 정도의 구멍을 판다. 일단 뾰족한 돌이나 꼬챙이로 땅에 구멍을 낸 다음 신발 뒤꿈치를 구멍에 대고 힘주어 몇 바퀴 돌려 지름 20cm 정도의 구덩이를 만든다. 이 구덩이 중 중심이 되는 것을 봄 또는 집이라고 부른다. 출발선에서 구슬을 던져 구멍에 가까운 사람부터 차례로 순번을 정하고, 순서대로 구멍에 구슬을 넣어서 모두 통과하면 상대에게 구슬을 한 개씩 받는다. 실패하면 다음 순번으로 넘어가고, 다시 차례가 왔을 때 실패한 구멍에서 출발한다. ‘맞히기’라는 방법도 있어서 다른 사람의 구슬을 맞히면 구멍에 넣은 것과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한 명이라도 구멍을 모두 통과하면 다시 출발선에서 놀이를 새로 시작한다.

인원수와 구슬이 많을 때는 주로 ‘세모삼각형치기’를 했다. 이 놀이 방법은 땅에 한 변이 25cm 쯤 되는 정삼각형을 그리고, 4~5m 거리가 떨어진 곳에 던지는 선을 그린다. 참가하려는 아이는 2~3개씩 자신의 구슬을 삼각형선 안에 넣고, 넣지 않으면 그 판은 쉬게 된다. 순번은 삼각형 쪽에서 던지는 선 쪽으로 구슬을 던져 가까운 순서대로 정한다. 던지는 구슬은 ‘엄지구슬’이라고 부르며, 이 엄지구슬을 차례대로 던져 삼각형 안의 구슬을 맞히는데 한 개라도 구슬이 선 밖으로 나오면 따고, 계속 순서를 이어간다. 만약 구슬을 따지 못하면 엄지구슬이 멈춘 자리에 그냥 놓아두고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 상대방이 자신의 엄지구슬을 맞힌 경우에는 그 판에서 탈락되며 이를 ‘죽는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엄지구슬이 삼각형 안에 들어가서 멈추면 지금껏 딴 구슬을 되돌려주고 죽어야 하는데, 이를 ‘토하기’라고 한다. 이외에 ‘벽치기’라고 해서 벽에 대고 구슬을 떨어 뜨려 다른 사람의 구슬을 맞히거나, 누구의 구슬이 가장 멀리 가서 멈추는가에 따라 상대방의 구슬을 따는 방법도 있다.

물론 구슬을 가지고 홀짝, 쌈치기 등의 놀이를 하기도 했지만 정식 구슬치기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놀이는 구슬이 아니라 동전으로 하는 것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구슬놀이의 기본은 자기의 구슬로 남의 구슬을 쳐서 따내는 것이고 어찌 보면 이 경우에만 ‘구슬치기’라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아동놀이로서 구슬치기의 교육적 가치
아동용 놀이교재에 따르면 구슬치기는 조준능력, 공간지각력, 상황판단력을 배양할 뿐만 아니라 손에 대한 감각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하긴 구슬치기는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하여야 하며, 놀이 공간을 잘 파악하고 전략을 세워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구슬을 멀리 혹은 가까이 보낼 때, 상대방의 구슬을 겨눌 때와 튕겨낼 때 등 상황에 따라 손을 능숙하게 사용하여야 하므로 위와 같은 분석은 틀림없을 것이다. 요즘도 문방구에서 구슬을 팔기는 한다. 하지만 ‘추억의’라는 수식어가 붙고, 실제로도 놀이의 용도보다는 주로 어항이나 베란다의 화분을 꾸미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구슬치기의 유구한 역사나 아동 놀이로서의 교육적 효과를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그런 장식용 구슬을 가지고 나가 놀이 도구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시 골목이나 마당, 공터에서 구슬치기하는 아이들의 흥겨운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대해본다.

1) 홍석모, 『동국세시기』 상원조(上元條)
2) ‘다마’, ‘으찌’, ‘쌈’ 등의 용어도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구슬치기가 성행했다는 증거이지 유래까지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글 | 김준기_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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