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놀이
K-민속놀이의 귀환,
경찰과 도둑
글 이상호(놀이연구소 풂 소장

‘경찰과 도둑’ 놀이에 빠진 2030
첨단 AI시대에 1990년대에 유행하던 ‘경찰과 도둑(이하 경도)’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주로 놀았다면 지금은 20~30대가 주인공이다. 유행은 중고 거래 앱인 <당근마켓>(이하 당근)에서 시작되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경도’할 사람을 당근 생활 게시판에 올리고 여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여기에는 모일 장소, 날짜와 시간, 인원(보통 30명 정도), 준비물 및 주의사항이 게시되어 있었다. 정한 날짜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대부분 초면이었고 주최자의 지시에 따라 두 편으로 나눠 놀이가 펼쳐졌다. 이렇게 시작된 경도가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경도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은 유명 래퍼 이영지다. 그는 자신의 SNS로 참여자를 모집했는데 놀랍게도 약 10만 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청한 것은 주최자가 유명 연예인이란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당근을 통해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다는 점, 경도가 갖는 재미,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 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이영지는 이 중에 100명을 선발해 놀이를 했고 이는 유튜브를 통해 스트리밍되었다.
아이들 경도 VS 어른들 경도
경도는 말 그대로 ‘경찰’이 ‘도둑’을 쫓는 술래잡기 유형의 놀이다. 이 놀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전후로 전국에서 아이들이 즐기던 놀이였다. 물론 요즘 20~30대들의 경도(이하 어른 경도)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같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자기들끼리 즐기던 경도는 우선 인원이 그리 많지 않다. 보통 4명 이상에서 10명 내외로 장소는 아이들이 평소에 노는 곳이다. 주로 놀이터에서 했는데 이는 놀이기구를 이용해 감옥과 아지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 경도는 인원이 훨씬 많은데 일상의 놀이가 아니라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역할에 따른 인원 배분에도 차이가 난다. 어른 경도에서는 보통 2/3 정도로 도둑이 많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대등하거나 도둑이 1~2명 정도 많다. 놀이는 조건이 공평해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른 경도의 경우는 쫓고 쫓기는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어느 편이 이겼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에 각 편의 인원 수는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인원 구성에서 보듯이 어른 경도에서 승패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은 일반적인 놀이의 문법과 다르다. 이는 놀이에서 이기고 지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소풍(요즘 현장학습)이나 운동회를 기다리거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구마시로 도루熊代享’가 지은 『쾌적한 사회의 불편함』 (생각지도, 2026)에서 지적한 대로 잘 갖춰진 사회 시스템,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쾌적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반복되고, 만족보다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에서 보여준 집단 신명과 같은 출구가 필요한 것이다. 경도에서 쫓고 쫓기는 단순한 활동은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탈출구로 작용한다. 뭔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자 하는 데 짧은 시간에 이를 충족하려면 격렬한 신체활동이 제격이고 어른 경도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경도의 기본 규칙은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세부 규칙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고 심지어 그때그때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경우 ‘아지트’와 ‘아기돌보기’가 그것이다. 아지트는 경찰이 잡을 수 없는 공간이고 들어갈 수 있는 인원도 정해져 있다. 아지트가 있는 경우 경찰이 그 앞에만 지키는 것을 ‘아기돌보기’라고 하고 반칙에 해당한다. 또한 도둑을 구해주는 것을 ‘탈옥’이라고 하는데 경도에서 기본 규칙에 해당한다. 그런데 잡힌 도둑을 치면 해당되는 사람만 살려주는 곳도 있고, 잡히지 않은 도둑이 감옥으로 들어가 ‘탈옥’을 외치면 모두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른 경도의 경우 모두 살려주는 규칙이 없는데 이는 제한 시간과 관련 있다. 놀이할 때 시간을 정하는 양상은 경찰이 도둑을 모두 잡을 때까지 하는 경우와 제한 시간을 두는 경우이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놀이연구회의 현장조사에 따르면 서울, 경기도, 전라도, 충북 등의 경우 경찰 편이 도둑 편을 모두 잡아야 끝난다. 반면 2011년 교사 박관수의 현장조사에서는 강원도 횡성군의 경우 15분으로 제한 시간을 둔다.
경도에서 대체로 제한 시간을 두지 않는 곳이 더 많은 이유는 아이들끼리 놀 때 시간 개념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제한하면 그 시간 안에 잡기 위해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면 도둑들도 덩달아 빨라지므로 전체적으로 역동성이 살아난다. 무제한일 경우 경찰이 어슬렁거리면 놀이가 느슨해지기에 숨어 있던 도둑이 나와 약을 올리며 경찰을 자극하기도 한다. 어른 경도의 경우 대부분 주최자가 있어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하기에 참가자 모두가 바삐 움직인다.
