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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넌 또 다른 나

노란색 쉐보레 카마로가 철컥 철컥 ‘범블비’ 로봇으로 변신한다. 이에 질세라 대형 트럭이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며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우뚝 서서 포효한다. 영화 「트랜스포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극장을 찾았던 ‘남자 어른 아이’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를 맞아 더 스펙터클하고 화려해진 변신 로봇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단숨에 일깨웠으니까. 만화영화 속 로봇과 함께 하늘을 날고 악당을 쳐부수며 지구를 지켰던 기억 말이다. 영화 「퍼시픽 림」은 그들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어릴 때 열광했던 어떤 로봇도 이렇게까지 거대하고 힘이 세진 않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극장을 나오는 남자 어른 아이는 아직도 흥분을 못 이겨 방금 본 로봇을 흉내 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자기를 발견한다.

 

변신 로봇 장난감_국립민속박물관

 

사실 요즘 로봇의 인기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TV 애니메이션, 만화책, 만화잡지, 극장용 만화영화, 조립식 완구 등을 통해 폭발했던 로봇의 전성시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안다.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새로운 로봇이 등장했다. 귀여운 몸을 가진 남자 아이의 모습이지만 원자력으로 엄청난 힘을 뽐내며 엉덩이에서 총알도 발사했던 ‘아톰’. 후에 ‘만화의 신’으로 추앙받은 데즈카 오사무가 낳은 아톰은 인간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로봇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만화책과 만화영화로 자주 소개된 아톰은 거대 로봇 ‘철인28호’와 함께 로봇 만화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채널 11번, 즉 문화방송을 통해 방영된 ‘마징가Z’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철인28호는 주인공이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움직였지만 마징가Z는 쇠돌이가 제트파일더를 타고 마징가Z의 머리로 들어가 직접 조종하는 방식이라 인간과 로봇이 정말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케트 주먹 목숨이 아깝거든 모두 모두 비켜라~.’ 마징가 Z에 열광했던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서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이 주제가를 같이 부르며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마징가 Z가 엄청난 인기를 얻자 방송국들은 연이어 일본 로봇 만화영화를 틀어주었다.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짱가, 그로이저 X, 메칸더V. 이들은 3단으로 변신하거나 비행기와 결합되거나 합체를 통해 완성되는 등 저마다의 ‘필살기’를 갖고 있어 아이들은 열광과 환호를 멈출 수가 없었다. 오후 여섯시 즈음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모인 동네 아이들은 로봇 만화영화 주제가가 나오자마자 방방 뛰어다니면서 로봇들의 전투를 따라하다 진짜로 싸우기도 했다.

 

 

일본 로봇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 로봇도 나름 선방했다.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만화영화로 상영된 「로봇 태권V」는 마징가 Z를 참고한 흔적이 진하게 묻어났지만 태권 V가 태권도의 발차기, 주먹 지르기로 악당을 무찌르는 모습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흥분과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를 졸라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레코드를 구입해 전축 바늘이 닳도록 듣고 또 들었다. 태권 V는 새로운 시리즈로 진화하며 방학만 시작되면 극장에서 상영돼 어린이 관객을 불러 모았다. 남자 아이들은 로봇 만화영화를 보는 게 방학의 큰 즐거움이었다.

 

태권V의 메가 히트에 힘입어 ‘슈퍼 태권V’ ‘청동거인’ ‘쏠라 1.2.3’ ‘혹성 로봇 썬더A’ ‘스페이스 간담V’ 등의 한국 로봇 만화영화가 방학 때마다 절찬 상영을 시작했다. 그에 맞춰 완구 제조사들은 그 로봇들의 모형 장난감을 전국의 문방구에 깔아 놓고 어린이 손님을 유혹했다. 태권V는 몇 편의 후속 시리즈와 극장용 애니메이션 리메이크, 액션 피규어 등을 통해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이정문 화백이 어린이 잡지 「소년생활」에 연재했던 「철인 캉타우」는 일본 로봇의 영향을 받지 않은 창의적인 캐릭터를 가진 국산 로봇으로 요즘 ‘피규어 덕후’와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왜 그렇게 로봇에 열광했을까?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우상, 즉 아이돌을 원한다. 요즘처럼 아이돌이 흔하지 않았던 수십 년 전, 거대 로봇은 남자 아이들의 절대적인 아이돌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우상을 세우고 거기에 자신을 투영한다. 주인공 훈이가 자신의 뇌파로 태권V를 조종하며 이단옆차기로 악당 로봇들을 두 동강 내는 그 순간, 태권V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구했다구!’ 그때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요즘 아이들이 ‘카봇’이나 ‘또봇’ 같은 로봇에 흠뻑 빠져있는 모습을 본다. 로봇은 또 다른 나. 그땐 그랬지. 지금도 그렇지.

 

 

글_국립민속박물관 웹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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