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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문화사 ● 뮤지컬의 역사

국내 음악극의 발전 판소리의 전통을 품은 ‘한국적 뮤지컬’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공연예술 장르 중 하나인 뮤지컬은 음악과 극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안무 또는 움직임이 한데 어우러져 완성된다. 영미 문화권에서 발전되어 온 만큼 서구 장르라는 인식이 짙지만, 국내 창작뮤지컬 또한 우리의 전통예술과의 접점을 확장하며 독자적인 시장으로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세기 한국 전통 음악극의 진화과정
우리나라의 전통극은 서민사회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각 지역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이나 남사당의 꼭두각시놀음, 북청 사자놀음, 판소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공연예술이 본격적인 장르로서 발전했던 것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에서 벗어난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창자와 고수의 소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통 판소리는 이후 극적 요소가 강조되며 등장인물의 음악과 무용, 화려한 무대 등의 요소를 포함해 변모한 창극과 여성국극의 형태로 발전했고, 1910년대 일본에서 수용된 신파극은 이후 악극으로 분화해 발전했다. 악극은 원래 신파극을 할 때 막간 여흥으로 노래나 춤을 선보이는 형태로 활용되어 서구 뮤지컬의 발전양상과도 유사한 지점이 발견되는데, 독자적인 장르로 성장해 1920-1950년대까지 성행하였다.

한편, 1920년대 등장한 여성가극단은 남성중심적인 공연계에서 기생조합 공연의 명맥을 이으며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분야다. 본격적인 여성국극단체의 출현은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이후 햇님국극단으로 개명로부터 비롯하는데, 국악계의 여성 중진 예술가들이 참여한 여성국악동호회는 <옥중화1948>와 <햇님달님1949> 등의 작품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여성국극은 서구식 뮤지컬, 일본식 가극 등의 양식에 영향을 받으며 나름의 영역으로 발전하였으나 1950년대를 끝으로 점차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는 국내에서도 뮤지컬 장르가 본격적으로 공연되며 음악과 서사, 춤이 어우러지던 우리 전통 공연의 요소들은 ‘한국적 뮤지컬’로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서구 뮤지컬의 역사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뮤지컬은 고급예술, 소수예술로 향유되던 오페라와 달리 더욱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장르로 발전해왔다. 미국의 공연시장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여흥을 향한 대중들의 요구에 화답하며 발전했고, 오페라에 비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갔던 오페레타operetta, 버라이어티 쇼 형식이 강한 레뷔revue,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보드빌vaudeville 등의 장르가 뮤지컬의 기원에 영향을 끼쳤다. 근대 뮤지컬, 즉 음악과 서사가 유기적인 구성을 갖춘 출발점은 192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쇼보트Showboat>로 간주한다.

이후 1929년부터 약 4년 간 대공항Great Depression 시대를 겪는 동안 대중들은 오락적 요소가 강하고 유쾌한 공연 장르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뮤지컬은 1940-1960년대 황금기the golden age를 맞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창작되어 현재까지도 공연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가씨와 건달들1950>, <왕과 나1951>, <마이 페어 레이디1956>,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57>, <사운드 오브 뮤직1959> 등이 있다.

이후 1970년대에는 록음악의 인기와 히피문화의 영향으로 다소 주춤했던 뮤지컬 시장은 1980년대 스펙터클한 무대를 재현한 메가뮤지컬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 번 시장을 크게 확장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전히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고 있는 <캣츠1981>, <레미제라블1985>, <오페라의 유령1986>, <미스 사이공1989> 등의 작품이 이 시기에 초연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브로드웨이 공연계에 디즈니 뮤지컬이 본격 등장하며 영화나 애니메이션, 소설 등을 무대로 옮기는 양상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현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앤드를 포함한 전 세계 공연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뮤지컬은 대중들에게 가장 크게 사랑받는 장르 중 하나로 지속적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적 뮤지컬’의 성장
우리 전통 공연의 형식이 진화되며 인기를 끌었던 창극, 악극 또는 여성국극은 서구의 뮤지컬과는 정서적 배경이나 소재, 양식 등에서 크고 작은 차이를 내포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본격적인 태동은 1962년 예그린악단의 창립작품인 <삼천만의 향연>, 드라마센터가 1935년 뉴욕에서 초연한 작품인 <포기 앤 베스>를 국내 프로덕션으로 공연하는 등의 시도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1965년에는 <춘향전>을 뮤지컬 형식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브로드웨이 작품인 <헬로 돌리>가 투어 프로덕션으로 공연되는 등 의미 있는 행보가 진행되었다. 또한 1965년 ‘제3극장’의 <새우잡이>, 1965년에 예그린악단의 <살짜기 옵서예>가 연이어 공연되며 ‘한국적 뮤지컬’은 본격적인 틀을 갖추게 된다.

