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 이야기
한국 추석과 중국 중추절은 어떻게 다를까?
글 정연학(비교민속학회장)

추석 성묘(2013)
추석, 국가무형유산이 되다
국가유산청은 2023년 12월 18일, 설과 대보름·한식·단오·추석·동지 등 5대 대표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공식 지정하였다.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중국은 한국의 전통문화 20건을 조선족 관련 문화유산으로 자국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중 한복(2008), 아리랑(2011), 씨름(2011), 추석(2014), 김치(2016), 윷놀이(2021) 등 6건은 한국보다 먼저 중국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한국에서도 추석의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에 대한 조사가 2021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긍정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그런데 무형유산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추석 이외의 주요 명절에 대한 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23년 설과 대보름·한식·단오·동지에 관한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 조사가 추가로 이루어졌고, 최종적으로 이들 5대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5대 명절 중 추석은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과 달리 매우 중요한 명절로 여긴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세시풍속과 명절이 자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기며, 2005년 11월 25일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등재되었을 때 한국이 자신들의 고유 풍속인 단오를 빼앗아 갔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이런 중국 분위기에서 일부 학자들이 중국 중추절의 기원을 신라로 본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그들은 장쑤성江蘇省 ·산둥성 山東省 ·허베이성河北省 ·산시성山西省 ·산시성陝西省 ·허난성河南省 ·안후이성安徽省 등 중국 주요 한족 지역에서 9년간(838~847) 생활한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 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기록을 근거로 중추절이 신라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엔닌의 기록에 앞서 신라 추석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의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재위 24~57) 때 이미 등장한다. 추석을 ‘가배嘉俳’라고 하였으며, 그날 길쌈[績麻] 내기에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놀이[歌舞百戲]를 즐겼다. 또한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하기를 “회소會蘇, 회소”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운치가 있어 후세 사람이 그 소리를 본떠 노래를 짓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위 기록은 유리왕 9년(32년) 추석이 하나의 명절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엔닌이 기록한 적산 법화원 신라 유민의 음식 차림과 음주·가무 풍속은 신라의 풍속이 800년 동안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삼국사기』의 유리왕 추석 기원설은 조선 시대 민주면(閔周冕, 1629~1670)의 『동경잡기東京雜記』를 비롯한 조선 후기 세시기에서도 그대로 인용되며 정설로 자리 잡았다.
한편, 16세기 초반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길쌈 내기는 경주 지역에서 여전히 지속하고 있었으며, 20세기 초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는 경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두레 길쌈이라는 적마績麻 작업 제도가 전승된다고 하였다. 또한, 이필영은 충남 연기, 전북 정읍, 전남 곡성, 경남 지역에서도 마을의 부녀자들이 뜰에 모여 편을 갈라 7월 백중부터 길쌈을 하고, 추석이 되면 길쌈의 양을 심사해 진 편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달 밝은 추석 밤에 위로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처럼 음력 7월부터 8월 15일 추석에 이르는 기간의 공동 적마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길쌈놀이의 기본 형태는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고 보여진다. 다만, 현재의 추석 모습과 다르다 보니 이런 사실을 아는 이도 적다.
추석, 국가무형유산이 되다
국가유산청은 2023년 12월 18일, 설과 대보름·한식·단오·추석·동지 등 5대 대표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공식 지정하였다.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중국은 한국의 전통문화 20건을 조선족 관련 문화유산으로 자국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중 한복(2008), 아리랑(2011), 씨름(2011), 추석(2014), 김치(2016), 윷놀이(2021) 등 6건은 한국보다 먼저 중국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한국에서도 추석의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에 대한 조사가 2021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긍정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그런데 무형유산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추석 이외의 주요 명절에 대한 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23년 설과 대보름·한식·단오·동지에 관한 국가무형유산 지정 가치 조사가 추가로 이루어졌고, 최종적으로 이들 5대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5대 명절 중 추석은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과 달리 매우 중요한 명절로 여긴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세시풍속과 명절이 자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기며, 2005년 11월 25일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등재되었을 때 한국이 자신들의 고유 풍속인 단오를 빼앗아 갔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이런 중국 분위기에서 일부 학자들이 중국 중추절의 기원을 신라로 본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그들은 장쑤성江蘇省 ·산둥성 山東省 ·허베이성河北省 ·산시성山西省 ·산시성陝西省 ·허난성河南省 ·안후이성安徽省 등 중국 주요 한족 지역에서 9년간(838~847) 생활한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 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기록을 근거로 중추절이 신라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엔닌의 기록에 앞서 신라 추석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의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재위 24~57) 때 이미 등장한다. 추석을 ‘가배嘉俳’라고 하였으며, 그날 길쌈[績麻] 내기에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놀이[歌舞百戲]를 즐겼다. 또한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하기를 “회소會蘇, 회소”라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운치가 있어 후세 사람이 그 소리를 본떠 노래를 짓고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다. 위 기록은 유리왕 9년(32년) 추석이 하나의 명절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엔닌이 기록한 적산 법화원 신라 유민의 음식 차림과 음주·가무 풍속은 신라의 풍속이 800년 동안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삼국사기』의 유리왕 추석 기원설은 조선 시대 민주면(閔周冕, 1629~1670)의 『동경잡기東京雜記』를 비롯한 조선 후기 세시기에서도 그대로 인용되며 정설로 자리 잡았다.
