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2

사라진 강원도 산간 주거, 디지털로 되살아나다

1994 강원도 산간 주거 온라인 콘텐츠

글 조수현(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2025 ICOM 두바이 총회와 디지털 기술

올해는 3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총회가 열리는 해이다. ICOM 총회는 세계 각국의 박물관 전문가들이 모여 박물관 분야의 주요 이슈를 논의하는 중요한 국제회의 중 하나이다. 두바이에서 열리는 이번 제27차 총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공동체 속 박물관의 미래’를 주제로 정하고, 그 하위 주제 중 하나로 ‘새로운 기술의 부상’을 선정했다.

ICOM은 오늘날 박물관이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창조하고, 방문객 경험을 향상시킴으로써 상호 교감을 증진하며, 운영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기술이 지닌 혁신적 가능성을 조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문화 보존과 공동체 연결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박물관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 논의될 예정이다.

사실 박물관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의 접목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1967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Museum Computer Network(MCN) 창설 등 초반에는 주로 소장품이나 데이터 관리 체계에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식이었으나, 이후 구글의 ‘Google Arts & Culture’ 전시처럼 전시나 교육 분야에 기술 확산이 시작됐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박물관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의 적용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단순히 기술을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도 코로나-19라는 재난적 상황에 대응해 나가면서 그동안 오프라인 전시를 온라인 VR로 공개하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완전한 온라인 기반 전시 『막걸리, 거친 일상의 벗』(https://makgeolli.nfm.go.kr)을 2020년 개최한 바 있고, 코로나-19 이후에도 전시, 교육, 연구 분야에 다양한 기술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온라인 콘텐츠로 조사연구 매체의 한계 극복

조사연구 온라인 콘텐츠 사업은 민속연구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술 접목 사례 중 하나이다. 민속연구과에서는 2022년부터 그동안 다소 딱딱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과거 민속 조사 결과를 온라인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조사연구의 결과는 전통적으로 보고서로 정리되어 책이라는 매체로 대중과 소통해 왔다. 책은 여전히 신뢰도 높은 정보 전달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제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학문적 연구,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책은 체계적인 서술과 논리를 바탕으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① 한국의 마을제당을 온라인 콘텐츠로 재해석한 『한국의 마을제당』
② 1899년에 중수된 강원도 삼척시 맹방리 해변에 위치한 오래된 상엿집과 그 지역의 상장례 문화를 조사하여 대중적인 콘텐츠로 제작한 삼척맹방리 상엿집
『삼척지역 상엿집과 상장례 문화』
③ 전국 장승 솟대신앙 조사 보고서를 대중적인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한 『장승 솟대 조사 대작전』
④ 1994년 강원도 산간주거 보고서를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한 『1994 강원도 산간주거, 너와집·굴피집·겨릅집』

하지만 책은 지면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정보의 양과 구성 방식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원하는 내용을 즉각적으로 검색하기 어렵고, 출판된 이후에는 내용을 수정하거나 업데이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접근성과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민속연구과의 ‘조사연구 온라인 콘텐츠’ 사업은 그동안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매체이자 플랫폼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온라인 콘텐츠에서 조사 보고서에 실린 자료뿐 아니라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생생한 사진, 도면,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담아내어 조사 내용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그동안 보고서에는 실을 수 없었던 영상, VR 등 디지털 자료를 함께 수록하여 독자들에게 생생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한다.

김경국 가옥 VR

조사 당시 담당 학예사 인터뷰

1994년 조사 야장

1994 강원도 산간주거, 너와집·굴피집·겨릅집

『1994 강원도 산간주거, 너와집·굴피집·겨릅집』은 민속연구과에서 선보이는 4번째 온라인 콘텐츠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첫 번째 민가 조사 보고서 ‘1994년 강원도 산간지역의 가옥과 생활 조사’ 결과를 대중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번 온라인 콘텐츠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21채의 강원도 전통 산간 주거를 찾아내는 민속학자들의 조사 과정에서부터 조사 결과와 오늘날 변화 모습까지 충실히 담아냈다.

1994년 보고서에 등장한 21채의 가옥은 화창, 화티 등 강원도 산간 전통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현재는 문화재로 지정된 4채의 가옥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라졌다. 1994년 조사 당시에도 강원도 산간의 전통 가옥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던 중이었는데, 2024년 다시 찾은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는 그나마 남아 있던 가옥들도 모두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이제 그 집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조차 찾기 어려웠다.

1990년대에는 전통이 현대화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면, 오늘날에는 급격한 인구 절벽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도전을 맞닥뜨리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전승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디지털로 되살아난 강원도 산간 주거 21채

1994년 조사팀은 강원도 산간 주거 중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너와, 굴피, 겨릅집 21채를 조사하였는데 그중 여기에 몇 채의 집을 소개한다.

강원도 가옥의 전형, 윤태한 가옥

윤태한 가옥은 동활리 막장에 있던 가옥으로 마을 끝에서도 1시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산속 깊은 곳에 있었던 집이다. 강원도 산간지역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려 한 채의 집 안에 외양간에서부터 작업 공간인 마당까지 집중되어 있는데, 윤태한 가옥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봉당이라고 불리는 작업 공간, 곡식을 보관하던 토방, 불씨로 사용할 숯덩이를 재에 묻어 두던 화티까지 강원도 전통 가옥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윤태한 가옥은 지금은 사라졌다.

소박한 초기 주거 형태, 손광춘 가옥

손광춘 가옥은 1칸짜리 귀틀집이다. 통나무를 옆으로 눕혀 벽체를 만들고 그 벽체가 기둥 없이 지붕의 힘을 받도록 만든 집을 귀틀집이라고 한다. 『후한서』 「동이전」에 ‘집을 짓는 데 나무를 횡으로 놓아 감옥처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매우 오래된 주거 형식임을 알 수 있다.

1칸의 방에 주변의 풀 등으로 지붕으로 올리고 외부에 2개의 간이 아궁이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조사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도끼와 톱만 있으면 이틀 만에 지을 수 있는 집이라고 한다. 손광춘 가옥은 가장 간단한 구조의 소박한 초기 가옥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집으로 현재는 사라져 기록으로만 볼 수 있다.

VR로 생생하게 체험, 김경국 가옥

이번 온라인 콘텐츠는 1994년 조사되었던 가옥뿐 아니라 강원도 삼척에 현존하고 있는 너와집을 VR로 촬영해, 집에서도 강원도 산간지역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디지털 경험을 제공한다. VR 촬영 영상 안에는 주요 공간과 시설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가옥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김경국 가옥 VR 화면

김경국 가옥 VR 화면

인공지능(AI) 시대, 온라인 콘텐츠의 미래

박물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미국의 Museum Computer Network(MCN)은 이미 박물관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시작했다. MCN은 영국과 미국 등 50여 명의 박물관 전문가와 학자들이 참여한 ‘Museums + AI Network’ 프로젝트에서 인공지능의 윤리적 적용과 박물관에서의 활용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또한, ‘AI: A Museum Planning Toolkit’를 개발해 박물관이 AI를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윤리적, 실천적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 인공지능 기술을 박물관에 직접적으로 도입하는 데에는 많은 검토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하나의 큰 시대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는 박물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온라인 콘텐츠 사업도 앞으로 점차 진화할 것이다.

1994 강원도 산간주거,
너와집 굴피집 겨릅집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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