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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不老口

좋은 날, ‘국수’ 먹는 날

“언제 국수 먹을 수 있겠니?”라는 말에 내재된 뜻은 문자적으로 국수를 먹으려고 묻는 말이 아니라 결혼 적령기가 된 사람에게 ‘언제쯤 결혼할지’를 묻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국수’를 ‘결혼’과 연관시킨 것일까? 국수는 음식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긴 까닭에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국수를 먹으라’는 말이 있듯 결혼식 날 국수를 대접하는 것도 신랑 신부의 결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전래되었다 할 수 있다.
 
 

밥을 대신하는 가장 완벽한 한끼, 국수

 
한끼 식사를 할 때, 국수는 찬 없이도 먹을 수 있는 간편하고 맛 좋은 음식이다. 제분가공업의 발달로 기계로 압출한 건조면乾燥麵 류의 국수를 먹기 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밀가루를 손으로 반죽하여 만든 칼국수를 먹었다. 그러다 산업사회와 도시사회가 급속히 형성되면서 외식문화가 발달하여 다양한 국수요리가 등장했다.
 
안타깝게도 잔치국수나 칼국수를 파는 ‘국수집’ 보다는 자장면이나 짬뽕 등을 먹을 수 있는 중국음식점, 우동을 맛볼 수 있는 일식전문점이나 포장마차, 스파게티 종류를 이태리 음식점이 더 접하기 쉬운 요즘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면류 음식 중에 한식으로서 당당히 전문음식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냉면’이다. 과거의 냉면집은 평양냉면집과 함흥냉면집이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두 가지 냉면을 다 먹을 수 있는 편이다.
 
 

국수

중국 한나라에 밀이 들어오고, 여기서 얻은 밀가루를 면이라 하고 면으로 만든 제품을 통틀어 병餠, 이라 하였다. 5~6세기인 진시대에는 탕병湯餠의 일종으로 수인병水引餠이 등장한다. 《제민요술齊民要術》의 설명을 빌리자면, “밀가루를 조미한 육즙으로 반죽하여 젓가락 굵기로 다듬어 1자약 30cm 길이로 자르고 물속에 담가 손으로 누른 것을 하나씩 냄비에 삶아내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다 “후세에 면판에 치고 잡아당겨서 가늘고 길게 뽑아내게 되었는데 화북지방에서는 납면拉麵, LA-MIEN, 라면의 어원, 화남지방에서는 타면打麵, TING-MIEN이라고 하였다.”한다. 칼국수라 할 수 있는 절면切麵은 당나라시대에 이미 있었으며, 냉면식 압착면壓搾麵에 이르기 까지 송나라 시대에 와서 크게 유행되었으며, 중국의 북부보다 남부에서 번창하였고, 일본은 손이나 기계로 보다 가늘게 만들어 건조한 국수를 소면素麪이라 하였다. 1)
 
신라 시대에까지의 문헌에 국수를 가리키는 면이 보이지 않다가 송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가졌던 고려시대 《고려도경高麗圖經1123에 “면식을 으뜸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오나 면의 형태를 알 수 없고 고려말기의 《노걸대老乞大》에는 “우리 고려인은 습면濕麵을 먹는 습관이 있다.”고 하였다. 《동언고략東言考略》에서는 “을 일컬어 국수라 하는데 밀기울이 국이 되고 면의 찌꺼기인 밀가루로 면을 만들 수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한다. 국수를 먹는 분포는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원조로 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도 먹고 있으며 유럽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마카로니에서 찾을 수 있다. 2)
 
 

칼국수

오늘날 칼국수에 밀가루를 주로 쓰지만 옛날에는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다. 요리서 《음식디미방》에서는 절면의 주재료는 메밀가루이고 여기에 연결제로서 밀가루를 섞고 있다. 《주방문》에서는 메밀가루를 찹쌀 끓인 물로 반죽한다. 《음식디미방》이나 《주방문》이 나온 1600년대 말엽에는 메밀은 으뜸가는 국수 재료였던 것이다.
 
중국의 원나라 시대에 북방에서 많이 나는 메밀로 하루河漏라는 국수가 있었으며, 일본에서는 교맥蕎麥, 소바이란 말로 메밀국수 자체를 가리킨다. 본산적주本山荻舟에 의하면 “에도시대1603~1867 초엽에 조선의 승려 원진元珍이 연결제로서 밀가루를 메밀가루에 섞는 것을 가르침으로 일본에 메밀국수가 보급되었다.”고 하였다.
 
