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놀이

분단을 넘어 이어진 놀이
-남과 북, 아이들의 놀이는 얼마나 닮았을까-

글 이도건(서울사근초등학교 교사)

돌가위보놀이

“돌, 가위, 보!” 아이들이 주먹을 내밀며 까르르 웃는다. 어제까지 하던 가위바위보와 다른 것은 ‘바위’가 ‘돌’이 되어 맨 앞으로 나온 것뿐이다. 이 이름은 북녘 아이들이 쓰는 말이다. 분단 80년, 남과 북은 말도 정서도 멀어졌다는데 아이들의 놀이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남북 아이들의 놀이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름이 조금 다르거나 규칙이 살짝 어긋날 뿐, 손과 몸이 기억하는 놀이의 알맹이는 분단의 시간을 건너 그대로 살아남았다. 남과 북에서 여전히 함께 뛰노는 몇 가지 놀이를 들여다본다.

돌가위보놀이: 가장 작은 놀이, 모든 놀이의 첫 문장
북녘 아이들이 하는 ‘돌가위보놀이’와 우리의 가위바위보 사이에는 낱말 하나와 순서 하나의 차이밖에 없다. ‘바위’가 ‘돌’로 불리고 외치는 차례가 ‘돌-가위-보’일 뿐 손 모양도, 돌이 가위를 이기고 가위가 보를 이기고 보가 다시 돌을 이기는 순환 구조도 완전히 같다. 셋이 서로 물고 물리는 이 구조에는 절대 강자가 없다. 무엇을 내도 이길 수 있고 질 수 있다는 공평함이 이 작은 놀이를 편 가르고 차례를 정하며 술래를 뽑는 모든 놀이의 첫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 첫 문장이 남북에서 같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아이들과 “돌!” 하고 낯선 첫 음절로 시작해 보면 처음엔 그 한 글자에 웃음이 터지지만 놀이는 반박자도 멈추지 않는다. “이름만 다르지 그냥 가위바위보네”라며 손이 먼저 나가고, 설명이 필요 없으니 북녘 친구와 만나도 곧장 함께할 수 있겠다고들 한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은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가 남북 아이들의 손안에 이미 하나 들어 있다는 뜻이다.

딱지치기: 이름까지 분단을 넘어 이어진 놀이
북녘에서도 이 놀이는 ‘딱지치기’라는 이름 그대로 불리고, ‘땅지치기’ ‘떼기치기’ 같은 지방 이름도 전해진다. 종이 두 장을 어긋나게 접어 네모 딱지를 만들고, 바닥에 놓인 상대 딱지를 제 딱지로 내리쳐 뒤집으면 따먹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딱지치기는 구슬치기, 비석치기와 함께 따먹기 놀이의 대표격이다. 아이들은 딱지 한 장에 일희일비하며 소유와 상실을 처음 배운다. 요령도 은근히 까다롭다. 팔이 아니라 손목을 꺾어 바닥을 스치듯 때려야 바람이 일어 상대 딱지가 들린다. 이 대목은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딱지가 뒤집힐 때마다 “한 장 더!”를 외치며 팔이 아프도록 바닥을 때렸다. 그 탄성은 북녘의 골목에서도 비슷하게 터질 것이다. 규칙과 이름, 몸의 기술이 고스란히 분단의 시간을 건너 이어져 온 셈이다.

딱지치기

말꼬리잇기: 말은 갈라져도 말놀이는 하나
남북의 언어 이질화는 통일 논의에서 늘 첫손에 꼽히는 걱정거리다. 그런데 정작 말로 하는 놀이는 갈라지지 않았다. 북녘의 ‘말꼬리잇기’는 우리의 끝말잇기다. 앞 단어의 마지막 글자로 새 단어를 이어 가는 규칙이 완전히 같고, ‘말의 꼬리를 잇는다’는 이름은 놀이의 생김새를 더 잘 담고 있다. 차이는 놀이가 아니라 말에서 생긴다. 북에서는 두음법칙을 쓰지 않아 ‘리유’ ‘락원’처럼 ‘ㄹ’로 시작하는 낱말이 흔하다. 남북의 아이들이 마주 앉으면 남쪽 아이가 ‘리’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히는 사이 북쪽 아이는 낱말을 줄줄이 꺼낼 것이다. 물론 남쪽 아이도 “우리는 ‘리유’를 ‘이유’, ‘락원’을 ‘낙원’이라고 해”라며 자기 방식으로 받아칠지 모른다. 같은 놀이가 서로의 말이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가장 재미있게 드러내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처음에는 낯설어 멈칫하던 낱말도 몇 차례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다음 말을 잇는 실마리가 된다. 말은 달라졌어도 말의 꼬리를 이어 가는 즐거움만은 남과 북이 여전히 함께 간직하고 있다.

