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5

음식으로 삶을 잇다
대한민국 1세대 음식문화학자, 윤서석의 음식문화 이야기

글 안정윤(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변혜민(민속연구과 학예연구원)

ㅇ 윤서석(104세) 선생님 약력
– 한국 전통음식에 대해 문헌과 현지조사로 음식문화 연구의 기틀을 다진 1세대 음식문화학자
– 1923년 서울 출생
– 경기여고 졸업
– 일본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현 오짜노미즈여자대학) 가사과 졸업
– 중앙대학교 이학박사
– 명지대학교 가정과 교수
– 중앙대학교 가정교육과·식품영양학과 교수
– 중앙대학교 사범대학·생활과학대학 학장
– 대표 저서: 『한국의 음식-역사와 조리』, 『한국식품사연구』,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의 역사』, 『한국의 음식용어』,
『한국의 풍속 잔치』
– 2025년 아주식학논단 평생공로상 수상
* 아주식학논단(亞州食學論壇, Asian Food Study Conference): 아시아 음식문화 관련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세계적 권위의 학회

ㅇ 국립민속박물관 사업 참여 및 기증
– 2016년 ‘민속, 석학에게 듣다’ 강연
– 2018년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식생활 편 자문위원
– 2021년 사진 자료 2,055건 기증

ㅇ 윤서석(104세) 선생님 약력
– 한국 전통음식에 대해 문헌과 현지조사로 음식문화 연구의 기틀을 다진 1세대 음식문화학자
– 1923년 서울 출생
– 경기여고 졸업
– 일본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현 오짜노미즈여자대학) 가사과 졸업
– 중앙대학교 이학박사
– 명지대학교 가정과 교수
– 중앙대학교 가정교육과·식품영양학과 교수
– 중앙대학교 사범대학·생활과학대학 학장
– 대표 저서: 『한국의 음식-역사와 조리』, 『한국식품사연구』,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의 역사』, 『한국의 음식용어』, 『한국의 풍속 잔치』
– 2025년 아주식학논단 평생공로상 수상
* 아주식학논단(亞州食學論壇, Asian Food Study Conference): 아시아 음식문화 관련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세계적 권위의 학회

ㅇ 국립민속박물관 사업 참여 및 기증
– 2016년 ‘민속, 석학에게 듣다’ 강연
– 2018년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식생활 편 자문위원
– 2021년 사진 자료 2,055건 기증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1세대 학자의 연구여정을 듣다
국립민속박물관 조사팀이 선생님의 자택을 처음 찾은 것은 2025년 10월 30일이었다. 선생님께 듣고자 한 것은 책에 담긴 연구 성과를 넘어 연구를 가능하게 했던 경험과 만남이었다. 1923년에 태어난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급격한 생활의 변화를 지나오며 우리 음식문화를 살펴왔다. 선생님의 기억에는 집집마다 김치를 담그고 장을 만들던 일상과 그 생활을 학문의 대상으로 기록해온 과정이 함께 남아 있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한국 음식문화 연구의 한 시기를 이해하고, 지식을 만들어간 삶을 만나는 일이었다. 한편 선생님은 2021년에 조사 자료 2,055건을 국립민속박물관 아카이브에 기증하였는데 그 기록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선생님들이 민속조사를 다니시던 모습을 말씀드리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선생님께서 처음 떠올린 것은 함께 민속조사를 다녔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는 동료들과 마을을 함께 찾아다니며 열정을 쏟았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지프차를 타고 진흙길을 지나며 생활문화 현장을 찾아 기록하려고 애쓰던 민속학자들의 성의와 수고를 잊지 않았다. 당신의 연구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모습에 마음이 머물렀다.
음식 이야기가 시작되자 선생님의 말씀에는 힘이 실렸다. 장에서 김치로, 떡에서 마을의 밥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말씀하시는 열정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백설기의 가루를 어떻게 얹어야 하는지 설명할 때에는 손의 섬세한 기술이 되살아났고, 조사 현장에서 맛본 생선 음식을 이야기할 때에는 처음 그 맛을 만났던 놀라움이 전해졌다.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이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가족의 밥상을 차린 사람, 마을의 생활을 함께 조사한 동료, 옛 문헌을 읽도록 도와준 선배와 오래 공부를 이어온 제자들, 선생님은 그들을 기억하며 우리 음식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104세의 원로 학자에게 오래도록 남은 것은 지식의 깊이와 더불어, 그 지식을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마을의 한 끼가 가르쳐 준 것
선생님이 음식의 문화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에는 민속학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두현 선생님은 가정학에서도 음식의 문화를 연구해야 한다고 권했다. 1960년대 후반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발간을 위한 민속조사팀이 꾸려지자 음식 분야를 함께 조사하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양재연, 한상복, 김동욱, 이두현 선생님 등을 떠올리며, 한국의 민속을 기록하려고 애쓰던 당시의 열정에 거듭 감탄했다.
그 길에서 배운 것은 생활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음식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가정생활을 합리적으로 꾸리는 일에 더해, 그 음식이 어떤 환경에서 생겨났으며 우리의 풍속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묻게 되었다. 해마다 한 지역씩 살펴보던 현장 조사는 익숙한 음식도 새롭게 보게 했다. 서울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조리 방식이 다른 마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다.

