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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생충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기생충에게 1967년 8월 3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기생충 감염률이 공표되었고, 학생에게 채변봉투 제출은 육성회비와 납부와 더불어 의무가 됐다. 국민의 80%가 기생충에 감염된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났다. 기생충은 우리 몸에서 영영 퇴출당했다.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를 만나 기생충이 알려주는 민속, 해롭기도 하고 이롭기도 한 기생충에 대해 들어보았다.

3만년 전부터 시작된 더부살이

양쪽이 서로 이득을 취하면 공생,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면 기생이라 한다. 허락 없이 인간의 몸에 들어와 거주하는 기생충은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기생충은 세균, 바이러스와 한통속일까?

“기생충과 바이러스는 행동양식은 같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핵막진핵생물 세포의 핵과 세포질의 경계에 있는 이중 구조막의 유무인데요. 세균과 바이러스는 핵막이 없는 하등 동물이라 기생충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모든 기생충이 해를 끼치는 건 아닙니다. 기생충 중에 가장 긴 광절열두조충은 길이가 10m쯤 되지만,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아요.”

서민 교수는 기생충의 목적이 자손 번식이다 보니 웬만해선 숙주, 즉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숙주를 아프게 하면 자신의 존재가 들통나 쫓겨 날 수도 있다는 거다. 요충, 회충이 인간과 오랜 세월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납작 엎드려 지낼 줄 알기 때문이란다. 가끔 요충이 항문 주위에서 알을 낳기 때문에 가렵기는 하지만 그 외에 다른 피해는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말라리아 기생충은 이야기가 다르다. 나쁜 기생충의 대표적인 예로 모기에 숨어 있다가 인체에 침투하는데 적혈구를 공격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사람을 평생 집, 종숙주로 삼는 기생충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요. 중간숙주로 삼는 경우는 달라지죠. 말라리아 기생충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개회충도 마찬가지고요. 개나 고양이 장 안에서는 얌전하게 지내지만 사람 몸에 들어가면 머물 곳을 찾아 헤매다가 눈이나 뇌에 침범하거든요.”

상하수도시설의 발전으로 분뇨가 온전히 처리되면서 기생충과 사람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수돗물로 기생충이 퍼지는 현상이 생겼고 유기견 문제로 개회충 감염 사례가 늘어났다.

기생충은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생물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간의 회충알은 3만년 전의 것이다. 몇만 년 째 함께 사는 기생충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인류의 새로운 면면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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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발굴 당시 샘플을 채취한 곳들. L1은 조선 건국 전의 지층이라 발견된 것이 없고 L2에서 집중 발견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발견된 기생충들이 바로 오른쪽 사진. 사진_ 서민 교수 제공

기생충이 고고인류학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경복궁 담장과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자리, 종묘 광장 아래 14~19세기 지층에서 회충, 편충, 간디스토마 등의 기생충 알이 발견됐다. 경복궁 담장 아래에서는 흙 1g당 최고 165개의 알이 나왔는데, 이를 근거로 당시 한양의 위생상태와 흙 오염도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한양 인구가 15세기 10만 명에서 17세기 중반 20만 명으로 급증했는데요.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 정비할 여유가 없었어요. 특히 화장실이 부족해 많은 사람이 집 주변에 볼일을 보기 시작했죠. 여기저기 쌓여있던 분뇨는 홍수 때 강이 범람하면서 온 사방에 퍼졌고, 기생충도 같이 퍼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사대문 안에 기생충 알이 무더기로 있었으니 대부분의 사람이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기생충의 알은 시간이 지나도 껍데기가 사람의 뼈나 장기에 남아있어 식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 서민 교수는 조선 시대 미라를 조사하며 여러 가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남 하동군 진양정씨 문중 묘역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 1구가 조사, 연구되었는데요. 미라에서 나온 체내물을 분석해 보니 폐흡충알 수천여 개가 여러 장기에서 나왔습니다. 폐흡충은 페디스토마라고 불리는 기생충인데 주로 민물게나 우렁, 가재를 날것으로 먹을 때 감염됩니다. 조선 시대 기록이나 구전을 살펴보면 가재즙을 마시는 민간요법이 있어요. 아마도 하동 여인이 치료를 목적으로 가재즙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미라와 기생충에 대한 연구는 생활양식을 파악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질병에서 생활양식까지, 기생충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5천 년 전 유적에서 광절열두조충이 발견되면 예전에 그곳에서 송어회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후대에 육류를 먹고 걸리는 기생충의 알이 발견된다면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바뀌었거나 육류를 먹는 다른 부족에게 점령당한 것이겠지요. 옛날 기생충의 알은 이런 것들을 추측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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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몸에서 발견된 폐흡충알. 사진_ 서민 교수 제공
기생충 현대인의 처방이 되다

만약 기생충 전시가 열린다면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 서민 교수는 먼 미래에 기생충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 했다

“영화 쥐라기 공원의 공룡처럼 기생충을 실제 크기 보다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사람들이 기생충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박물관에서 자주 만나면 친숙해질 수 있겠죠. 또 기생충 체험관을 만들고 싶어요. 기생충 알이 우리 몸에 들어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면 ‘기생충 같은 놈’이라는 욕이 사라질 거예요.”

또 어둡고 축축한 인간의 몸을 여행하는 것은 기생충에게 굉장히 힘든 여정이라고 했다. 먹고 노는 사람을 기생충이라고 비난하지만, 실제 기생충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거다.

“기생충은 빈둥대지 않아요. 분수를 지킬 줄도 알아서 밥도 많이 먹지 않죠. 저는 기생충 박물관에 모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납작한 것과 납작하지 않은 것. 이런 식으로 분류해두고 싶어요. 자세히 볼수록 예쁘다는 말이 기생충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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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는 기생충에게 관대한 세상을 꿈꾼다
그가 ‘기생충에게 관대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위생가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99년 처음 등장한 위생가설은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이 오히려 면역체계를 약하게 만들어 알레르기를 증가시킨다는 이론이다. 산업화로 발전을 이룬 국가일수록 위생 수준이 높고 미생물에 노출될 위험성이 낮다. 반면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에 자연적인 감염이 없어지면서 자가면역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 즉 진화해온 면역체계가 싸울 대상이 사라지면서 꽃가루 등의 작은 물질에도 과민반응으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다.

“기생충이 있을 땐 기생충과 숙주가 타협으로 면역을 억제해 왔는데 기생충이 사라지면서 알레르기 등 자가면역질환이 생겼어요. 기생충을 잃고 새로운 질병을 얻은 거죠. 감염으로 알레르기 치료가 가능한 건 기생충이 생성하는 단백질 때문이에요. 그 성분이 인체 면역 시스템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면역 반응 완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 치료법을 거부하겠죠.”

요충과 편충은 구충제로 생을 마감하고, 맨발을 좋아하던 십이지장충은 신발의 등장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기생충의 멸종을 두고 슬퍼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기생충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류와 공생하길 원했던 기생충은 제 몸에 많은 이야기를 새겨두었고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성의를 보였다.

숱한 오해와 편견 속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지만, 인간이 연구하지 않는 한 기생충이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하니 조금 서운하다. 인간의 몸에 생활방식, 식생활을 직접 남겨둔 기생충은 매우 충실한 기록매체이다. 악역에서 벗어나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할 기생충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인류에 가장 가까운 지인충이 아닐까.

서민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 전공. 현재 단국대학교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서 기생충을 연구하는 소위 기생충학자로서 글과 강연을 통해 기생충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글, 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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