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큐레이션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안경, 망원경, 자명종으로 살펴보는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

글 편집팀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서양 문물이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다.
그중 대부분은 오늘날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서양에서 발명된 물건들이 우리나라에 어떤 경로를 거쳐 도입되었을까? 우리 선조들은 서양에서 만들어진 낯선 물건들을 어떻게 수용했을까?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쓴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인문학적 호기심을 풀어주는 책으로 제격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에 들어온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 등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중심으로 이들 문물의 도입 경위와 수용 과정을 다양한 문헌을 통해 소개한다. 어떤 물건은 편리함과 유용성이 알려져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확산되었고,
어떤 물건은 완전히 조선화 되어 조선 사회에 뿌리내렸으며, 어떤 물건은 호기심 있는 양반 소수의 완호품玩好品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독자들은 다섯 가지 물건의 역사를 통해 조선 후기에 과학, 종교 등의 서양 문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살펴보고, 이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세계 인식·과학 인식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안경 망원경 자명종으로 살펴보는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
강명관 ㅣ 2015. ㅣ 휴머니스트

제1장 안경, 조선인의 눈을 밝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안경의 도입과 조선 선비들이 안경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애용했는지 그리고 조선의 장인들이 직접 안경 만들기에 나선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안경은 책 읽기를 즐기는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선물과 같았다.
안경은 다른 문물에 비해 효용성이 컸던 만큼 파급 속도도 매우 빨랐다. 안경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호민이 1606년에 쓴 <안경명眼鏡銘>이었으며, 이 무렵 안경의 존재가 조선에 알려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안경의 정확한 도입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최초로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17세기 문인 임상원은 ‘등불 아래서 유리안경을 쓰고 책을 보면서 이 작은 물건이 자신의 흐린 눈에 광명을 가져다주었다’며 안경을 찬양했다. 이처럼 조선 선비들은 자신의 시력을 되찾게 해주는 안경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19세기 무렵에는 양반은 물론 양민 특히 장인들까지 안경을 애용할 정도로 보편적인 물건이 되었다.

제2장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두 번째 장에는 망원경의 도입과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멀리 있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망원경은 조선을 이끌고 있던 위정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에서는 망원경 도입 경위와 어떻게 활용했는지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특히 망원경은 천문학, 역법과 관련이 있는 만큼 임금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반응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숙종이 사신을 파견해 서양 역법을 배우도록 한 것과 망원경을 국가 차원에서 수입한 이야기, 영조가 망원경을 부수어버린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우리나라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홍대용과 망원경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이 대목을 통해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명석함과 그들이 얼마나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망원경

제3장 유리거울에 비추어 본 조선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리거울이다. 이 장에서는 유리거울 도입 전 거울, 즉 청동거울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설이 곁들어져 있어서 더 흥미롭다. 청동거울부터 유리거울까지 우리나라 거울 관련 인문학 입문서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제3장은 유리거울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다수 실려 있어 다른 장에 비해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것도 특징이다. 사신으로 북경을 방문한 이덕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가게와 지나는 사람이 형형색색으로 다 비치니, 눈이 황홀하여 이루 볼 수가 없다’라고 기록한 유리거울을 접한 소감은 우리 선조들에게 유리거울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덕무뿐 아니라 19세기 내내 북경을 방문하고 여행기를 쓴 사람들은 예외 없이 북경에서 팔리는 유리거울과 거울 가게에 대해 놀라움을 갖고 언급했다고 하니 유리거울이 신기한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제4장 자명종이 맞닥뜨린 조선의 시간
네 번째 소개하는 물건은 자명종이다. 시간은 시계가 보편적으로 보급되기 전까지는 ‘전문적인 지식’에 속하는, ‘소수가 장악하고 있는 정보’였다. 이 책은 조선의 시간과 자명종 도입 후 그 시간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세종대왕을 떠올릴 것이다. 그분의 가장 큰 공적은 훈민정음 창제이지만 물시계 해시계를 발명해 시간이라는 전문적인 지식을 백성과 공유한 공적 역시 빠질 수 없다.
시간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제4장은 시간의 의미와 시계의 역사, 자명종의 발명 그리고 자명종의 도입과 활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처음 자명종을 언급한 우리나라 사람은 이수광으로 자신의 저서인 <지봉유설>에서 <속이담>이라는
책을 인용해 자명종을 소개했다. 자명종을 최초로 도입한 것은 1631년 망원경과 함께 자명종을 인조에게 선물한 정두원이다. 이후 자명종은 매우 귀한 물건으로 취급되었으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자명종은 북경을 방문한 사신들과 부산의 왜관을 통해 유입되어 확산되었다.

19세기 <문방도> 병풍에 그려진 자명종

제5장 양금, 국악기가 된 서양 악기
다섯 번째 이야기는 앞서 소개한 네 가지 물건과 비교해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양금이다. 저자는 양금을 소개하기에 앞서 ‘크로스오버Crossover’를 언급했다. 양금은 본래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분명 서양 악기지만 우리 음악에 맞게 연주법을 개발했기 때문에 최초의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겠다.
양금 도입은 18세기 후반 무렵이었다. 다른 물건에 비해 늦게 도입된 낯선 서양 악기 양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최초로 양금을 조율하고 우리 음악에 맞게 연주법을 알아 낸 것은 홍대용이다.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홍대용은 절대음감의 소유자로서 양금 현의 음가를 알아냈다.
이 책에는 양금 이야기와 함께 양금을 타며 풍류를 즐겼던 18세기 후반 사대부들의 일상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요즘 그룹사운드처럼 당시 사대부들의 풍류 그룹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최초의 크로스오버 악기인 양금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에 소개된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은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리고 조선 사람들은 그 물건의 배후에 있는 과학과 기술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이 책으로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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