한편 《음식디미방》에는 밀가루로도 국수를 만들고 있음을 알려주는데 “달걀을 밀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칼국수로 하여 꿩고기 삶은 즙에 말아서 쓴다.”하고 이것을 「난면법」이라 하였다. 3)
 
 

압착면壓搾麵

밀가루를 원료로 하면 글루텐GLUTEN의 점성 때문에 쉽게 국수를 만들 수 있으나 다른 전분의 경우 국수발이 끊어져서 쉽게 성형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우 끓는 물에 국수발을 밀어 넣는다. 《음식디미방》이나 《주방문》에는 이러한 압착면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바가지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녹말풀을 담아 끓는 물 위에 높이 들고 박을 두드리면 밑으로 흘러내린다. 끓어서 익은 후에 건져내면 모시실 같은 사면絲麵이다.”라고 하였다. “사면의 국물은 간장국에 타면 교태하고 오미자국에서 잣만 웃기로 얹는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냉면의 원형이다.
 
국수틀의 기계적 구조에 대하여는 《임원십육지》 섬용지贍用志, 압착에는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를 인용하여 설명하기를 “큰 통나무의 중간에 지름 약 10cm정도 구멍을 뚫어 이 둥근 구멍 안을 무쇠로 싸서 그 바닥에 작은 구멍을 무수하게 뚫어 무쇠솥 위에 고정시켜 놓고 국수 반죽을 놓고 지렛대로 누르면 가는 국수발이 끓는 물속으로 흘러내린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압착면은 일본에는 없고 중국에는 당면에 연결되니 압착면은 극동 삼국에서 우리 특유의 것이 되었다고 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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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오늘날 우리나라 음식의 대표적인 존재인 냉면은 문헌상으로도 여러 곳에 언급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에 보면 “겨울철 음식으로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고 한다. 또 고종 10년1873의 진찬의 괘에는 오늘날 냉면의 레시피에 가까운 재료로서, “목면압착면, 김치, 돼지다리, 배, 잣, 고춧가루 등이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정보를 다룬 《송남잡식松南雜識》에는 “두보杜甫는 「괴엽냉도槐葉冷淘」라는 시를 남겼고, 동파東坡의 시에는 ‘괴아면槐芽麵’이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평양냉면과 비슷하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중국의 냉도冷淘는 칼국수인데, 우리의 냉면은 압착면이며 냉도는 여름철 음식으로 좋다고 하였으나 우리 냉면은 사철음식이며 오히려 영하의 추위에 먹는 데에 참멋이 있다고 하였다.
 
냉면은 주로 북부지방에서 발달하였고, 특히 평안북도에 메밀이 많이 생산되어 평양에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평양냉면 재료의 구성은 ‘압착형 국수에 꿩탕이나 동치미국물을 붓고 삼겹살 돼지고기, 무채김치, 배를 얹은 뒤 반숙계란을 실처럼 가늘게 썰어 덮은 다음, 잣, 실고추, 겨자, 초 등을 약간 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평양냉면에 견줄만한 남국적인 다정한 맛으로 평양냉면에 녹말을 약간 섞어 만든 진주냉면이 있고, 춘천의 막국수도 냉면의 일종이다.
 
큰 냉면대접의 국물을 들이키면 그 서늘한 맛이 간장을 건드리며 사르르 온몸으로 녹아드는 맛이 일품인 냉면을 두고 일본의 유명한 요리학자 전중정일田中靜一은 동양은 물론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걸작품이라 극찬하였다고 한다. 5)
 
 
어린 시절, 여름철이면 이른 저녁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밀가루 반죽을 투박하게 썰어 끓인 칼국수를 먹곤 했다. 눈 먹은 겨울하늘처럼 뽀얀 바지락 국물에 어린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홍고추의 칼칼한 양념장을 둘러 한여름 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그 뜨거운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겨울철엔 팥국물에 칼국수를 넣어 끓인 팥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그 맛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침이 꿀꺽 넘어간다.
 

이 글의 필자는 1985년 교문사에서 발행한 《한국요리문화사》를 참고로 하고 있다. 《한국요리문화사》는 우리나라 식품 분야의 저명한 연구가인 故이성우 선생이 집필한 책으로, 농업과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지를 보여준다. 요리와 조리, 가열요리의 기원, 밥의 문화, 국의 문화,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국수와 냉면의 문화 등 한식의 전 범위를 담아내고 있다.
 
《한국요리문화사》, 이성우 지음, 교문사
1) 국수와 냉면의 문화 중에서 _146쪽
2) 국수와 냉면의 문화 중에서 _148쪽
3) 국수와 냉면의 문화 중에서 _150쪽
4) 국수와 냉면의 문화 중에서 _153쪽
5) 국수와 냉면의 문화 중에서 _155쪽
 
 
글_ 김필영 | 시인 · 문학평론가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푸드서비스 디자인컨설턴트> 활동하고 있다. 한국음식 64가지를 시로 쓴 《우리음식으로 빚은 시》 음식테마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저서 《주부편리수첩》과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맛보는 한식》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과 이어도문학회장, 시산맥시회 회장, 시문학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며 시와 음식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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