그밖에 경찰이 도둑을 잡아 감옥에 가둘 때 경찰이 도둑의 신체 부위를 건드리면 잡혀서 순순히 따라가는 경우가 있고 끌고 가서 감옥에 가두는 경우도 있다. 억지로 끌고 갈 경우 중간에 경찰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것도 규칙으로 허용되는데 이때 경찰 2~3명이 달려들어 이동시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 쫓고 쫓기기와 몸싸움이 결합된 형태로 훨씬 격렬하다. 그러나 어른 경도에서는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경찰의 손에 닿으면 감옥에 순순히 갇히는 방식을 취한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노는 경우와 이벤트로 행해지는 어른 경도는 큰 틀에서는 같지만 인원, 시간, 공간, 세부 규칙 등이 다르다. 놀이는 그곳이 어디인지, 누구랑 노는지, 날씨 여부 등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인류 보편의 놀이가 결합된 경도
그럼 경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일까?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 앞 세대의 지적, 문화적 성취에 기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놀이가 그렇고 경도도 예외는 아니다. 경도는 크게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이라는 인류 보편의 놀이가 결합된 놀이다. 술래잡기는 술래가 나머지 사람을 잡는 것이고, 숨바꼭질은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 경도는 술래가 1명이 아니라 여럿이란 점, 숨은 곳을 찾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술래잡기 유형 중에 달리기가 중심이 된 놀이는 다양하다. 술래를 피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있는 놀이로 ‘얼음땡’, ‘앉은뱅이’, ‘색깔찾기’가 그것이다. 아이들 경도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아지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무한정 쫓긴다는 것은 도망치는 입장에서 숨이 막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어른 경도에서는 숨는 과정이 부각되지 않는데 아이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도둑의 속성이 숨어서 몰래 움직이는 것이므로 경찰에게 들키지 않고 구석에 숨어 있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경찰과 도둑 놀이

경찰과 도둑 놀이 포로들
경도가 다른 쫓고 쫓기는 놀이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놀이가 가상을 전제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놀이 이름에서 보듯이 경찰 또는 도둑 역할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결정되고 그 상황의 연장선으로 감옥이 있다. 이와 같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전개되는 놀이를 역할놀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소꿉놀이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이 하는데 가상을 현실로 받아들여 쉽게 몰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세가 넘으면 시시해한다. 소꿉놀이와 같이 엄마 역을 맡은 사람이 실제 엄마처럼 행동하기는 방법보다 가상의 상황에 따른 역할을 수행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사냥을 모의하는 포수놀이, 사또와 이방, 포졸과 백성 그리고 도둑이 있는 도둑잡기가 그 예이다. 경도는 도둑잡기에서 설정한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다른 점은 전통 방식의 도둑잡기는 쫓고 쫓기는 것이 아니라 맡은 역할을 그럴싸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심이다. 도둑, 포졸, 원님 등 각자가 ‘포졸이 도둑을 잡는다’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구현해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도둑잡기는 일제강점기에 당시 경찰을 순사로 불렀기에 ‘순사놀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다. 방식은 순사 편과 도둑 편을 나눠 도둑이 들었다고 가정하고 도둑은 숨고 순사는 수숫단을 허리에 차고 경찰 흉내를 내면서 범인을 찾아 붙잡아 온다. 그러면 순사 가운데 한 사람이 재판관이 되어 도둑의 죄를 묻고 다스리는 놀이다. 같은 맥락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졌던 ‘조조잡기’가 있는데 삼국지라는 소설 상황이 놀이의 배경이다. 이런 역할놀이는 사회 변화와 함께 급속도로 소멸했다. 이유는 가상의 상황을 모의하고 몰입하기에는 TV나 인터넷 등에서 정보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어른 경도는 전통 방식의 도둑잡기라는 역할놀이의 큰 줄거리를 가져오고 개개인의 역할 구현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경찰 집단, 도둑 집단으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각 집단의 중심 역할인 도둑은 도망치고 경찰은 잡는다는 뼈대만 남아 술래잡기 형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게다가 전국 곳곳 놀이터나 공터에서 아이들끼리 즐기던 경도도 자생력을 잃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이 놀이를 했던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해 즐기는 것이다. 경도에 참가한 사람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은 것은 되살린 어린 시절의 추억과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을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성인 놀이 문화로서 주목해야 할 경도
시대와 사회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놀이도 사회 구성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밖에 없다. 어른 경도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놀이 주체가 바뀌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긍정적인 성인 놀이 문화로서 주목해야 한다. 달라진 환경에서 놀이가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의 사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놀이문화가 단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는 데 있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소개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한 비석치기, 딱지치기 등의 놀이가 시간과 함께 빠르게 잊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경도를 자세히 소개한 한 블로그에는 당근 앱을 이용해 지속적인 모임으로 조직화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경도에 참가했던 사람들과 모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도를 할 장소와 조건을 안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7시 ○○공원에서 주기적으로 열린다면 어떨까? 그리고 짝수 달은 20~30명, 홀수 달은 40~60명으로 참여자의 폭을 늘리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삶의 질은 더 나아질 것이다.
민속소식 제316호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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