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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여름, 느리게 느리게

전시실 근처에 가면 무언가 보글보글 끓고, 통통 썰고, 달그락 국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문은 해지는 여름 저녁, 풀벌레와 함께 엄마의 저녁밥을 기다리던 오래전의 기억으로 안내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여름나기-맛 멋 쉼> 전시장의 풍경이다. 작가들의 공예작품과 우리 유물과 아름다운 영상이 어우러진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협업’이다. 전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혜영 전시감독, 박중원 공예박사, 이화진 영상감독, 허상욱 분청사기 작가, 김창호 학예연구사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Q. <여름나기 – 맛 멋 쉼>은 어떤 전시인가.

조혜영_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진흥원과 국립민속박물관이하 박물관이 공동 주관합니다. 감독으로서 여러 기관과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각 기관은 각자의 목표가 있고, 그것들은 대부분 일치하지 않거든요. 특히 이번에는 전시 잘 하기로 소문난 국립민속박물관과 협업한다는 것에 부담이 조금 있었어요. 하지만 이 기회야 말로 정말 배울 것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의 입장, 진흥원의 입장, 시공사의 입장, 그리고 참여 작가들의 입장까지 모두 충분히 들어가면서 우리가 가진 걸 다 끌어내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거란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김창호_ 최근 박물관에서는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서 다양한 분야와 협업과 융복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전통적인 역할이 옛날 물건을 모으고,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보존하면서 때로 보기 좋게 전시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박물관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리는 문화가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었고, 어떤 기반에서 변화되어 왔는지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이번 전시도 그러한 시도의 한 갈래입니다.

Q. 여러 기관과 작가진까지 함께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박중원_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모두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이를테면 부엌, 대청, 저장고찬방 등에 이르는 동선에 대한 생각도 박물관, 진흥원, 큐레이팅 팀 모두 달랐어요. 열심히 조율한 끝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음식을 조리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고,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 대청에 차려진 음식, 음식을 즐기는 영상, 그릇이 모여있는 공간의 미감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이동동선을 기획했어요. 단순히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가 아니라 걸으면서 작품을 보고, 여름나기의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각자 여름의 전통을 해석하고, 떠올릴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했죠.

Q. 기존의 ‘한식’을 표현하는 전시 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어떤 점에 주력했나.

조혜영_ 대부분의 전시에서는 빈 그릇을 보여줘요. 하지만 그 경우는 일반인에게 친화적인 전시가 되지 못하죠.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최대한 음식과 가장 비슷한 것을 만들자는 목표로 모형을 사용했습니다. 음식을 음식답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관심까지 잇고자 했습니다. 일종의 도전이었죠.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했던 부분이 바로 영상처리였어요. 테스트를 많이 해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영상팀이 고생이었거든요. 덕분에 이번 전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멋진 요소가 되었습니다.

Q.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영상이 인상적이다. 공간이 좁아서 표현하기 힘들지 않았는지.

이화진_ 그래픽에 영상이 섞이는 부분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오차 없이 잘 만들어질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영상을 먼저 작업해서 현장에서 틀어보고, 그 영상의 크기를 확인한 후에 배경 실사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보통의 작업 진행 방식과 정반대의 흐름이에요. 결과적으로 우리 전시 환경에 잘 맞는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관람객들이 대청마루의 모시 형상의 천에 비치는 영상을 눈 여겨 보아주셨으면 해요. 천이 얇기 때문에 영상을 쏘면 천 너머의 벽에까지 영상이 비치게 되거든요. 그럼 그 벽에 보여지는 영상들과 겹치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어요. 고민 끝에 안쪽에 빔프로젝트를 다시 거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았어요. 폭포와 강이 흐르는 천에 비치는 영상을 배경으로, 벽에 맺히는 영상의 인물 등이 다른 색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이런 기법들을 생각하면서 전시를 관람하시면 훨씬 재미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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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영상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여름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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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음식이 담긴 모습을 연출하여 우리 그릇의 정취를 담았다. 허상욱 작가 작품
Q. 분청사기 찬합과 도시락도 놀라웠다. 실제 유물로 보일 만큼 탁월했다. 작가로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것은 어땠는지.