그 가운데 선생님이 오래 기억한 것은 경상북도의 ‘노물’이라는 마을에서 먹은 생선 음식이었다. 조사 중 묵었던 집의 주인은 이른 새벽에 나가 작살로 물고기를 잡았다. 문헌에서 공부하던 어업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다는 사실부터 선생님에게는 감동이었다. 집의 안주인은 잡아온 물고기를 마당의 큰 솥에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선생님의 기억에 그 음식은 서울에서 익숙하게 보던 생선조림과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저렇게 끓여도 음식이 될까 싶었지만 먹어보니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양념을 넉넉히 넣고 졸여야 생선 음식이라는 생각이 그 한 끼 앞에서 흔들렸다. 선생님은 그때의 자신을 돌아보며 ‘우물 안’에 있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늘 먹던 음식이 연구자에게 자신의 시야가 좁았음을 알려준 셈이다. 익숙한 맛을 기준으로 다른 음식을 헤아리던 마음에, 새로운 맛을 받아들일 자리가 생겼다.다른 해안 마을에서는 물회를 처음 접했다. 갓 잡은 생선으로 물회를 한 사발 먹어야 기운이 난다는 어부의 이야기도 들었다. 선생님의 기억 속 물회에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음식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일과 생활을 함께 보아야 했다. 생선을 잡는 기술과 먹는 방식이 이어지고, 가까운 물에서 얻은 재료가 그 집의 밥상이 되는 과정. 선생님이 말한 식생활 문화의 ‘저변’은 그렇게 ‘구체적인 생활’ 속에 있었다.

1977년 경북 노물老勿(윤서석 기증)

