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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거칠고 투박해 더 애틋했던
감자 한 덩이

속절없던 장대비, 그리고 생애 첫 감자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강원도에 관한 첫 기억은 1976년 8월 초의 대관령 고갯길이지 싶다. 아흔아홉 구비를 다 돌아야 강릉이 나온다기에 설마 했더니만 참말 버스는 바람 탄 가오리연마냥 구불구불 고갯길을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멀미로 얼굴이 샛노랗게 떠서 바라본 하늘도 덩달아 뱅글뱅글 맴을 돌았다. 경포대 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제일 먼저 해변 솔밭에 텐트를 치셨다. 그 안에 기어들어가 널브러져 눈을 감고 있는데 멀리서 유행가 소리가 들려왔다. 카세트 녹음기에 확성기를 매달았는지 온 천지가 왕왕 울릴 만큼 큰 소리였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듣고 있자니 멀미는 진즉 가라앉았는데도 가슴이 묘하게 울렁거렸다.

운도 없지. 난데없이 장대비가 기세 좋게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미처 흘러내려가지 못한 빗물이 텐트 안으로 흘러들어 식구들마다 혼비백산이었다. 통 큰 외할아버지가 전세 낸 관광버스로 자손들을 모두 실어 나른 터라 이런저런 밑반찬에 야심 차게 석유곤로며 솥단지까지 꾸려 왔건만 불을 피워 밥을 안칠 수 없으니 다 같이 쫄쫄 배가 곯을 판이었다. 지금처럼 음식점이 흔하지도 않았거니와 대가족을 거느리고 왔으니 외식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이다. 어린 맘에도 심란해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고는 솔밭 저편 파라솔로 데려갔다. 고소한 기름내가 풍기는 파라솔에선 감자전 장수가 생각지도 않은 대목을 맞아 신이 나 있었다. 갑자기 손님이 몰려 쩔쩔매면서도 연신 부쳐내는 감자전 한 장을 받아 들자마자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입에 넣었다. 쫀득쫀득한 것이 무언가 알갱이가 씹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초간장 맛으로 먹긴 먹되, 감자전 자체로는 도무지 어떤 맛을 내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속도 채우고 빗물에 젖어 오돌오돌 돋은 소름도 주저앉혔던 것 같다. 옆에 두 동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산골 젊은 엄마, 그녀의 투박한 감자 쌈

1996년 어느 초여름에 먹었던 감자 쌈의 맛도 잊히지 않는다. 육아잡지 기자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매달 산골을 돌며 다둥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을 인터뷰해 기사를 만들었다. 기획 의도는 이러했다. 시골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고 외둥이일수록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약한 경우가 많으니 산골에서 서로 엉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건강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아울러 시골에서 건강하게 크는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그 밥상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을 듯 싶었고.

그 달에는 강원도 양양 산골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부부가 주인공이었다. 국내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악도로인 구룡령의 표장이 완료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터라 간 김에 취재를 해서 준비하고 있던 바캉스 부록 책자에 넣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님과 함께 2박3일 강원도 출장길을 잡았다. 구룡령은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는 입산 통제기간 중이었다. 지역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두릅부터 시작해 고사리까지 채취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만 길을 열어준 거였다. 미리 협조 공문을 띄워 통행 허가를 받고 들어간 구룡령 도로는 풍경이 그만이었다. 뷰포인트를 잡아 사진 기자가 촬영을 하는데 기사님의 ‘어이구야’ 소리가 들려왔다. 주민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미처 거두지 못한 두릅이며 고사리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두릅은 이미 쇠서 어른 팔뚝 길이만큼 자랐지만 데쳐 먹지 못할 뿐이지 물김치를 담그면 맛이 그만이라고 했다. 냉이 한번 캐보지 못한 주제에 어디서 그런 욕심이 났는지, 두릅 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질겁해서는 차에 올라 양양 남대천으로 길을 잡았다.