허상욱_ 사실 작가 입장에서는 전시를 한다고 하면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텅 빈 그릇을 전시합니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서는 전시에 내는 음식에 어울릴만한 그릇을 골랐고, 모형이지만 그 음식이 실제로 담겨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진짜 우리나라 음식을 진짜 우리나라 그릇에 보여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죠.

도자기는 천천히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야 완성됩니다. 우리 음식도 그렇지요. 어머니가 천천히 만든 음식을 천천히 먹다 보면 어느새 편안해지고, 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여름을 나고, 또 겨울을 살아갈 힘을 축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혜영_ 허상욱 작가의 도시락과 찬합이 전시된 쇼케이스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코너이기도 해요. 유물과 현대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거든요. 과거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오늘날의 작가의 활동과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야겠다는 미래 제시가 거기에 다 모여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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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전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박중원_ 관람객들은 무엇보다 부엌을 신기해 하고, 음식 조리 영상을 재미있어 해요. 일반적인 전시 형태처럼 음식이나 도자기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체험 방식도, 그것을 통해 얻는 느낌들도 각자 달라서 저희로서도 색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시장에서의 위치나 동선 때문에 찬방을 걱정했어요. 논의 끝에 실제 창고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구성하자 결정하고, 그릇들을 쌓아 정돈했는데, 어머니들이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부러워하기도 하고요.웃음 그리고 그릇들 사이에 놓은 쥐와 고양이의 위트에 관람객들이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이죠.

김창호_ 이번 전시는 사람들이 알고 있던, 박물관에 대해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요. 그래서 ‘와, 박물관에서 이런 걸 하네’하고 재미있어 하는 분들도 있고, 유물과 함께 대비된 현대의 전통공예들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Q. 박물관의 전시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현대미술 전시로 보여질 수도 있을 만큼 파격적이기도 하다.

조혜영_ ‘민속’이란 생활을 아우르는데,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면 그것이 현대 미술이든 혹은 다른 것이든 넘나들 수 있는 포용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시도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김창호_ 이번 전시는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전통이라는 것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전통과 현대는 마치 낡은 것과 새것의 대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놓여진 유물과 현대 공예품을 살펴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옛 것과 현재의 것을 연결하는 공통적인 심미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이 얻은 것, 혹은 관람객들이 얻어갔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조혜영_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에요. 그리고 전시기획자로서는 관람객들이 돌아가서 이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김창호_ 얻은 것은, 각 분야별로 의지할 분들이 생겼다는 것. 기존에 함께 해왔던 영상 감독님을 비롯해서 이번에 참여하신 작가님들, 감독님들로 더욱 확장이 되었어요.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그것만한 재산이 없죠.

이화진_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연출 기법이나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나오면 접목시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박물관 전시를 통해 실험적인 영상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은 늘 반갑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와 관람객의 매개체로서의 영상, 본연의 역할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영상이 잘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는 것은 그만큼 기획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상욱_ 최근에는 아트페어가 많아 도자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식이 높아졌지만, 지금도 그릇을 사용하는 방식에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분청사기는 조금씩 변해요. 물이 들어요. 그래서 실제 음식을 담거나 음료를 담기 꺼려하죠. 하지만 이것은, 그릇을 쓰는 사람과 같이 늙어간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잘 써준다면 예쁘게 늙어갈 것이고, 애정 없이 마구 다루면 추하게 늙겠죠. 일상 생활에서의 분청사기까지 알 수 있는 전시가 바로 이번 특별전입니다.

박중원_ 지금까지 한식 전시는 상당히 많았지만, 대부분 한식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한식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살피는 노력은 부족해요. 사실 ‘한식’이라는 게 하나의 음식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이나 공간 등을 모두 아우르는 문화이거든요. 이번 전시에서 저희는 한식을 다루기 위해 그것을 이루는 요소들, 그릇, 장소, 분위기, 도구, 저장공간까지 모두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여름나기 맛’이 아니라 ‘여름나기 맛, 멋, 쉼’이 될 수 있었죠. 이번 전시에서 꼭 우리만의 여름문화를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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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화진 영상감독, 허상욱 분청사기 작가, 조혜영 전시감독, 박중원 공예박사, 김창호 학예연구사

특별전 <여름나기 – 맛 멋 쉼>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 2016년 9월 5일까지 열린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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