한편, 16세기 초반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길쌈 내기는 경주 지역에서 여전히 지속하고 있었으며, 20세기 초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는 경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두레 길쌈이라는 적마績麻 작업 제도가 전승된다고 하였다. 또한, 이필영은 충남 연기, 전북 정읍, 전남 곡성, 경남 지역에서도 마을의 부녀자들이 뜰에 모여 편을 갈라 7월 백중부터 길쌈을 하고, 추석이 되면 길쌈의 양을 심사해 진 편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달 밝은 추석 밤에 위로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처럼 음력 7월부터 8월 15일 추석에 이르는 기간의 공동 적마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길쌈놀이의 기본 형태는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고 보여진다. 다만, 현재의 추석 모습과 다르다 보니 이런 사실을 아는 이도 적다.
한국은 조상, 중국은 달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국과 중국 모두 음력 8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한국은 조상, 중국은 달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의 대표 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 등에서는 중추절에 조상 제사나 성묘에 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즉, 조상 의례는 한국만의 독창적인 추석 풍속이며, 현재도 귀성길 교통이 혼잡함에도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인간의 날’이라 하여 성묘를 하지 않는다. 추석 차례의 기원은 가락국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추석에 수로왕묘首露王廟 사당에서 9대손까지 풍성하고 정결한 제사 음식을 올렸다고 한다. 이익(1681~1763)과 이규경(1788~?)도 추석 성묘가 수로왕 능묘陵墓 제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한국은 조상, 중국은 달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국과 중국 모두 음력 8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한국은 조상, 중국은 달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의 대표 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 등에서는 중추절에 조상 제사나 성묘에 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즉, 조상 의례는 한국만의 독창적인 추석 풍속이며, 현재도 귀성길 교통이 혼잡함에도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중추절을 ‘인간의 날’이라 하여 성묘를 하지 않는다. 추석 차례의 기원은 가락국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추석에 수로왕묘首露王廟 사당에서 9대손까지 풍성하고 정결한 제사 음식을 올렸다고 한다. 이익(1681~1763)과 이규경(1788~?)도 추석 성묘가 수로왕 능묘陵墓 제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중국에서 달에 대한 제사는 『예기禮記』에 등장할 정도로 그 기원이 오래되었으며, 중국 베이징의 월단月壇은 명나라 황제들이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민간의 중추절 달 제사는 송대에 시작되었지만 그 형식이 비교적 간략하고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 격식을 갖춘 달 제사는 명대에 시작하여 청대를 거쳐 1950년대까지 이어질 정도로 중추절의 중요한 풍속이었다. 달의 신격은 상아[姮娥, 月姑, 月亮娘娘]인데, 달을 인격화한 존재이자 월신月神 또는 달의 화신으로 숭배한다. 달 제사는 안마당(정원)에 제상을 설치하고, 그 위에 신상神像, 월병, 과일 등을 진설한 뒤 하늘의 보름달이 보이면 지낸다. 제상의 위쪽에는 향로, 촛대, 꽃병 등을 놓는데, 꽃병에는 옥토끼에게 바치는 콩毛豆 가지와 달의 계수나무를 상징하는 자홍색의 맨드라미를 각각 꽂는다. 제물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수박과 월병이며, 그밖에 석류, 배, 자몽을 쓴다. 과일 제물의 공통점은 달처럼 둥근 과일만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둥글게 모여 화목하게 결합한다[團圓]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에서 달에 대한 제사는 『예기禮記』에 등장할 정도로 그 기원이 오래되었으며, 중국 베이징의 월단月壇은 명나라 황제들이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민간의 중추절 달 제사는 송대에 시작되었지만 그 형식이 비교적 간략하고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 격식을 갖춘 달 제사는 명대에 시작하여 청대를 거쳐 1950년대까지 이어질 정도로 중추절의 중요한 풍속이었다. 달의 신격은 상아[姮娥, 月姑, 月亮娘娘]인데, 달을 인격화한 존재이자 월신月神 또는 달의 화신으로 숭배한다. 달 제사는 안마당(정원)에 제상을 설치하고, 그 위에 신상神像, 월병, 과일 등을 진설한 뒤 하늘의 보름달이 보이면 지낸다. 제상의 위쪽에는 향로, 촛대, 꽃병 등을 놓는데, 꽃병에는 옥토끼에게 바치는 콩毛豆 가지와 달의 계수나무를 상징하는 자홍색의 맨드라미를 각각 꽂는다. 제물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수박과 월병이며, 그밖에 석류, 배, 자몽을 쓴다. 과일 제물의 공통점은 달처럼 둥근 과일만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둥글게 모여 화목하게 결합한다[團圓]는 의미를 지닌다.