빨간 김치와 진달래색 김치
선생님은 한국에서 중요한 음식문화 연구로 김치와 떡에 대해 언급하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의 세대는 집집마다 일 년 열두 달 김치를 담갔다고 한다. 추울 때의 김치, 봄과 여름의 김치, 초가을의 김치를 각각 담아 먹으며 살았다. 떡도 계절과 집안의 행사에 따라 늘 만들었다. 따라서 이 음식들은 어느 날 연구 주제로 정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자란 선생님은 경상남도 함양의 시댁에서 김장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배추의 생김새부터 서울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속을 넣기 어려운 배추에 젓국과 고추, 마늘을 함께 버무렸다.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는 모습도 낯설었다. 하지만 먹어보니 그곳의 김치는 그 나름으로 맛있었다. 선생님은 배추의 모습과 젓갈의 맛, 버무리는 방법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서울 김치의 국물에 관한 기억도 남아 있었다. 선생님은 그 빛깔을 ‘진달래색’이라고 표현했다. 김치보시기에 담긴 국물의 은은한 색을 떠올리는 말에서, 연구 대상이 되기 전 밥상에서 만났던 음식의 모습이 느껴진다. 함양의 진한 김치를 맛보면서는 그곳의 젓갈과 양념이 어우러지는 맛을 받아들였다. 어느 한쪽을 기준으로 다른 한쪽을 판단하기보다, 고장마다 다른 맛이 생겨난 사정을 살피게 된 것이다.
또, 주목한 것은 지역의 산물과 기후였다. 어떤 배추가 나고, 어떤 젓갈을 구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로 간을 해야 두고 먹을 수 있는지에 따라 김치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김치의 다양성은 지역의 생활 조건에 응답하며 쌓여온 결과였다. 음식 비교 연구에서도 행정구역만으로 나누기보다 기후의 배경을 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른 나라의 음식과 비교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하였다.외국에 김치를 소개하는 방법과 관련해서는, 붉은 빛깔만 보여주기보다 여러 종류의 김치를 알리고, 채소와 양념의 재배, 젓갈과 고추의 보급 등 그 음식이 생겨난 배경을 함께 설명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각각의 김치에 어울리는 그릇을 마련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이 제안하신 김치 전시에는 김치의 맛과 모양, 그것을 담는 그릇, 그 뒤에 놓인 생활이 함께 있었다.
한편 선생님이 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쓴 표현은 ‘청명한 맛’이었다. 콩간장과 콩된장으로 끓인 국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의 감각을 떠올렸다. 장류가 가정에서 만드는 식품에서 공장에서 생산하는 식품으로 옮겨가던 때에도, 콩간장을 제대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회고했다. 산업이 현대화되는 가운데 전래의 맛을 이어가려면 재료와 그 재료를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선생님에게 음식의 미래는 오래된 솜씨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와 이어져 있었다.

떡가루를 사뿐하게 얹는 마음
떡 이야기에서 선생님의 설명은 더욱 세밀해졌다. 백설기를 잘 찌려면 고운 가루를 시루에 ‘사뿐하게’ 얹어야 한다고 했다. 가루를 한꺼번에 쏟아 넣으면 기공이 막혀 고운 떡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루의 습기와 불의 세기, 찐 뒤 잠깐 식히는 일까지 헤아려야 했다. 하얗고 반듯한 떡 한 덩이 안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손기술이 들어 있었다.
그 설명을 따라가면 떡을 만든 사람의 수고가 보인다.
쌀을 씻어 가루를 내고, 알맞은 습기를 살피고, 시루에 조심스럽게 안치는 일. 어린아이의 백일과 돌을 위해 고운 떡을 마련하던 사람들은 그렇게 손끝으로 좋은 날을 준비했다. 선생님은 일상에서 간식으로 먹던 떡과 축하 자리에 놓는 떡, 제례에 올리는 떡이 용도에 따라 정성과 형식을 달리했다고 회고했다. 같은 떡이라도 그것을 먹는 자리와 바라는 마음이 달랐다.
선생님은 흰 떡과 쑥색 떡을 한데 붙인 모양의 개피떡을 기억하였다. 두 색이 어울린 모습을 남녀의 화합과 연결해 설명하였다. 혼례 때 함을 받으며 찌는 봉채떡의 두 켜에서도 부부가 화합하기를 바라는 뜻을 읽었다고 한다. 조사팀이 개피떡의 모양을 묻자 선생님은 그림을 그려 설명하였다. 오래 보아온 음식의 모양을 전하려는 마음이 종이 위에 남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선생님이 살아온 생활과 그 안에서 익힌 해석을 보여준다. 떡에 담긴 뜻은 먹는 사람들의 바람과 가까웠다. 아이가 무탈하게 자라기를, 혼인한 두 사람이 잘 살아가기를, 집안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떡을 만들던 사람들에게 모양과 빛깔, 쌓는 켜는 그저 보기 좋게 꾸미는 요소만은 아니었다. 축하와 기원을 음식으로 전하는 방식이기도 했다.선생님은 사람들이 떡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가볍게 이야기할 때 속상했다고 털어놓았다. 떡을 오래 연구한 이에게 그것은 우리를 먹여 살려온 곡물 음식이자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함께한 음식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면 흔히 지나치던 백설기의 고운 결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부드러운 떡의 표면 너머로 그것을 잘 만들려고 애쓴 손과, 그 떡을 놓고 누군가의 앞날을 빌었던 마음이 떠오른다.

