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격식과 실용을 잇다,
요선철릭腰線帖裏

글 윤경희(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요선철릭(민속20937)

시대를 입고 염원을 품다: 전통 포袍류 복식, 철릭帖裏
박물관 전시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전통 복식은 단순히 옛사람들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 벌의 옷 안에는 당대의 직물 공예 기술과 일상의 양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포로 착용한 ‘철릭’은 착용자의 안녕을 바라는 일상적 염원이 담긴 복식이라 할 수 있다.

철릭은 문헌과 시대에 따라 첩리帖裏, 帖裡, 천익天翼 등 다양한 한자로 기록되었다. 고려가요 〈정석가鄭石歌〉를 비롯해 중국의 『삼재도회三才圖會』, 『조선왕조실록』 등 동아시아 문헌 전반에서 그 착용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철릭은 왕과 문무백관의 융복*戎服 및 군복軍服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사대부부터 군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착용한 대표적인 포류 복식이다.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세상에 드러난 요선철릭腰線帖裏
철릭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희귀한 형태가 바로 허리에 선線 장식을 더한 요선철릭이다. 1997년 11월, 경기도 양평의 변수邊脩, 1447~1524 묘에서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온 세 점의 요선철릭은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출토 복식 중 유일한 요선철릭이라는 점에서 복식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세 점의 요선철릭을 포함한 변수 묘 출토 유물 72점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에서 주기적으로 교체되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철릭의 가장 큰 조형적 특징은 상의上衣와 치마 형태의 하의下衣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중 요선철릭은 허리 부위에 가로 방향의 선 장식을 더한 옷으로, 문헌에서는 요선腰線·변선辯線·변선오辯線襖·변선오자辯線襖子·요선오자腰線襖子 등으로 기록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에 전시된 요선철릭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에 전시된 요선철릭

변수 묘 출토 요선철릭(민속20937)은 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겉감은 화려한 연화만초문단蓮花蔓草紋緞, 안감은 면주綿紬를 사용하였다. 상의와 치마는 약 1:1의 조화로운 비율을 이루며, 소매는 배래선**이 완만하게 흐르다 소매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요선철릭(민속20937)의 단연 으뜸가는 특징은 허리를 감싸는 22줄의 요선 장식이다. 견사絹紗를 약 10mm 굵기로 강하게 꼰 후 촘촘히 이어 붙인 이 장식은 실의 꼬임이 일정하고 섬세하여 마치 땋은 선처럼 정교한 솜씨를 보여준다. 실을 직접 꼬아 요선을 표현한 철릭으로는 이 유물이 유일하여 희소성이 더욱 돋보인다. 이러한 요선 구조는 수직으로 늘어지는 포의 흐름 속에서 가로 방향의 정돈된 시각적 균형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말을 타거나 앉아 있을 때 허리를 단단하게 지지해 옷의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실용적인 역할도 겸했다.

요선 아래로 풍성하게 퍼지는 치마 주름 역시 조형적 완성도를 더해주는 핵심 요소이다. 총 7폭의 직물을 이은 치마에는 0.2~0.3cm 간격의 매우 정교한 주름을 잡아 입체감을 살렸다. 주목할 점은 옷을 여몄을 때 안쪽으로 포개어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안자락에는 주름을 생략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러 겹 포개어지는 허리 옆선에 불필요한 부피감이 생기거나 들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철릭이 지닌 또 하나의 구조적 반전은 ‘소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함께 출토된 다른 두 점의 요선철릭(민속20938, 민속20939)은 소매가 손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인데, 긴박한 상황에서 소매를 떼어낼 수 있는 ‘탈부착식 구조’로 제작되었다. 평소에는 단정한 매듭단추로 소매를 연결해 외출복으로 입다가, 국난과 같은 비상시에는 소매를 분리하여 활동성이 뛰어난 군복으로 즉시 전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벌의 옷으로 격식 있는 차림과 현장 중심의 실용복을 넘나든 셈이다.

요선철릭(민속20939)

옷 한 땀에 담긴 착용자의 안녕과 염원
해인사 복장유물로 전해지는 고려 후기 요선철릭의 치마 안자락에서 어린 소년의 장수를 기원하는 발원문이 발견되었듯, 옛사람들에게 옷을 짓는 일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차원을 넘어 착용자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 일이었다. 수십 줄의 요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매만져 정성스레 박아내고, 수많은 치마 주름을 균일하게 잡아내기까지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유물에 스며 있는 섬세한 바느질 자국과 바르게 정돈된 허리선은, 옷을 입는 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바랐던 옷을 지은 이의 염원이 깊게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겹겹의 주름 사이로 일상을 읽다
박물관의 유리장 안에 전시된 유물은 언뜻 고요하고 정지된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철릭의 정교한 주름 하나하나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면, 그 주름 사이로 말발굽 소리와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달리던 당대 사람들의 역동적인 숨결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전통 복식에는 삶의 필요와 환경, 그리고 상황에 맞춰 옷을 끊임없이 변형하고 발전시킬 줄 알았던 우리 선조들의 유연한 감각이 흐르고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에게 전해진 요선철릭처럼, 오늘 우리가 입는 옷 역시 먼 훗날 이 시대를 살았던 우리 삶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융복: 비상시나 전쟁 시, 왕 행차에 시위할 때, 외국에 사신으로 파견할 때 착용했던 옷

**배래선: 한복 소매 아래쪽에 물고기의 배처럼 불룩하게 둥글린 부분을 나타내는 선

민속소식 제318호  (202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