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놀이

일제강점기, 사라질 뻔한 택견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되살아나다

글 박효순(한국택견협회 사무총장, 국가무형유산 택견 전승교육사)

택견을 지도하는 모습

한 민족의 몸짓에는 그 민족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발을 굴러 상대의 균형을 흩트리고, 유연한 몸놀림으로 공격을 흘려보내며, 격렬한 겨루기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우리 고유의 무예 택견이 그렇다. 부드럽지만 날카롭고, 놀이 같지만 실전적인 택견은 한때 이 땅에서 전승의 맥이 끊길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택견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면서 세계인이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택견의 여정을 돌아보는 일은 한 무예의 역사를 기리는 것을 넘어, 우리 민속문화가 지닌 힘과 그것을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억압의 시대, 우리 문화와 놀이 그리고 무예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이후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말과 이름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문화와 전통 역시 위축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택견 역시 전승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조선 후기의 놀이 풍경을 담은 유숙의 〈대쾌도〉에서는 택견으로 추정되는 겨루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택견은 마을과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즐기던 놀이이면서 동시에 몸을 단련하고 실력을 겨루는 무예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스튜어트 컬린Stuart Culin이 1895년 펴낸 『조선의 놀이Korean Games』에도 ‘태껸하기’가 소개되어 있어 당시 우리 사회에서 택견이 놀이의 하나로 행해졌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전통문화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 택견의 공개적인 전승과 활동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유도와 가라테, 검도 등 일본에서 들어온 무도는 급·단 제도와 조직을 갖추고 통일된 규칙 아래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또, 학교 체육과 경찰 훈련 등을 통해 확산되며 근대적인 체계를 갖추어 갔다. 택견은 처음부터 하나의 유파나 통일된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전승된 무예가 아니었다. 전통적인 지역 구분에 따라 종로 일대의 윗대와 왕십리 일대의 아랫대로 나뉘어 전승되었으며,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제 방식으로 기술이 이어졌다. 명절이나 마을 잔치에서 벌어지는 놀이의 성격도 강했다. 택견은 발기술을 중심으로 하면서 손기술과 잡기, 씨름과 비슷한 유술* 동작까지 함께 사용한다. 상대를 크게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견주기는 택견의 중요한 특징이다.

*유술: 맨손으로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메어쳐 공격하는 방어 무술

〈대쾌도〉, 유숙, 1846년,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옛 택견의 견주기 모습

조선 후기의 풍속화에서 확인되는 택견의 모습은 근대의 사진 자료에서도 이어진다. 사진 속 아이들은 서로 마주 서서 택견의 ‘견주기’를 하고 있다. 견주기는 두 사람이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며 실력을 겨루는 택견의 겨루기 방식이다. 주변에서 다른 아이들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에서는 택견이 전문적인 무예 수련에만 머물지 않고, 아이들도 함께 즐기는 놀이였음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공동체적이고 놀이적인 성격 속에서 전승되어 온 택견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변화와 전통문화의 위축 속에서 전승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사람의 몸에 새겨진 기억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택견이 놀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소수의 전승자들은 동작 하나하나를 몸으로 기억하며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 구한말의 박털백, 임호, 박무경, 신재영, 김홍식 선생을 비롯해 초대 예능보유자인 송덕기 선생(1893~1987)과 신한승 선생(1928~1987) 등이 그 맥을 이어갔다. 택견의 전승은 단순히 신체 기술을 이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공동체의 문화와 정서가 함께 담겨 있었다. 어린이들의 놀이처럼 향유되던 택견에도 우리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적 기억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할 소중한 유산이었다.

1890년대에 아서 노블 선교사에 의해 촬영된 ‘택견하는 아이들 사진’,
『사진으로 본 백년 전의 한국』(김원모·정성길, 1986) 수록

광복 이후, 다시 찾은 택견
광복 이후에도 택견의 시련은 바로 끝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공개적으로 전승되지 못하면서 그 전통은 크게 위축되어 있었고, 서구식 스포츠가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계 무도 역시 대중적인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택견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송덕기·신한승 선생을 중심으로 한 전승자와 연구자들은 택견을 포기하지 않았다. 흩어진 기억과 기록을 모으고 실제 동작을 확인하면서 택견의 모습을 하나씩 복원해 나갔다. 택견은 단순히 기술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르침과 대화를 통해 동작과 정신이 전해졌고, 이러한 전승자들의 노력이 오늘날 택견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은 1983년 국가무형유산 제76호 지정으로 이어졌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택견은 1983년 6월 1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를 통해 택견을 보존하고 전승할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후 1985년 제1회 전국 택견 경기대회를 시작으로 경기 규칙이 정비되고, 대학가와 전국의 택견전수관을 통해 보급이 확대되면서 택견은 서서히 사람들의 일상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송덕기·신한승 선생
택견 수련에 앞서 택견복(중의적삼)을 갖춰 입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K-민속놀이의 저력, 세계가 인정하다
택견의 복원과 전승을 위한 노력은 마침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2011년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택견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유네스코는 택견을 한국의 전통 무예로 소개하면서 유연하고 율동적인 움직임, 발과 손을 함께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 공동체의 통합과 세대 간 전승을 주요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숙련된 수련자가 상대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도 물러나게 하는 절제와 배려의 가치도 택견의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택견은 단순한 겨루기 기술을 넘어 공동체의 삶과 정서를 담은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택견은 격렬한 승부의 기술이면서도 상대를 크게 다치게 하지 않는 절제된 무예이며, 놀이와 겨루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드러운 몸짓 속에 강함을 담아내는 택견의 움직임은 우리 전통 무예가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되살아난 유산, 우리가 이어갈 책임
택견의 역사는 우리에게 문화유산을 어떻게 지켜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문화유산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다. 택견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택견을 몸으로 기억하고 지켜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에는 초대 예능보유자 송덕기·신한승 선생을 비롯한 전승자와 연구자들이 흩어진 기억과 기록을 모아 택견을 복원하고 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제 택견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원형을 보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택견을 직접 배우고 즐기며, 우리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화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택견
택견은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 전승 기반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택견을 기억하고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났고, 오늘날에는 인류가 함께 지켜가야 할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택견은 지금도 누군가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동작을 배우고, 그 동작을 다시 다음 사람에게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택견의 전통은 오늘도 이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소중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일이다. 택견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직접 배우고 즐기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택견의 계승일 것이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택견
택견 전승교육사가 후학들에게 택견을 지도하는 모습

민속소식 제318호  (202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