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1

특별전 《제로ZERO :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으로의 초대
낯섦을 넘어, 삶을 다시 만나는 길

글 하도겸(전시운영과 학예연구관 대우)


분단 이후 80여 년의 시간은 남과 북 사이에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서로의 삶을 바라보는 기억과 경험의 간극을 만들어 왔다.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체제와 환경 속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 왔고, 그 시간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북한을 점차 낯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산과 강이 경계 앞에서 멈추지 않듯,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형성 된 문화 역시 쉽게 단절될 수는 없다. 생활 속에 축적된 기억과 감각, 삶의 방식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이어져 왔다.

가장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만나는 북한
특별전 《제로ZERO: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북한을 특정한 정치적 시선이나 이념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민속이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시선을 통해 만나고자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북한 지역 민속자료를 중심으로 분단 이전부터 이어져 온 생활문화의 다양성과 연속성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오늘의 관람객과 나누고자 했다.

민속은 거창한 사건보다 평범한 삶을 기록한다. 이름난 인물보다 이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하루를 기억한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사용했던 그릇, 가족의 살림을 담았던 가구, 글을 배우고 마음을 다스리던 문방구,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사용했던 생활도구들은 모두 한 시대 사람들의 삶을 증언한다. 전시에 소개되는 유물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과 시간이 머물렀던 삶의 흔적이다. 그 안에는 한 개인의 기억과 한 공동체의 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만날 수 있는 진면목
전시 제목인 ‘제로ZERO’는 단순히 비어 있음이나 없음의 의미가 아니다. 여기에서 제로는 불교적 의미의 ‘공空’과 연결된다. 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고정된 생각과 집착을 내려놓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열린 상태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북한에 대한 인식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북한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제한된 정보와 경험 속에서 형성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제로 베이스Zero Base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선입견을 잠시 비워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출발을 의미한다. 익숙한 판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대상의 본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대상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북한 역시 그러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오랜 시간 가장 멀게 느껴졌던 공간이다. 그 거리를 만든 것은 단지 지리적 경계만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전시는 민속이라는 창을 통해 그 거리를 조금씩 좁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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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전경

지역에 담긴 북녘의 삶과 문화
북한의 생활문화는 한반도 북쪽의 자연환경과 지역적 특성속에서 형성되었다. 황해도와 평안도의 넓은 들판은 농경과 관련된 생활문화를 발전시켰고, 함경도의 산과 바다는 그곳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지혜를 만들어 냈다. 개성은 고려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이어 온 지역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은 서로 다른 생활문화를 만들었지만, 그 바탕에는 같은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공유해 온 문화적 토대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금강산은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금강산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기억해 온 문화적 공간이다.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표현했던 금강산은 오랫동안 한민족의 정신과 감성을 담아 온 장소였다. 오늘날에도 금강산은 분단 이전의 기억과 공동의 문화적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동의 문화유산을 다시 바라보는 중요한 과정
이번 전시는 남과 북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변화해 온 삶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이어져 온 공통의 문화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문화의 다양성은 서로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풍요로운 유산이다.

박물관은 과거의 물건을 보관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박물관은 기억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시간과 경험을 만나는 공간이다. 특히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민속자료를 통해 북녘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공동의 문화유산을 다시 바라보는 중요한 과정이다. 유물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기억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를 묻는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만나게 될 것은 낯선 북한이 아니라 오랫동안 같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또 하나의 삶이다. 소반과 반닫이, 벼루와 항아리, 금강산의 풍경 속에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기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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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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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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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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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박천 반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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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반

‘제로ZERO’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익숙한 생각을 잠시 비우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 새로운 이해가 시작된다. 이 전시가 북한 지역의 민속문화를 이해하는 자리를 넘어, 우리가 함께 이어 온 문화적 뿌리와 인간적인 정서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남과 북 사이에는 여전히 긴 시간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이어져 왔고, 문화는 기억을 잃지 않았다. 그 기억을 지키고 이어 가는 곳, 남과 북 사이에 박물관이 있다.


남과 북, 우리에게 ‘역사’란 단 한순간도 홀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들의 축적이다. ‘관계’란 때로는 서툴고 낯설지만, 서로가 있어 위로가 되는 인연이다.
‘통일’이란 서로 다른 삶의 결을 존중하며 같은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긴 여정이다. ‘내일’이란 다시 서로를 마주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날들의 연속이다. 남과 북 모든 사람들이 이젠 행복했으면 좋겠다.

특별전 《제로ZERO: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

전시 기간: 2026. 8. 12.(수)~2027. 2. 14.(일)
전시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
전시 내용: 북한 지역 민속자료를 통해 살펴보는 북녘의 삶과 문화
전시 자료: 해주항아리 88점, 평양성도 8폭 병풍 등 316건 346점

민속소식 제317호  (202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