비포장길로 한참을 들어가 드디어 발견한 빨간색 미제 픽업트럭. 주인은 옆에서 포크레인으로 길을 한참 고르고 있는 털보 청년으로 아이 셋의 아빠이자 그날의 취재원이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소들을 불러와야 한다며 서두르는 남자의 뒤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매에여~’ 손나발을 입에 댄 청년이 느릿느릿 소들을 부르자 계곡 저편에서 ‘움머어~’소리가 들려왔다.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는 중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매에여’와 ’움머어’. 털보 청년은 무릉도원 주민임이 분명해 보였다. 와중에 낚싯대를 드리워 아이 손바닥만 한 고기를 턱턱 잡아채내기까지 했으니. 산천어였다. 소를 앞세우고 산천어 몇 마리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맞은 아내가 저녁상을 차렸다. 밥상이랄 것도 없었다. 마당 여기저기 돋은 머위 여린 잎을 툭툭 뜯고 막장과 초고추장 한 종지씩을 곁들여 올렸다. 배를 따서 손질해 썰어낸 산천어 한 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머위 잎에 싸먹었다.

옆에서 고물고물 거리는 아이들 앞으로는 툭툭 터져 분이 뽀얗게 오른 찐감자 한 양푼이 놓였다. 젊은 엄마가 감자를 툭 분질러 머위 잎에 올리고는 막장을 올려 쌈을 싸 입에 넣었다. 보도 듣도 못한 감자 쌈. 거기서는 밥 대신 종종 그렇게 먹는다고 했다. 옛날에 화전민들이 귀한 쌀밥대신 감자를 쪄서 끼니를 삼았는데 맹숭맹숭한 감자만 먹기 물리니 반찬 삼아 막장 얹어 쌈을 싸먹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찐감자로 때우는 저녁이 꽤 익숙한 듯했다. 객기였을까? 낭만이었을까? 젊은 부부는 익숙지 않은 산골 살림이 그저 재미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으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전국을 돌며 남의 집 밥상구경을 하고 있다. 여름 내내 전라남도 섬을 돌며 가는 집마다 민어 부레를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고, 한겨울에 푸릇푸릇 봄동을 찾아 땅끝 마을에서 배를 기다리기도 한다. 파근파근 분 오른 하지감자를 먹을 때마다 그날의 찐감자가 생각난다. 지금까지 받아본 중에 가장 소박했던 한 끼. 그럼에도 다른 어떤 진수성찬보다 기억에 또렷하다. 산수화를 옮겨놓은 듯, 몽환적인 계곡을 옆에 끼고 터를 잡은 작은 집. 화전민도 깃들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산골에서 고물고물 아이 셋을 먹여 키우는 젊은 엄마의 어설프지만 애틋한 모정이 담긴 한 알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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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이명아 |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로 있다. 전통 식문화와 한국의 농식품에 관한 글을 쓰는 매거진 에디터 출신의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로 향토 음식에 바탕을 둔 외식 메뉴 개발과 농식품 마케팅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조사보고서 <강원도 산간지역의 땟거리, 옥수수, 감자, 메밀>을 살펴보고, 감자와 관련된 자신의 추억담을 함께 들려주었다. 이 조사보고서는 강원도 내륙 지역의 자연환경에서 거주했던 이들이 먹고 살았던 ‘옥수수’, ‘감자’, ‘메밀’ 등의 땟거리를 이용해 만들어 먹었던 강원도 지역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전의 모습을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언제 없어져 버릴지 모를 우리의 먹거리들을 소중히 담아 본래의 모습으로 태어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작된 이 조사보고서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조사보고서 <강원도 산간지역의 땟거리, 옥수수, 감자, 메밀>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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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주재연 댓글:

    올해 저는 감자가 풍년입니다.
    직접 재배하여 키운것은 아니고 마을 텃밭에서 키운 감자를 동네 엄마들이 수확기를 맞아 몇알 안되지만 두집에서 감자를 건네주네요.
    항상 마트에서 사먹던것을 나눠주는 친구들^^ 고맙소. ㅎㅎ
    거기다 여름휴가를 강원도 시댁으로 놀러간 아이 친구 엄마언니가 직접 캐온건지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웃으며 한봉지 건네주시네요.
    어찌나 감사하고 달게 먹었는지 몰라요.

    나는야 올해 감자가 풍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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