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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대를 소환하라, 게임

시대별로 게임 혹은 놀이의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그 시대의 가치와 관습이 담겨있다. 같은 이름의 놀이인데도 동네마다 방식에 차이가 있다거나 같은 놀이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 잘 살펴보아도 각 지역의 관습과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놀이의 규칙, 선과 악 혹은 이기고 짐의 기준은 물론 근래의 컴퓨터 게임 속 캐릭터의 성격, 복식, 어휘 역시 분석의 단초가 된다. ‘게임’이라는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박사를 찾아 들어 보았다.

상상력과 상상력이 마주하면 현실이 진화한다

 

“자, 원시인들이 맘모스를 사냥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동물을 사냥할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도 처음부터 맘모스를 뚝딱 잡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맘모스가 어떻게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수없이 시뮬레이션 해봤을 거예요. 같이 사냥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역할을 나누고, 그 역할에 맞는 행동을 정했겠죠. 그리고 장면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 상상했을 겁니다. 이러한 계획이 실천으로 옮겨졌을 때, 상상은 현실로 바뀝니다. 바로 이 시뮬레이션 과정이 ‘게임’입니다.”
장근영 박사에게 ‘게임이 무엇일까요?’하고 물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든 예시는 바로 원시인과 맘모스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결국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있는 활동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다양한 과제에 직면했을 때,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전략과 역할 수행을 통해 답을 얻어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실제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성장은 물론 사회성을 장착하게 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게임의 역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이벤트였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람들은 이 게임을 통해 인공지능의 대단함에 집중했지만 왜 인공지능의 현 위치를 시험해보기 위해 ‘바둑’이라는 오래된 게임을 선택했는지는 잘 생각하지 못해요. 왜 바둑이었을까요? ‘지적 능력’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지적 능력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지 않으면 대국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더불어 강력한 규칙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에 치밀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알파고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바둑돌을 잡은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존재가 만나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전략을 펼치는지 알아내면서 그에 대응하며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게임이에요. 바둑을 두기 전의 두 사람과 바둑 한 판을 두고 난 두 사람의 마음이 바둑에 대해서만은, 상대방에 대해서만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가상의 모눈 종이에 한 시간 동안 돌을 두고 난 후에 일어나는 것이죠.”
상상을 상상으로 대응하고, 그 결과 역시 상상일 뿐인데 그 상상이 다른 상상에 영향을 미친다. 상상이 계속 증폭되고 진화가 일어나려면 서로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하고, 그 두 존재가 만나 서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게임이 제공하는 생태계라고, 장근영 박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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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의 풍속화. 세 명의 아이가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씨름, 윷놀이, 팽이치기, 숨바꼭질, 제기차기, 줄다리기 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러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규칙, 전략적 사고와 함께 상대의 마음을 읽어 대응하는 사회성도 배운다.
그림 출처_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소장, 국립민속박물관 모사복원품

 

하지만 게임은 오해 받고 있다

 

이렇게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하는 게임이하 멀티플레이 게임이 점차 혼자 하는 게임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컴퓨터’가 있다. 그러면서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일상 생활 방해, 중독성, 범죄 등이 그것이다.
“모든 멀티플레이 게임은 전략적 사고를 키우는 동시에 상대 마음을 읽는 능력을 키웁니다. 이는 사회성의 핵심인 ‘조망수용능력’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죠. ‘권투에서 발을 쓰면 안돼’, ‘축구에서 손을 쓰면 안돼’ 하는 모든 것이 ‘규칙’입니다. 멀티플레이 게임은 이 규칙을 배우는 동시에 반칙하면 이길 수 있지만 그렇게 이기느니 지고 말아라, 라는 스포츠맨십까지 알려줍니다. 모든 과정에 ‘윤리’가 있죠.”
*조망수용능력: 타인의 입장에 놓인 자신을 상상하는 것에 의해 타인의 의도나 태도 또는 감정, 욕구를 추론하는 능력
하지만 혼자 하는 게임의 경우, 내 의지대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사회화와는 동떨어졌다.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이 현상이 부각되어 사회의 오점으로 지목되고, 그러다 보니 ‘중독’, ‘은둔형’ 등의 부정적인 단어를 내세운 연구 결과가 세상에 나온다. 이는 게임을 오로지 컴퓨터 게임에 국한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컴퓨터 게임 역시 단순하거나 복잡한 상황에서 시행 착오를 겪고, 게임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논리를 배웁니다. 혼자 하는 공부와 같아요. 이를 통해 내용을 만들고, 멀티플레이를 통해 서로의 내용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바둑도 혼자 기보를 보고 충실히 공부한 뒤, 대국에 나서는 것처럼요.”
상상을 제대로 해야 많은 것이 바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것이 상상이다. 이 부족함은 게임에서 채울 수 있지만, 게임은 하지 말아야 할 목록으로 분류되어 소외 받고 있다. 상상과 상상이 마주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현실적인 방안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임은 시간을 돌아보는 창이다

게임, 혹은 놀이를 ‘사회의 축소판’이라 부르는 것은, 그만큼 닮아있기 때문이다. 나 이외의 사람들과 미리 동의한 규칙과 약속 안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참여자가 서로의 수를 읽어가며 노는 동안 그 놀이의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자연스레 상상력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성을 체득하고 창의력을 성장시킨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게임을 주제로 전시를 한다면, 저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싶어요. 평균 게임 시간의 변천을 기록하는 겁니다. 옛날의 놀이가 한 시간 이상을 필요로 했다면 요즘 게임은 1분이면 끝이 나죠. 이것은 사회의 꽤 큰 변화를 주었어요. 옛날에는 약속 시간에 30분 늦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요즘은 10분만 늦어도 큰일나죠. 그만큼 시간의 가치가 높아졌고, 시간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서 사회도 바뀌게 된 겁니다. 현대 사회의 템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게임은 시나브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어 왔다. 시대마다 즐겨 하던 놀이와 규칙과 양식, 그리고 그 놀이에 따른 부작용이라 여겨지는 요소까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정신을 되짚어볼 수 있다. 그때의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 그들의 상상력은 어디에까지 닿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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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사항을 차치하고, 게임의 가장 큰 가치는 ‘재미’다. 평소 느끼기 힘든 성취감과 엔도르핀까지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이다. 이 점이 게임과 놀이가 소멸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해서 우리 삶 속에 중요성이 덜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게임의 장면 속에 숨겨져 있는 시대적 코드를 읽어 내는 것은 우리가 지내 온 시간을 원형에 가깝게 복기해 낼 수 있는 또 다른 게임이 된다. 민속에 있어 이 보다 좋은 방법론이 또 있을까.

장근영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게임 ‘리니지’를 소재로 심리학 논문을 썼고,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시선으로 대중문화와 사회현상을 바라보며 칼럼을 쓰고 강의를 한다.

글, 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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