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1

한 장의 종이에 숨겨진 윷판의 비밀
보존과학으로 다시 읽는 놀이와 수납, 휴대의 지혜

글 전지연(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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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민속5900)과 윷(민속5899)


2026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보존과학실에서는 《보존과학이 밝혀낸 종이 윷판의 비밀》 전시를 선보인다.
9월 15일부터 2027년 8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보존처리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새롭게 밝혀낸 종이 윷판의 구조와 사용 방식, 가공 재료 등을 소개하는 자리다. 오랫동안 평면의 놀이판으로 알려졌던 종이 윷판이 딱지처럼 접어 작은 윷을 안에 넣고 보관하거나 휴대할 수 있는 구조였음이 밝혀지면서 이번 전시는 시작되었다.

평면의 윷판에서 ‘접히는 생활도구’로
전시의 주인공인 종이 윷판은 오늘날 익숙한 네모난 말밭과 달리 둥근 말밭을 지니고 있다. 근대 이전의 회화와 문헌에서는 이처럼 둥근 형태의 윷판이 확인되며, 오늘날 익숙한 네모난 윷판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종이 윷판은 1976년 박물관에 들어온 뒤 오랫동안 펼쳐진 상태로 보관·전시되어 왔다. 그러다 보존처리를 위해 상태를 면밀히 조사하는 과정에서 뒷면에 남은 오염 흔적과 여러 방향의 접힘선이 확인되었다. 평범한 얼룩처럼 보였던 흔적은 이 윷판이 과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흔적에서 출발해 종이 윷판의 구조와 쓰임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 과정은 ‘보존처리’가 손상된 부분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료에 남은 흔적을 바탕으로 과거의 제작 기술과 사용 방식을 밝혀내는 연구이기도 함을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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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민속5900) 앞면과 뒷면

먼지가 아니라, 사용의 흔적이었다
윷판 뒷면에는 네모와 세모 모양으로 유난히 짙어진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곳이 접었을 때 바깥으로 드러났던 부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윷판의 형태를 흰 종이에 옮겨 여러 방향으로 접어 보았다. 그러자 종이는 바람개비 모양을 거쳐 마지막에는 딱지처럼 가지런히 접혔다. 오랫동안 평면형 윷판으로만 여겨졌던 자료가 본래 접고 펼칠 수 있는 구조였음이 이 과정을 통해 확인되었다.

놀이·수납·휴대, 한 장에 담다
접힌 윷판 안쪽에는 작은 공간이 생긴다. 종이 윷판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온 소형 윷은 이 공간에 넣기에 알맞은 크기다.
펼치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즐기는 놀이판이 되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윷을 안에 넣어 접은 뒤 간편하게 보관하거나 가지고 다닐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장의 종이가 놀이판이 되었다가 수납과 휴대를 위한 도구로 바뀌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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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윷판 접기 가상 재현 과정

한 장의 종이로 윷판 접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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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종이로 윷판 접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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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윷판의 재료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
현재의 종이 윷판은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고 단단하게 굳어 있다. 성분을 분석한 결과 종이 표면에서 단백질 성분이 확인되었다. 전통적으로 종이를 튼튼하게 하고 물과 마찰에 쉽게 손상되지 않도록 콩즙을 바른 사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윷판 역시 반복적인 사용에 견딜 수 있도록 콩즙과 같은 단백질계 재료로 표면을 가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채색 안료에서도 제작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확인되었다. 녹색 부분에서는 서양에서 개발된 합성 안료인 ‘에메랄드그린’이, 파란색 부분에서는 ‘프러시안블루’가 검출되었다. 특히 에메랄드그린의 국내 유입과 사용 시기를 고려하면, 이 종이 윷판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둥근 윷판의 형태와 종이접기 구조에 당시 새롭게 유입된 서양 안료가 함께 사용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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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윷판 녹색 안료의 현미경 사진(에메랄드그린)

종이 가공 물질의 퓨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분석기(FT-IR)* 분석 결과(단백질 검출)
* 퓨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분석기: 간섭계를 사용하여 위상 변조한 적외선 영역의 백색광을 사용하는 적외선 분광법의 한 종류

‘고치는 일’에서 ‘읽어내는 일’로
보존처리에서는 표면의 먼지와 오염을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들뜬 종이는 천연 풀로 다시 붙였으며, 결손부는 색을 맞춘 닥종이로 보강했다. 하지만 종이 윷판의 사례는 보존처리가 단순히 손상된 부분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작은 얼룩 하나, 접힌 자국 하나도 없애야 할 흔적으로만 보지 않고 ‘왜 이런 흔적이 남았을까’를 살피다 보면, 그 안에서 과거의 사용 방식과 제작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재료 분석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를, 안료 분석은 어느 시기에 제작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때로는 손상과 오염조차도 자료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 주는 중요한 기록이 된다.

종이를 접어 생활을 담다
전시는 종이 윷판과 비슷한 접힘 구조를 지닌 실첩과 골무상자도 함께 선보인다. 바늘과 실, 작은 천 조각 등을 넣어 두었던 실첩과 골무상자 역시 한 장의 종이를 여러 방향에서 겹쳐 접어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쓰임은 종이 윷판과 다르지만, 평면의 종이를 입체적인 수납 공간으로 바꾸고 필요할 때 다시 펼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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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실첩(민속24882) / 접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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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첩(민속31702) / 접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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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상자(민속24905) / 접힘 구조

‘롤 박스Roll Box’ 방식을 적용한 실첩(민속31684)

또 다른 실첩에는 종이를 비틀어 상자를 열고 닫는 ‘롤 박스Roll Box’ 방식이 적용되어 있다. 납작하게 접혀 있던 종이는 손의 움직임에 따라 입체적인 상자로 바뀌고, 다시 평면으로 돌아간다. 제한된 재료로 여러 수납 공간을 만들고 필요할 때 펼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구조에서는 생활 속 필요를 해결한 옛사람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도면과 재현물을 통해 이러한 구조와 접힘 과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관람객도 전시 리플릿 ‘내 손안에 윷판’을 활용해 직접 윷판을 접어 볼 수 있다. 평평한 종이가 바람개비 모양을 거쳐 딱지가 되고, 그 안에 작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손으로 따라가다 보면 유리장 안의 유물도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전시 기간에는 리플릿을 접은 관람객에게 작은 밤윷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마련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를 찾아 전시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고, 직접 접은 윷판 안에 작은 밤윷을 넣어 가져가 보는 재미도 누려보길 바란다.

전시를 보고, 내 손안의 윷판도 만들어 보자!

전시 리플릿 ‘내 손안에 윷판’을 따라 종이 윷판의 접힘 구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관람객 선물 증정 이벤트
전시 리플릿 ‘내 손안에 윷판’을 직접 접은 관람객에게 나무윷 1세트를 준다.
기간: 2026. 9. 29.(화)~소진 시까지(공휴일 제외)
화~금 10:00~11:00, 13:00~14:00
※ 하루 20개 한정

전시 리플릿 ‘내 손안에 윷판’(좌) / 전시장 내 체험 공간(우)

《보존과학이 밝혀낸 종이 윷판의 비밀》

기간: 2026. 9. 15.(화)~2027. 8. 22.(일)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1층 열린 보존과학실
관람료: 무료
※ 빛에 민감한 소장품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전시 기간 중 일부 자료는 복제품으로 교체하여 전시

《보존과학이 밝혀낸 종이 윷판의 비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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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학이 밝혀낸 종이 윷판의 비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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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소식 제318호  (202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