월병 포장지의 항아(상아)
한국의 송편과 중국의 월병은 제물이다
추석의 대표적인 절식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송편은 본래 조선 시대의 절기 음식이자 일상식으로, 추석뿐만 아니라 머슴날(음력 2월 1일), 삼짇날, 사월초파일, 단오, 유두, 가을, 겨울철 등 수시로 만들어 먹었다. 또한 사당이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병祭餠으로 쓰였으며, 임금이 하사품으로 송편을 내리기도 하였다. 다만 추석의 송편은 다른 날과 달리 그해 수확한 햅쌀로 빚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추석 무렵 수확한 올벼로 만든 송편이라는 의미에서 ‘오려송편’이라고 하였다. 1920~30년대에 송편이 추석의 절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나, 1970년대까지 쌀농사가 풍족하지 못했던 일부 도서 지역에서는 송편을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쌀농사가 거의 불가능했던 제주도에서도 1970년대 이후에야 송편을 ‘곤떡’ 즉 고운 떡이라 부르며 추석에만 먹었다. 이는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송편은 중국의 둥근 월병과 달리 반달 모양이다. 이에 대해 민속학자 나경수는 송편을, 속이 꽉 차고 알곡이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볍씨의 형상으로 보았다. 햅쌀 반죽을 둥글게 가다듬고 가운데 홈을 내어 그 안에 콩이나 팥 등의 곡물을 채운 뒤 다시 접어 빚는 송편의 제작 과정은, 곡물을 갈무리하는 볏섬(곡식 가마니)의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월병月餠을 먹지 않으면 중추절을 보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월병은 중국 중추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월병이라는 이름은 남송 때 처음 등장하지만, 민간에서 절식이자 제물로 자리 잡은 것은 명대이다. 월병은 선물용으로 주고받았으며, 둥근 달처럼 온 가족이 원만하고 단란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중추절에 먹는 월병을 ‘단원월병團圓月餠’이라고도 부른다. 월병은 지역에 따라 크기나 맛이 다른데, 생산 방식 역시 떡살 방식에서 기계화되어 대량생산 체제로 바뀌었다. 현재 북방 지역에서는 베이징 월병이, 남방 지역에서는 소주蘇州 월병이 유명하다. 오늘날 한국의 송편은 여전히 가정에서 직접 빚기도 하는 반면, 중국의 월병은 주로 전문 판매점에서 구입하여 선물용으로 소비한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한국의 송편과 중국의 월병은 제물이다
추석의 대표적인 절식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송편은 본래 조선 시대의 절기 음식이자 일상식으로, 추석뿐만 아니라 머슴날(음력 2월 1일), 삼짇날, 사월초파일, 단오, 유두, 가을, 겨울철 등 수시로 만들어 먹었다. 또한 사당이나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병祭餠으로 쓰였으며, 임금이 하사품으로 송편을 내리기도 하였다. 다만 추석의 송편은 다른 날과 달리 그해 수확한 햅쌀로 빚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추석 무렵 수확한 올벼로 만든 송편이라는 의미에서 ‘오려송편’이라고 하였다. 1920~30년대에 송편이 추석의 절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나, 1970년대까지 쌀농사가 풍족하지 못했던 일부 도서 지역에서는 송편을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쌀농사가 거의 불가능했던 제주도에서도 1970년대 이후에야 송편을 ‘곤떡’ 즉 고운 떡이라 부르며 추석에만 먹었다. 이는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송편은 중국의 둥근 월병과 달리 반달 모양이다. 이에 대해 민속학자 나경수는 송편을, 속이 꽉 차고 알곡이 크게 맺히기를 기대하는 주술적 심리에서 발원한 볍씨의 형상으로 보았다. 햅쌀 반죽을 둥글게 가다듬고 가운데 홈을 내어 그 안에 콩이나 팥 등의 곡물을 채운 뒤 다시 접어 빚는 송편의 제작 과정은, 곡물을 갈무리하는 볏섬(곡식 가마니)의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월병月餠을 먹지 않으면 중추절을 보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월병은 중국 중추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월병이라는 이름은 남송 때 처음 등장하지만, 민간에서 절식이자 제물로 자리 잡은 것은 명대이다. 월병은 선물용으로 주고받았으며, 둥근 달처럼 온 가족이 원만하고 단란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중추절에 먹는 월병을 ‘단원월병團圓月餠’이라고도 부른다. 월병은 지역에 따라 크기나 맛이 다른데, 생산 방식 역시 떡살 방식에서 기계화되어 대량생산 체제로 바뀌었다. 현재 북방 지역에서는 베이징 월병이, 남방 지역에서는 소주蘇州 월병이 유명하다. 오늘날 한국의 송편은 여전히 가정에서 직접 빚기도 하는 반면, 중국의 월병은 주로 전문 판매점에서 구입하여 선물용으로 소비한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속담처럼 추석은 8월 수확의 풍요를 맛보는 때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쓴 홍석모(洪錫謨, 1781~1857) 는 추석을 곡식이 이미 익었고 가을 농작물을 추수할 때가 멀지 않은 시기로, 닭을 잡고 술을 빚어 온 동네가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즐기는 명절이라 보았다. 『세시풍요歲時風謠』를 쓴 유만공(柳晩恭, 1793~?)은 농가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배(추석)만 같기를[無加無減似嘉俳] 바랐으며, 속담에도 그런 말[無加又無減 長如嘉俳日]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를 쓴 김매순(金邁淳, 1776~1840) 역시 추석에는 아무리 궁벽한 시골의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먹으며 안주나 과일도 분수에 넘치게 차리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 減也勿]’라는 말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면암勉菴 조운종(趙雲從, 1783~1820)도 추석을 한양에서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농가에서는 훨씬 더 소중히 여겼으며, 그 까닭을 햇곡식이 이미 무르익어 수확이 멀지 않은 데다가 가을 기운이 넉넉하고 풍요롭기 때문이라 보았다. 조선 후기 학자들 모두 한결같이 추석을 수확을 앞둔 풍요로운 시기로 바라본 것이다.