특히 <살짜기 옵서예>는 작품성만이 아니라 대중적인 성공까지 거두며 한국적 정서와 전통을 뮤지컬의 양식으로 잘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예그린악단은 명실공히 창작뮤지컬의 선봉장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고전이나 역사물로 소재가 제한되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예그린악단은 이후 국립가무단, 서울시뮤지컬단 등으로 그 전통을 이어오며 국내 뮤지컬 시장 성장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국내 뮤지컬 시장은 크게 한국적 뮤지컬의 창작과 서구 뮤지컬의 수용을 큰 줄기로 발전했으며, 이러한 양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라이선스 작품을 중심으로 한 대형 뮤지컬들의 성공은 시장을 크게 확대했으며, 더불어 창작뮤지컬의 활성화도 가속화했다. 또한 뮤지컬 장르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창작자와 스태프들이 증가하면서 우리 전통 공연의 요소를 뮤지컬의 양식 안에서 더욱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시도 또한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전통 공연과 뮤지컬의 접점을 확장하는 작품들
우리 전통공연의 요소를 뮤지컬 장르와 효과적으로 접목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입증했던 대표적인 작품은 동명의 소설과 영화로 먼저 알려진 뮤지컬 <서편제>다. 판소리를 소재로 세 주인공의 관계와 이야기를 풀어낸 이 작품은 대중음악 작곡가로 널리 유명한 윤일상이 참여하는 한편, 소리꾼 이자람이 2010년 초연부터 2017년 네 번째 프로덕션까지 꾸준히 국악감독이자 ‘송화’역으로 참여해 작품을 더욱 탄탄하게 완성했다.

이 외에도 역사드라마를 무대로 옮긴 <대장금>, <선덕여왕>, <해를 품은 달> 등의 작품이나 <잃어버린 얼굴 1895>, <가야십이지곡>, <1446>, <소서노> 등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을 모티브로 창작한 작품, <바람의 나라>, <아리랑> 등 기존의 원작을 새롭게 뮤지컬로 창작한 작품들에서도 부분적으로 전통공연의 요소가 활용되는 양상은 꾸준하게 관찰되었다.

‘적벽가’를 창극화한 적벽(2015)

창작뮤지컬에서 신선한 시도가 두드러진 최근 10년 동안 전통 공연과 뮤지컬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더욱 활발했다. 특히 2015년 국립창극단에서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판소리 ‘적벽가’를 창극화한 <적벽>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창극은 판소리를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요소뿐 아니라 시각적 즐거움까지 강화하며 대중성을 높인 장르인 만큼 창작뮤지컬로의 확장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강점을 잘 살려낸 <적벽>은 판소리의 서사적 면모를 강조하면서도 배우들의 묵직한 퍼포먼스를 효과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도미 설화에 바탕을 둔 뮤지컬 <아랑가>도 판소리와 뮤지컬을 결합한 음악과 연출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신진 창작자들의 작품 개발을 지원하는 국내 창작지원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CJ스테이지업을 지원을 받아 2016년 초연한 <아랑가>와 유사하게 전통공연의 요소를 뮤지컬과 조합한 참신한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CJ스테이지업을 통해 2017년 초연한 <판>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우수크리에이터 발굴 지원사업’에서 개발되었던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젊은 창작자들의 열정과 에너지에 힙입어 ‘한국적 뮤지컬’의 발전을 한 단계 크게 끌어올린 작품들이다.

뮤지컬은 영미 문화권에서 시작된 서구의 장르이기에 음악적 요소는 물론 소재와 무대화 양식도 우리 전통 공연의 요소들과는 간극이 크다. 하지만 뮤지컬이 반드시 서구의 문법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은 라이브 무대와 관객이 동일한 시공간에서 함께 공유하는 현장의 경험인 만큼 각 로컬 시장의 특성에 따라 얼마든지 독자적인 색을 띠며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창작진들이 우리만의 색을 살려낸 참신한 소재와 음악으로 한국 뮤지컬 저변을 넓혀가기를 기대한다.


글 | 지혜원_경희대학교 공연예술경영MBA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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