옛 책을 펼치게 해준 사람들
생활에서 보고 먹고 들었던 것을 학문으로 정리하려면 문헌의 근거가 필요했다. 선생님은 김치와 떡을 정리하면서 『수운잡방』,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등을 바탕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익숙한 음식이 옛 기록에 어떤 이름과 방법으로 남아 있는지 살피는 일이었다. 생활 속 기억과 문헌의 기록을 함께 들여다보며 음식의 변화를 이해하려고 했다. 옛 책을 지금처럼 손쉽게 복사하거나 찾아볼 수 없던 시절, 자료를 구하는 일부터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선생님은 김동욱, 김계숙 선생님의 도움으로 필요한 고문헌을 필름에 담고 현상하여 제본했던 일을 기억했다. 그 덕분에 조선시대의 식품을 문헌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연구를 위해 책을 펼칠 때마다, 그 책이 자신의 손에 오기까지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당시 그 도움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던 마음을 돌아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떠올린 것은 감사였다.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남기려 했다. 함께 조사하던 동료를 기억하는 마음과 옛 문헌을 읽게 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학문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몫을 오래 기억하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대한가정학회의 초기에 애쓴 조기홍, 표경조, 최이순, 김낙신 선생님 등을 떠올렸다. 학회가 열리는 날, 회원들을 기다리며 문턱에 서 있던 최이순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교육한 제자들이 후배학자로 성장하면서 매달 모여 오랫동안 연구를 계속했다고 회고하였다. 선생님은 연구의 여정과 성과를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공부했다는 대목에는 후학들과 나눈 삶의 온기가 남아 있다.

인터뷰 장면

현장에서 평생을 바친 사람을 찾아서
두 차례의 면담에서 선생님이 후학들에게 전한 말은 구체적이었다. 음식을 제대로 조사하려면 현지에 가야 한다고 했다. 자기 손으로 김치를 버무리고, 장을 담그고, 가족을 잘 먹이려고 애쓰며 살림해온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했다. 선생님 자신은 보고 먹고 들으며 공부했고, 그것을 문헌으로 정리한 사람이라며, 실제 솜씨를 지닌 사람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그 말을 새겨보면 음식문화의 기록에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전문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평생 누군가의 밥상을 차려온 사람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손에 익은 일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 길게 설명하지 않았던 사람, 계절이 오면 늘 하던 대로 김치를 담그고 떡을 만들었던 사람에게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의 경험에는 책만으로는 다 알기 어려운 생활의 판단과 기술이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을 찾아서 물어 대담을 하세요.” 연구를 오래 해온 학자가 건넨 이 말은, 다시 생활의 자리로 걸어가라는 당부로 들린다.
윤서석 선생님의 구술에 남은 것은 한 학자의 연구 여정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진흙길을 함께 다닌 동료, 새벽에 물고기를 잡아온 집주인, 맛있는 한 끼를 끓여낸 안주인, 옛 책을 읽도록 도와준 후배, 오래 함께 공부한 제자들이 그 이야기 안에 있다. 선생님의 말을 따라가며 우리 음식문화를 읽다 보면, 밥상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우리가 이어서 기록해야 할 삶도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윤서석 선생님의 삶도 그곳에 있었다.

민속소식 제318호  (202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