현재, 한국의 추석이 설과 함께 ‘2대 명절’로 꼽힌다면, 중국의 중추절은 춘절(설)·단오·청명(한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처럼 두 나라에서 추석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무게감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법정 공휴일만 보더라도 한국은 3일인 반면 중국은 1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중국 중추절의 1일 휴일 지정은 2008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그저 가족끼리 모여 월병을 나눠 먹는 날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추석 연휴에는 설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부모를 찾아가는 귀성 행렬로 대이동이 일어나 고속도로 정체가 일상적인 현상이 되지만, 중국의 중추절은 춘절과 달리 민족 대이동 수준의 귀성 행렬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한가위는 혈연의 화목을 도모하고,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정신이 깊이 깃든 명절이다. 해마다 민족 대이동으로 고속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음에도 많은 이들이 귀성길에 오르는 까닭 역시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명절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늘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고향의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속담처럼 추석은 8월 수확의 풍요를 맛보는 때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쓴 홍석모(洪錫謨, 1781~1857) 는 추석을 곡식이 이미 익었고 가을 농작물을 추수할 때가 멀지 않은 시기로, 닭을 잡고 술을 빚어 온 동네가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즐기는 명절이라 보았다. 『세시풍요歲時風謠』를 쓴 유만공(柳晩恭, 1793~?)은 농가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배(추석)만 같기를[無加無減似嘉俳] 바랐으며, 속담에도 그런 말[無加又無減 長如嘉俳日]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를 쓴 김매순(金邁淳, 1776~1840) 역시 추석에는 아무리 궁벽한 시골의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먹으며 안주나 과일도 분수에 넘치게 차리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 減也勿]’라는 말이 전해진다고 하였다. 면암勉菴 조운종(趙雲從, 1783~1820)도 추석을 한양에서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농가에서는 훨씬 더 소중히 여겼으며, 그 까닭을 햇곡식이 이미 무르익어 수확이 멀지 않은 데다가 가을 기운이 넉넉하고 풍요롭기 때문이라 보았다. 조선 후기 학자들 모두 한결같이 추석을 수확을 앞둔 풍요로운 시기로 바라본 것이다.
현재, 한국의 추석이 설과 함께 ‘2대 명절’로 꼽힌다면, 중국의 중추절은 춘절(설)·단오·청명(한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처럼 두 나라에서 추석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무게감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법정 공휴일만 보더라도 한국은 3일인 반면 중국은 1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중국 중추절의 1일 휴일 지정은 2008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그저 가족끼리 모여 월병을 나눠 먹는 날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추석 연휴에는 설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부모를 찾아가는 귀성 행렬로 대이동이 일어나 고속도로 정체가 일상적인 현상이 되지만, 중국의 중추절은 춘절과 달리 민족 대이동 수준의 귀성 행렬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한가위는 혈연의 화목을 도모하고,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정신이 깊이 깃든 명절이다. 해마다 민족 대이동으로 고속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음에도 많은 이들이 귀성길에 오르는 까닭 역시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명절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늘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고향의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민속소식 제317호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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