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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아름다운 오래된 것에 관한 단상

최근 ‘도시재생’이란 말을 언론이나 각종 전시의 제목으로 자주 접한다. 도시재생이란 좁게는 오래 전에 지어진 주택이나 그 기능을 다한 산업시설물을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여 되살리는 것再生을 의미한다.

 

정말,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다울까?

도시재생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도시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과 통찰력을 지닌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이탈리아 소설가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라는 책의 한 구절을 빌어 이해해 본다. “옛날과 비교해 볼 때 대도시로 변한 마우릴리아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잃어버린 우아함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략> 대도시는 더욱더 많은 매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바뀐 도시의 모습을 통해, 예전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며 향수에 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오래된 것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성적 충족감은 아마도 이와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것을 재생하는 행위가 공공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이나 사업으로 바뀔 때 그 본질은 왜곡되기도 한다. 도시정책과 관련된 회의자리에서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기 때문에 오래된 것은 모두 지금 모습대로 지켜가야 한다’는 무리한 보존의 논리를 펼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불과 몇 년 전 만하더라도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낡은 것은 모조리 부수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전면적인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이렇듯 시류에 따라 도시를 바라보는 시좌視座가 극적으로 혹은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현상이다. 전면적인 재개발을 통한 욕망의 실현과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계몽적 명제. 이 둘은 서로 대척점에 서있지만 그 안에 극단적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다운 걸까? 그래서 오래된 것들은 모두 보존되어야 하는 것일까?

 

보존되어야 할 아름다움은
시간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이웃들과 승합차를 타고 63빌딩을 보기 위해 상경했던 내 유년시절의 기억처럼 대량생산⋅대량소비가 미덕이던 그 시대에는 높게 올라간 건물과 넓게 뚫린 도로가 도시발전의 척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혹은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개발이란 광풍 속에서 살아남은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도시공간 혹은 건축물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대해서 깊은 향수를 느끼는 이른바 레트로Retro 현상의 일종이다.

이런 사회현상에 편승해 일부 지자체가 가난을 관광화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명제를 맹신하며 무조건적 보존을 통한 재생사업에 열을 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보존이 가져다 주는 문학적 결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탈로 칼비노의 글을 옮겨본다. 그는 가상의 도시 ‘조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사하였다. “제가 이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서 떠난 것은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보다 더 잘 기억되기 위해 꼼짝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조라는 힘을 잃고 서서히 붕괴되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오래된 것들 모두를 박제화된 형태로 보존한다면 현대의 도시들도 가상의 도시 ‘조라’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앞서 수차례 인용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명제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오래된 것을 보존해야 하는 당위當爲에는 긍정한다. 그렇다면 오래된 것 중에서 무엇을 남기고 보존할 것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오래된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지역마다 문화마다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간단히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치판단 기준의 하나는 보존되어야 할 아름다운 오래된 것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점에서 이어주는 ‘시간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행위가 대상을 과거의 특정한 시점으로 회귀시켜 박제화하거나 존재의 부활을 믿으며 미이라를 만드는 것과 같은 맹목적 신념에 근거한 행태의 답습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아름답다

몇 년 전 마카오에서 우연히 들른 공공도서관 ‘Sir Robert Ho Tung LIBRARY’은 ‘아름다운 오래된 것’에 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장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 일부 증축하여 지역 사람들이 쉽게 찾는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된 건축물도 현재 시점에 살아있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겼다. 수많은 오래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이나 문화재란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과거의 공간과 시간을 어느 시점에 맞추어 동결시키고, 여하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 건축물은 그냥 외부에서 온 방문객을 위한 눈요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된 건축물의 가치가 높다고 하여 과거의 시점의 모습으로 박제화해 버린다면 그것은 과거의 시점에서 죽은 건축물이자 물리적 구조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Sir Robert Ho Tung’ 도서관처럼 오래된 건축물도 현재의 시점에서 기능하는 공간일 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하한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생명력을 부여 받는다. 애착愛着은 원래 인간관계, 특히 무한한 애정을 쏟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자 한 개념이다. 오래된 건축물들 가운데서 지역 사람들이 장소에 대한 애착Place Attachment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과거적이자 현재적이고 또한 미래적이다.
Sir Robert Ho Tung_drowing

사람이나 건축물이나 변하지 않으며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힘겨운 시간과의 싸움이다.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시점에서 보존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라는 시점에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오래된 것이 미래에도 변하지 않고 아름답고 오래된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건축물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과 그에 따른 새로운 구조체의 도움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능과 형태의 새로움이 더해진 현재의 모습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되돌아 보았을 때 또 다른 아름답고 오래된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아름답고 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아주 긴 호흡의 시좌視座에서 시작된다.

필자는 2013년 9월에 발행된 국립민속박물관 국제학술세미나 <박물관을 위한 근대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의 자료를 살펴보고 이 글을 썼다. 이 세미나는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동서양 근대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 사례를 나누고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세미나에 마련된 프로그램으로는 ‘[한국] 문화재 활용 정책 현황과 과제’, ‘[일본] 일본 근대 건축물의 보존과 메이지무라’, ‘[중국] 798, 공간 속 시간과 시각화’, ‘[네덜란드] 생각과 마음 열기: 사람을 잇는 문화유산의 힘에 대하여’ 등으로 꾸며졌다.

| 국립민속박물관 국제학술세미나 <박물관을 위한 근대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 – PDF

 

글, 그림_ 한승욱 |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교토를 중심으로 도시 내에서 사회적·제도적 배제가 공간화되는 과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 공동체의 활동을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지난 40년간 도시재생사업이 이루어진 부락민과 재일코리언의 혼합거주지역에서 이루어진 2중 차별구조와 지역운영주체의 형성과정을 고찰한 <밀집시가지 재생에 있어서 주환경 운영주체 형성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 지역정책의 전환기에서 제3섹터의 역할을 고민한 <마을만들기 중간지원공저>, 일본의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에서 전문가 역할의 변화에 관한 <창조성과 도시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 5년 동안은 부산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도시재생사업 관련된 정책연구와 현장중심의 참여관찰조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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