비행기띄우기: 같은 하늘로 접어 올린 종이 한 장
북녘의 ‘비행기띄우기’는 종이비행기 날리기다. 종이를 접는 방법도, 높이 날리기·멀리 날리기·오래 날리기라는 세 가지 겨루기 방식도 우리와 같다. 멀리 날리기는 힘과 각도의 놀이고, 오래 날리기는 균형과 기다림의 놀이다. 아이들은 종목에 따라 접는 법을 달리했고, 날개 끝을 살짝 위로 접으면 오래 뜬다는 비법도 주고받았다. 힘껏 던진 비행기보다 가만히 놓아 보내듯 띄운 것이 더 멀리 간다는 이치도 몇 번 떨어뜨려 보고서야 스스로 알아냈다. “살살 던져야 멀리 가는 게 신기하다”던 아이의 말처럼 말이다. 종이 한 장이면 되는 이 놀이는 형편과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나 가능했고, 그래서 남북 어디에서나 살아남았을 것이다. 남과 북의 아이들이 접은 비행기는 같은 포물선을 그리며 난다. 종이비행기가 뜨는 하늘에는 애초에 금이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행기띄우기

닭싸움: “우리처럼 사람이 하는 게 훨씬 낫다”
아이들은 한 발을 접어 들고 무릎으로 상대를 밀치는 닭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북녘의 ‘닭싸움놀이’는 이것이 아니라 진짜 수탉을 맞붙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전통 투계의 절차가 남아 있다. 남쪽에서는 투계가 사실상 사라지고 사람의 놀이만 남았지만, 북녘에는 동물의 싸움이 민속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아이들은 무릎을 맞대고 깔깔대다가도 진짜 동물을 맞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표정이 달라진다. “닭 입장에서는 좀 불편했을 것 같다. 우리처럼 사람이 하는 게 훨씬 낫다”거나, “옛날에는 동물이 싸우는 것도 축제였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논밭에 불을 놓던 쥐불놀이에도 “지금 초등학생이 불을 갖고 논다고 하면 큰일 날 텐데, 그때는 놀이였다니 시대가 다르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놀이도 사회의 산물이어서 시대와 함께 몸을 바꾼다. 위험과 고통을 덜어 내며 살아남는 것이 놀이가 오늘을 건너는 방식일 것이다.
낯선 것이니 서로 밀어낼 것이라는 예상은 놀이 앞에서는 자주 빗나간다. 함께하기 어려운 놀이가 있다면 그것은 ‘북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불이나 동물처럼 오늘의 잣대와 부딪치거나 재료와 환경이 달라져 그대로 재현하기 어려운 놀이일 뿐이다. 대부분의 놀이는 이름이 조금 다르거나 규칙이 살짝 어긋날 뿐, 손과 몸이 기억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아도 함께 뛰고, 접고, 던지고, 말을 이을 수 있다. 놀이는 분단의 시간을 건너 살아남은 남북 공동문화의 가장 깊은 지층이다.

닭싸움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돌가위보’로 한 판을 시작하고, 서로 다른 낱말로 말꼬리를 잇고, 종이비행기를 같은 하늘로 날려 보내면 된다. 낯선 이름과 규칙에 잠시 멈칫하더라도 손과 몸은 금세 상대의 뜻을 알아챌 것이다. 놀이를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언젠가 남과 북의 아이들이 마주 앉는 날, 말보다 먼저 서로의 손을 읽게 될 것이다. 돌과 가위와 보 사이에는 분단의 경계가 없다. 주먹을 쥐고 셋을 세는 순간만큼은 분단의 80년도 아이들의 웃음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민속소식 제317호  (202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