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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걸어갈 길

민속학은 과거 학문이 아니라
미래 학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민속박물관인 온양민속박물관을 이야기할 때 신탁근 상임고문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86년 제2대 관장으로 취임해 2004년 3대 관장에게 인계할 때까지 그는 민속유물의 수집과 정리, 박물관 운영까지 일인다역으로 국내 민속학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퇴직한 이후에도 여전히 온양민속박물관과 문화재청, 국립민속박물관, 지역 박물관 등을 오가며 유물 평가와 강의, 교육, 글쓰기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그를 만나보았다.

한국 박물관계를 이끈 선도적 존재
온양민속박물관 신탁근 고문은 무척 바쁜 사람이다. 전화를 걸면 늘 회의 중이거나 이동 중이니 그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가 이렇게 바쁜 데는 이유가 있다. 박물관 인연을 처음으로 맺게 해 준 온양민속박물관에 지금도 고문이란 직책으로 출근하고 있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박물관에서 수시로 유물 평가 및 자문을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과 문화재청에서도 운영위원으로서 굵직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새삼 대한민국 박물관계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위상이 실감 난다.

“제가 오래 몸담아왔던 온양민속박물관은 1978년 10월 25일 개관을 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46년에 남산에서 국립민족학박물관으로 출발하여 6.25전쟁으로 문을 닫았다가 1966년 경복궁 수정전에서 한국민속관으로 문을 열지만, 박물관이라는 명칭은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을 거쳐 1978년에 ‘국립민속박물관’ 때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온양민속박물관과 역사를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저의 국립민속박물과의 인연은 우연이라고 만은 할 수는 없겠네요. 국립민속박물관과 온양민속박물관은 운영 주체는 다르지만 형제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듯합니다.(웃음)”

신탁근 고문의 기억 속에 국립민속박물관은 말 그대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쉼 없이 변화해 온 박물관이었다. 30년 전 경복궁 향원정 뒤편 건청궁 자리였던 시절의 국립민속박물관<구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록 규모가 작고 시설은 많이 뒤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맥락 있는 박물관으로 기억하고 있고 이후 현재의 자리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전 개관하면서 전혀 다른 박물관의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유물 중심의 일방적인 전시에서 벗어나 미니어처 등 최신 전시기법을 도입함은 물론, 패널이나 전시장 색상 등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기법 등을 적용하면서 박물관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전시나 교육, 운영 등 총체적인 측면에서 한국 박물관계를 선도적으로 이끈 선구자였다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근현대 관련 유물 및 아카이브의 가치를 알아보다
신탁근 고문은 지난 30년간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우리나라, 더 나아가 세계 박물관계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몇 가지 있어요. 첫째, 앞에서 말씀드린 데로 뭐니 뭐니 해도 박물관 전시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것입니다. 조사연구를 기반으로 한 박물관형 전시 구현 및 증강현실 등 최첨단 전시기법의 선진적 도입 및 반영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진적인 전시기법의 변화는 향후 고고·미술계 박물관 등 유물 중심의 박물관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둘째는 박물관 협력망 구축에 의한 유물 정리 사업 및 교육 지원 사업, 그리고 전시지원 사업입니다. 우리 온양민속박물관도 이 3가지 모든 사업을 지원받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시환경과 유물관리, 질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모두 국립민속박물관의 덕분입니다. 셋째는 우리나라 박물관교육 및 어린이박물관을 선도적으로 이끈 기관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회교육이란 이름으로 초보적으로 운영해 오던 박물관에서의 교육을 최초로 ‘박물관교육’이란 명칭을 확립하면서 2000년 초반부터 다양한 박물관교육을 이끌어 온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어린이박물관을 정식 조직으로 발족시킨 점 역시 국립민속박물관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탁근 고문은 주목할 만한 성과로 우리나라 박물관 중 처음으로 근현대 관련 유물 및 아카이브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꼽으며 이러한 관심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개방형 수장고인 파주관 탄생의 근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물의 힘은 영원하다
신탁근 고문은 또 오랜 시간 민속유물의 수집과 보전의 현장을 직접 뛴 인물로서 이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했다.

“1978년 개관 이래로 지금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국립민속박물관의 근원적인 힘은 1970년대 전반부터 전국에서 새마을사업이 한창일 때 족보 있는 유물을 모아 온 소장 유물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이란 정체성을 논할 때, 아무리 미래에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여 첨단 기술이 박물관에 도입된다 해도 소장 유물의 힘을 능가할 수는 없어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국립민속박물관 역시 지금 보다 더 유물 수집 및 보존 정책에 힘써야 하지요. 여기서 민속유물이란 민속의 속성상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지는 살아 숨 쉬는 유물, 즉 생명력이 있는 유물이어야 하며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분명한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 더하여 상류층의 화려한 유물보다 우리 서민들이 사용했던 수수한 민속 유물에 대한 관심이 더 있었으면 해요. 더불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생활용품들에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탁근 고문은 보존정책과 관련해서는 민속유물의 특성상 그리고 민속유물의 생산과정으로 볼 때, 좀 더 규모 있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보존과학실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면서 최소한 한 부서가 중심이 된 조직을 구축하여 내부적인 보존과학 업무뿐만 아니라, 민속관련 협력기관들에 대한 보존처리업무를 맡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재 양성으로 대한민국 민속학 미래의 초석을 다져야
그렇다면 신탁근 고문은 국립민속관의 미래를 위한 재도약을 위해 어떤 시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걸까?

“국립민속박물관의 우선 과제는 관련 연구자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현재 대학에서 적어도 민속학과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전무합니다. 이럴 때 민속 관련 유일한 국립기관의 역할은 민속학 관련 연구자를 양성하여 민속유물 수집 및 보존 그리고 전시와 교육을 널리 보급하고 활성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들은 바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민속 현장에서 두루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발전계획 속에서 전통민속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생산해 내고 있는 현대민속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수집정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국립민속박물관만으로는 절대 부족합니다. 민속이 지역에 기반을 둔다고 할 때,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문화권별 각 지역에 민속박물관과 민속연구센터가 설립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민속연구센터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속의 전문 연구기관으로 조사연구를 비롯한 신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세계 박물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좀 더 글로벌한 박물관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비교민속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야기 말미에 최근 젊은 학예사들이 유물에 대한 이해나 공부 그리고 유물 취급법 등에 대해 점점 소홀히 여기는 느낌이 든다며 학예사의 생명은 유물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에 있음을 잊지 말고 이에 관한 공부를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누구보다 깊은 애정과 열정으로 민속 현장을 누빈 신탁근 고문, 그에게 민속이란 여전히 걸어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먼 세계가 아닐까? 대한민국 한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추진단원으로 오늘도 부지런히 뛰고 있는 그는 여전히 우리 박물관계의 혈기 왕성한 ‘현역’이었다.


글 | 신탁근_온양민속박물관 상임고문
인터뷰·정리 | 이경희_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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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철홍 댓글:

    신탁근 고문님은 우리나라 민속박물관분야의 선구자이자 거목이고 영원한 현역으로 수많은 박물관 분야 종사자들의 우상이요, 귀감이 되는 ‘국보급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살아오신 이력이나 인품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존경심이 생깁니다.

    부디 건강 잘 챙기셔서 우리나라 민속학분야의 등대로 영원하길 기원하고 한지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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